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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등학교의 대학합격 결과 게시물. 서울대에서 기타지방대학 합격 현황을 학교 곳곳에, 1년 내내 게시하고 있다. '지잡대'라고 쓰지 않을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고등학교의 대학합격 결과 게시물. 서울대에서 기타지방대학 합격 현황을 학교 곳곳에, 1년 내내 게시하고 있다. '지잡대'라고 쓰지 않을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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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자타공인 교육열 세계 1위의 나라일 것이다. '백인백색'이라 할 만큼 교육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한민국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출세나 신분 상승 등에 교육이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건 현실이기도 하고, 넘을 수 없는 벽이기도 하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는 대학별 합격자 수가 적힌 표를 학내에 붙여 놓는다. 이 표는 입구 야외 게시판을 비롯해 출입구 계단, 교실, 복도 등 이곳 저곳에 붙어 있다. 학부모 총회나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 이 학교를 방문하는, '수능일' 같은 특별한 날만이 아니라 1년 내내 그렇게 학교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왼쪽 맨 위 '서울대'에서 시작하여 치·의·한의대를 거쳐 연세대, 고려대 등 'IN 서울대'를 지나 수도권 소재 대학까지 다다르면, 마지막 오른쪽 맨 아래 '기타지방대학'으로 끝난다. 그나마 '기타지방대학'을 '지방에 소재하는 잡스러운 대학'을 의미하는 비하적 속어 '지잡대'라고 쓰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학교 교사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걸 학교 곳곳에 붙였을까? 이걸 보면서 이 학교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가끔 학교에 오는 학부모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우연히 그 학교에 들렀다가 이걸 보게 된 다른 학교 교사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이 학교 교사들은 서울대 10명을 비롯해 진학 실적을 최고로 끌어올렸다는 이유로 전원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고3 담임뿐만이 아니라 교사 전원이... 고생한 교사들에게 이 정도 보상은 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과 교사의 노고를 진학 성적으로 평가하는 이런 분위기는 교육자의 양심과 어긋나는 것 아닌가.

순수한 여름방학은 5일? 아니면 3일?

어느 고등학교의 여름방학 관련 공지문이다. 여름 방학이 18일인데, 보충수업을 빼고 나면 3일, 아니면 5일이다. 수능을 앞둔 인문계 학교에서 당연한 일, 아무리 그래도 공부 기계도 아닌 학생에게 심하다는 의견 중에 여러분은 어느 쪽이세요?
 어느 고등학교의 여름방학 관련 공지문이다. 여름 방학이 18일인데, 보충수업을 빼고 나면 3일, 아니면 5일이다. 수능을 앞둔 인문계 학교에서 당연한 일, 아무리 그래도 공부 기계도 아닌 학생에게 심하다는 의견 중에 여러분은 어느 쪽이세요?
ⓒ 학교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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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따르면, 이 학교는 여름 방학식을 7월 21일(목)에 하고 개학식은 8월 9일(화)에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공식적인 여름방학은 7월 22일부터 8월 8일이니 날짜로는 18일이다. 일단 여름방학이 18일밖에 안 될 정도로 짧다는 것에 놀랐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방학식을 한 다음 날인 7월 22일(금), 그러니까 방학이 시작하는 첫날부터 방과후학교가 진행되어 8월 3일(수)에 끝난다는 사실이다. 3학년 학생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니까 방학 18일 중 의무적인 방과후학교가 끝나고 나면 순수 방학은 5일밖에 남지 않는다. 그나마 그 5일 중에 이틀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라서 실제로 온전한 방학은 목, 금, 월요일 이렇게 3일밖에 안 된다.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입을 앞둔 인문계 학생에게 여름방학은 사치니 3일, 5일 정도면 충분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무리 그래도 공부하는 기계도 아닌데 이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학생들에게 온전한 선택권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학생들이 개인(자율)적으로 생활하다 보면 학습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여 지난 시간을 많이 후회하기도 합니다. 겨울 방학 방과후수업과 더불어 자율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학년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지도 부탁드립니다. 학년이 달라지는 이번 겨울 방학 중에는 부족했던 과목의 보완과 기존에 익힌 학습 내용을 심화시켜줄 수 있는 방과후 수업에 모든 학생들을 동참하게 하여서 최대의 학습 효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 겨울방학 자율학습 희망조사서 일부

이번 겨울방학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학교장 가정통신문 '겨울방학 중 자기 주도적 자율학습 안내'를 요약하면 "학생들이 개인(자율)적으로 생활하게 하면 후회하게 되니 방학 방과 후 수업에 모든 학생을 동참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학생을 동참하게 하겠다면서 우습게도 학생과 학부모의 '희망 조사서'를 받고 있다. 모두 참여하도록 하겠다면서 희망 조사는 뭐하러 하는 것일까.

심화반, 일반반은 알겠는데, OOO반은 또 뭐야?

