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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마을 안길을 쓸다가 SNS에 올릴려고 사진을 찍었다. 보시다시피 이때 까진 마을 눈길을 한 시간 가량 혼자서 치운 사진이다.
▲ 증거사진 1 혼자 마을 안길을 쓸다가 SNS에 올릴려고 사진을 찍었다. 보시다시피 이때 까진 마을 눈길을 한 시간 가량 혼자서 치운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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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 '생각나는 일'. 그렇다. 바로 눈 치우기다. 안성시골 생활 16년째인데, 겨울이면 늘 눈을 떠올리고, 눈 치우기를 떠올리게 된다. '시골살이'에서 이웃에게 점수를 얻는 더없이 좋은 종목이 바로 '눈 치우기'라는 걸, 살다 보니 더욱 알게 되더라.

오늘(23일)도 우리 마을에 눈이 왔다. 눈이 오면 본능적으로 '어떻게 눈을 치울지'가 마음에 떠오른다. 마을에는 어르신들이 많다. 행여나 다니시다가 넘어지면 다치실세라, '마을 젊은 것'인 나는 오늘도 아침에 마을 안길 눈을 치운다.

누가 하란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니, 함께 하는 사람도 없다. 해마다 해오던 대로 혼자 눈을 치운다. 가끔 아내나 자녀와 치우기도 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트랙터의 위용. 울 마을에서 제일 젊은 총각 아니 새신랑이 트랙터를 몰고 나타났다. 마을 큰길만 치우던 사람이 오늘은 웬일로 마을 안길로 나타난 겨.
▲ 증거사진 2 어디선가 나타난 트랙터의 위용. 울 마을에서 제일 젊은 총각 아니 새신랑이 트랙터를 몰고 나타났다. 마을 큰길만 치우던 사람이 오늘은 웬일로 마을 안길로 나타난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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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해서 나는 오늘도 마을에 도움을 주는 구나. 역시 이웃 어르신들을 섬기는 데는, '마을 눈치우기'가 최고야. 역시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뭐 혼자서 이런 소설들을 머리에 써가며, 열심히 눈을 치운다.

이때까진 정말 평화롭고 좋았다. 갑자기, 마을 큰길에서 기계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헉"

큰길에서 트랙터가 마을 안길로 들어온다. 아니 왜 갑자기! 트랙터를 몰고 오는 사람은 울 마을 '제일 젊은 것'이다. 울 마을에서 젖소 키우는 총각 아니 새신랑이다. 그는 2년 전에 결혼했다. 그가 왜 오늘 안하던 짓을 할까.

평소 겨울에는 트랙터가 마을 큰길 눈만 치운다. 그 이유는 마을 큰길 눈을 치워야, 젖소 사료차가 그의 농장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큰길은 트랙터가, 마을 안길은 내가 치우곤 했었다. 그런데 웬 바람이 불었단 말인가.

트랙터는 나의 1시간 작업(마을 안길 절반의 눈을 치운)을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분탕질(?)을 해댄다. 3분 만에 나머지 반을 해치운다. 허무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온다. 하하하하
▲ 증거사진 3 트랙터는 나의 1시간 작업(마을 안길 절반의 눈을 치운)을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분탕질(?)을 해댄다. 3분 만에 나머지 반을 해치운다. 허무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온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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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가 나타나 나머지 눈을 순식간에 치운다. 나는 1시간이나 걸려 마을 안길 반 정도를 겨우 치웠는데, 트랙터는 3분 정도에 나머지 눈을 후딱 치워버린다. 순식간의 분탕질(?)이다. 무슨 3분 컵라면도 아니고. 눈을 돌려 마을 안길을 보니, '퍼펙트'하게 깨끗하다. 그래! 트랙터 너 잘났다 잘났어.

그렇게 후딱 눈을 치운 트랙터는 그 자리를 유유히 떠나간다. 오늘 왜 그랬느냐고, 무슨 마음이 들어 그랬느냐고, 집안에 무슨 우환(?)이 있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난 할 말을 잠시 잃다가 정신을 차린 후, 그 청년에게 '엄지 척'을 해주었다. 내가 해줄 게 그것밖에 없었다.

사실 허무한 마음은 잠시. 그 청년이 고맙다.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서 그렇게 마음을 내고, 시간을 내고, 기계를 내어, 마을 눈을 치워주니 말이다. 안 하던 짓이라도, 얼마나 아름다운 짓인가. 우리 마을이 이래서 참 좋다.

눈 치우고 난 후, 그 청년이 왜 그랬을까 궁금해하는 나에게, 마을 형님은 "걔가 결혼하더니만 철들었구먼. 역시 남자는 장가를 가야 철든다니까"라 해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진짜 내일 찾아가 물어볼까. 하하하하.

보시다시피 트랙터가 지나간 마을 길은 '퍼펙트'하게 깨끗하다. 그래. 트랙터 너 잘 났다 잘났어.
▲ 증거사진 4 보시다시피 트랙터가 지나간 마을 길은 '퍼펙트'하게 깨끗하다. 그래. 트랙터 너 잘 났다 잘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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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첫눈, #눈, #눈치우기, #트랙터,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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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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