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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직업적인 이유로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질문이 참 어렵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질문자에게 반문한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질문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야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며, 책을 읽고서는 독후감을 쓰면 더 좋을 거라는 둥의 대답을 늘어놓곤 한다. 사실 질문 자체가 구체적이지 못하기도 하다. 그리고 답을 찾기도 어려운 질문이다. 가끔은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한다.

"선생님, 책을 왜 읽어야 하지요? 꼭 읽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강력하게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적 안정, 사고의 확장, 통찰력,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등의 진부한 단어들로 답변을 이어갔다. 그러나 최근 이런 생각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의 질문에서부터였다.

"선생님, TV에 나오는 높은 사람들은 저보다 책도 더 많이 읽었겠지요? 그리고 본인이 쓴 책도 있던데요? 그런데 왜 거짓말도 많이 하고 자기 말에 책임지지 못할까요? 선생님께서 책을 읽으면 멋진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별로 멋져 보이지 않아요."
"......"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뭐 주도적인 책 읽기 경험이 없을 거라고 답변을 하려다가 답변을 포기했다. 어렵게 던진 질문에 어설픈 변명으로 답하기 싫었다. 다음으로 답변을 미뤘다. 그러다가 박홍규의 <독서독인>(인물과 사상사)이라는 책의 한 내용이 떠올랐다.

'히틀러가 읽은 책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이끈 근원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반유대주의 책들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성서에 정통했고 소위 세계적인 문학작품도 즐겨 읽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걸리버 여행기> <돈키호테>를 한 시대의 끝을 묘사한 작품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세계사의 시작을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모두 세계문학의 걸작이라고 보았다.' - 91쪽

독서교육을 할 때면 늘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독서를 통한 성공적인 삶에 집중했다. 독서를 통해 성공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간 과거의 인물에 빗대어 또는 현재의 인물에 대입하여 학생들에게 무조건적인 독서를 강요하기도 했다. 실제 독서를 전혀 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히틀러 또한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은 무조건적인 독서가 반드시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방법상의 문제가 된다. 방법상의 문제를 찾기 위해 히틀러의 독서 문제부터 짚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독서 편식은 없었다. 그러나 폭넓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삐뚤어진 생각을 공고히 하고, 이념을 확장해나가는 데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함께 독서하고 행동하는 '진짜 책읽기'

그렇다면 첫 번째 문제는 혼자 읽기의 문제다. 독서는 절대 혼자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꼭 필요하다. 생각의 차이를 알고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독서·토론이라고 일컫는다. 독서·토론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생각에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고, 생각을 수정하고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다.

책을 구해서 읽고 덮어버리는 것에서 끝난다면 독서를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경우가 생기고 만다. 자칫 독서는 위 학생의 질문처럼 별로 '멋져 보이지 않는' 일에 방어 논리를 구축하고, 자기 타협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아이를 찾아 답변을 했다. 답변의 내용은 히틀러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우리는 '히틀러 식' 독서에서 거리가 있고, 우리가 어른이 되면 사회를 조금씩 건강하게 바꿔 나가면 된다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당장이 답답해보였다. 아이의 답답한 얼굴 속에서 두 번째 문제를 발견했다. 이현주 시인의 <책이란 모름지기> 시의 일부를 인용한다.

'책이란 모름지기 /<중략>/ 눈으로만 읽지 말고 / 손발로 읽을 일이다.'

책을 읽고,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바람직한 삶, 변화다. 그렇다면 고민, 문제점 등 해결점을 모색하고, 바람직한 일 따위를 직접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질문을 한 아이에게 우리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런저런 학기 말 업무가 부담이 되었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더 모아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김혜원의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오마이북)를 읽게 했다. 이 책은 홀몸노인의 삶을 이야기한 책이다. 억지 감동을 주는 책도 아니었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책도 아니어서 좋았다. 중 1, 2, 3학년 학생 9명이 책을 읽고 짧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지역 동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세 팀으로 나눠 실제 홀몸노인 어르신을 찾아뵈었다. 아이들이 직접 장을 보면서 무엇을 사드려야할지 고민했다. 책에 나온 고재호 할아버지가 라면만 드시고 산다면서 고기를 사드려야 한다는 둥, 겨울에는 너무 춥다며 내복과 장갑, 모자를 사드려야 한다는 둥, 쌀은 필수품이라며 쌀은 사가야 한다는 둥 아이들끼리 의견을 교환하며 장 목록을 정리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교에 취지를 설명하고 '효실천봉사단' 예산을 지원받았다. 아마 예산이 없었다면 질문을 했던 친구는 학생들에게 모금을 할 판이었다.