어느 학교의 겨울방학 방과후 학교 관련 가정통신문. 성적에 따라서 심화반, 일반반, OOO반으로 나누어서 수업을 하고 있다.
 어느 학교의 겨울방학 방과후 학교 관련 가정통신문. 성적에 따라서 심화반, 일반반, OOO반으로 나누어서 수업을 하고 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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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월간 일정표에 의하면, 이 학교는 겨울 방학식을 12월 23일(금)에 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인 26일부터 다음 해 설날이 있는 바로 앞 주 금요일인 1월 20일까지 4주 내내 겨울방학 방과후학교를 진행한다.

겨울 방학 4주 연속 보충수업을 하는 것 자체가 조금 놀랍기는 하지만 더 특이한 것은 방과후학교 반의 이름이다. 심화반, 일반반, OOO반으로 학생을 구분하여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심화반과 일반반은 어떤 건지 짐작이 가지만, OOO반은 좀 특이하다. OOO반은 학업성적이 가장 낮은 학생들이 주로 참여하는 특별반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같은 시간에, 공간만 달리하여 성적에 따라서 학생들을 심화반, 일반반, OOO반으로 나누어서 수업 하는 것이다. 좋게 보면 학생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고, 나쁘게 보면 성적만을 기준으로 한 차별대우, 인권침해다.

7시 45분, 8시, 오후 5시 10분, 그리고 6시05분...

어느 학교의 시간표. 1교시 8시에 시작해서 8교시 일과는 17시 10분에 끝난다. 10시간에 가까운 일정이다. 정규 일과 후 진행되는 방과후학교는 선택이 아니란다. 저녁을 먹고 나면 또 다른 방과후학교 특강과 야간자율학습이 이어진다.
 어느 학교의 시간표. 1교시 8시에 시작해서 8교시 일과는 17시 10분에 끝난다. 10시간에 가까운 일정이다. 정규 일과 후 진행되는 방과후학교는 선택이 아니란다. 저녁을 먹고 나면 또 다른 방과후학교 특강과 야간자율학습이 이어진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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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45분은 이 학교 학생들의 아침 등교 시각이다. 그리고 8시 정각에 1교시를 시작한다. 경기도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9시 등교는 꿈도 못 꾸는 이야기이다. 물론, 찬반은 있을 수 있고, 의견 역시 다를 수 있다.

이 학교 시간표에 의하면, 4교시 후 점심시간, 그리고 7교시까지 정상수업을 한 후, 방과후학교가 진행된다. 방과후학교니까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학생이 예외 없이 참여한다. 이걸 마치면 오후 5시 10분. 일차적인 학생들의 일과 종료 시각이다.

그러니까 7시 45분에 시작된 일과가 오후 5시 10분에 끝나는 것이다. 시간으로는 거의 10시간에 가까운 9시간 25분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일차적인 일과의 종료이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또 다른 방과후학교인 특강 또는 야간자율학습이 진행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서 인문계 고등학교, 그것도 자율형 사립고를 다니는 학생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아무리 학생들의 진학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나 하면서 비판해야 하나?

전국 자사고 중에서 국영수 가장 잘 가르치는 학교?

어느 학교의 홈페이지 공지사항.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전국 자율형사립고 중에서 국영수를 가장 잘 가르치는 학교로 증명되었다는 자랑을 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느 학교의 홈페이지 공지사항.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전국 자율형사립고 중에서 국영수를 가장 잘 가르치는 학교로 증명되었다는 자랑을 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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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 학교 홈페이지에는 2016년 실시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와 관련하여 '전국 자사고 중 1위'라는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에 의하면, 이 학교는 전국 자사고(자율형 사립고) 중 국어, 수학, 영어의 학업성취도 향상도 부분에서 전국 1위에 올랐다.

(기준이나 관점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국의 모든 자율형 사립고 학교 알리미를 전부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학교가, 그것도 온 국민이 다 볼 수 있는 학교 홈페이지 공개 게시판에 거짓말을 올려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로 이 학교가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이 학교 학생들의 국영수 성적이 이만큼 향상된 것이 맞을까? 이게 정말 전국 1등이라고 자랑할 만한 일이 맞나?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이 학교는 자율형 사립고로 선정될 때 인지도나 선호도가 높은 곳은 아니었다. 지금은 '학생 관리를 엄격하게 잘 하는 학교, 그래서 대학 진학 실적이 좋은 학교'로 지역사회에 알려져 있어서 학부모들이 무척 선호하는 학교라고 한다.

인근 자율형 사립고들의 이사장, 학교장과 교감들이 이 학교를 모범 사례로 무척 부러워 한다는 후문이다. 왜 자기 학교 교사들은 이렇게 하지 못하냐고...

세상 거의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 사례로 거론된 것들이 꼭 이 학교만의 사례는 아닐 것이다.

좋게 말하면 학생 관리를 엄격하게 해서 대학 진학 실적이 높고, 그것으로부터 학부모들이 선호도가 높아서 주변 학교들이 부러워하는 학교. 여러분들은 이런 학교 어떻게 생각하는가?  따라야 할 모범이 맞는가?


태그:#서울대, #기타지방대, #자율형사립고, #방과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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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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