책 읽고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뵌 아이들

장 봐야 할 목록을 회의를 통해서 작성하고, 실제 장을 보는 모습
▲ 장 목록 체크 장 봐야 할 목록을 회의를 통해서 작성하고, 실제 장을 보는 모습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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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별로 12월 15일, 16일, 19일 어르신을 찾아뵈었다. 프로그램이 따로 정해진 것은 없었다. 팀별로 알아서 장도 보고, 댁에 가서 어떻게 할지도 알아서 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사전 독서를 해서일까? 할머니와 너무나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장면을 보기도 했고, 어떤 팀은 밥을 한상 차려와 같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학생의 소감문 몇 줄을 그대로 옮겨본다. 참고로 소감문은 학교 메신저를 통해 선생님들에게 실시간으로 뿌려졌고, 그 여파로 김혜원씨의 책을 찾는 선생님과 학생이 많아졌다.

'김OO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전에는 '아무리 독거노인이시지만 책에 나온 분들보다 힘들게 사시진 않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할머니처럼 나름 사실 줄 알았는데 만나서 지내시는 환경도 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느 한 분도 더 잘살고 못산다 할 수 없다고 느꼈어요. 할머니께서 연세가 87세라고 하셨을 때 보기보다 나이가 많으셔서 놀랬고(훨씬 젊어보이셔요!) 징용 때문에 일찍 시집보내진 이야기하실 때는 '살아있는 역사시다!'라고 감탄했어요.

할머니 이야기 듣다가 울컥하고 마지막에 할머니 안아드리면서 인사하고 나올 때 또 울컥했어요. 할머니께서 연세에 비해 정정하셔서 다행이고 아플 일 없었으면 좋겠어요. 방바닥이 진짜 차고 창고 쪽도 추워서 안타까워요. 내 집은 정말 따뜻하고 안락한데 할머니는 바람소리 낙엽 굴러가는 소리까지 들리는 곳에서 주무신다는 게 비교되고 감사함을 느꼈어요. 할머니께 이름 쓰는 법을 가르쳐 드린 거 잘한 것 같고 다행이에요. 학원가기 싫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감사하게 학원 갔어요. 기회가 되면 선생님 친구들과 또 찾아뵐 수 있길 바라요.' - 순천신흥중학교 2학년 윤서영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 낡은 대문 앞에서 또 이야기를 나누고 있음.
▲ 할머니와 헤어짐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 낡은 대문 앞에서 또 이야기를 나누고 있음.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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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 같은 늙은이를 찾아와줘서 고마워>를 읽고 독거노인이신 정OO 할머니를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마트에 들러 어떤 것을 사드리면 기뻐해 주실까 열심히 고민해서 장갑, 내복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을 사들고 할머니를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는 긴장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생전 처음 보는 우리를 좋아해주실까? 싫어하시면 어떡하지?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환한 웃음으로 저희를 맞아 주실 때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렇게 처음 인사드린 할머니 댁에 들어가며 느낀 것은 '춥다'였습니다. 바닥에는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집안의 공기도 차가웠습니다. 전기장판을 틀어놓은 이불위에 앉아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 보일러도 틀지 않고 혼자 생활하시는 할머니께서는 얼마나 추우실까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할머니께서 틀어놓은 따스한 장판에 앉아 저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경미가 할머니께 미역국을 끓여드리겠다며 일어나는데 할머니께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말리셨지만 결국 경미를 말리지 못하고(?) 보일러를 틀어주셨습니다. 정부보조금 20만 원으로는 보일러를 틀지 못한다고 책에서 읽었던 저희는 보일러를 틀어주시는 할머니께 죄송스러웠습니다. 경미가 국과 밥을 다하고 가려는데 밥을 먹고 가라고 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저희는 밥까지 얻어먹고 말았습니다. 할머니와 함께하는 먹는 밥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밥을 먹은 뒤 정리를 하고 있는 중 할머니께서는 옥수수차를 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주신 옥수수차의 맛은 잊히지 않을 정도로 인상 깊은 '맛있음' 이었습니다. 끝으로 할머니께 포옹을 하고 집을 나서는데 할머니께서는 추운날씨에도 문에서 저희가 갈 때까지 지켜봐주셨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저는 꼭 다시 할머니께 찾아오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 순천신흥중학교 3학년 강지원

사실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허나 활동에 집중하지 않고, 과정 하나하나의 의미에 집중했다. 한 학생의 질문에서 시작한 일이고, 아이들에게 독서의 참된 가치도 설명할 수 있었다. 모든 팀이 홀몸노인 어르신과의 만남을 마치고 책에 대해 본격적으로 토론했다. 간접경험과 실제 경험을 이야기 나누었더니 정말 생생한 토론이 되었다. 책이란 모름지기 이렇게 읽어야 함을 아이들을 통해 배운 셈이다.

물이 차가워 밥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 할머니를 앉히고 결국 밥을 한 경미. 그런 경미를 위해 거의 틀지 않는다는 보일러를 틀어주시는 할머니. 결국 탄생하게 된 초라하지만 온기 가득한 밥상!
▲ 경미가 차린 밥상 물이 차가워 밥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 할머니를 앉히고 결국 밥을 한 경미. 그런 경미를 위해 거의 틀지 않는다는 보일러를 틀어주시는 할머니. 결국 탄생하게 된 초라하지만 온기 가득한 밥상!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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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순천신흥중, #사서교사, #도서부, #김혜원,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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