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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2박 3일의 짧은 여행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15년 만에 다시 찾아온 요코하마 시내가 품고 있는 이야기만으로도 넘치는데, 이번 여정에는 억지로 <슬램덩크>와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배경마을인 '가마쿠라'를 집어 넣었다. 우려한대로, 넘치는 여정 가방을 꾹꾹 눌러 담느라 탈이 났다.

지난 토요일(12월 17일) 아침 일찍 서둘러서 김해 공항으로 향했다. 무난히, 여유있는 시간에 도착했으나, (나도 마찬가지 일테지만) 연말맞이 여행객들이 많은 때문인지 주차할 곳이 없다. 짜증과 걱정이 가득한 채 주차장을 몇 번이나 돌고 났더니, 이제 막 따뜻한 나라에서 도착한 느낌의 젊은이들이 보인다.

"차 빼실 건가요?"
"네!"
"제가 쫓아가도 될까요? 어디에 세우셨어요?"
"2층이요."

급한 마음에 처음 보는 청년들에게 당당하게 말을 걸어, 그들이 차를 빼는 공간에 간신히 주차를 한다. 제대로 감사인사도 못 했는데, 미안하다. 전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라도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구해줘'서 고맙다고...

비행기가 나리타에 착륙하기 직전입니다. 땅 위로 급하게 달려가는 것만 같아요.
▲ 땅위로 달리는 비행기 비행기가 나리타에 착륙하기 직전입니다. 땅 위로 급하게 달려가는 것만 같아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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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의 비행기는 오후 1시쯤  나리타에 도착한다. 첫날의 여정은 가마쿠라에 도착해서야 끝이 나는데, 구글맵에 물어보니 가마쿠라까지의 예상 시간이 세 시간으로 나온다. 서둘러야 한다. 동료가 알려준대로 공항버스로 요코하마까지 이동한 후, JR로 가마쿠라역에 내리니 오후 4시가 가까워졌다. 해가 지기 전에 바다에 도착하려니, 마음이 급하고 진땀이 흐른다.

가마쿠라역에서 숙소가 있는 유이가하마 해변까지는, 그 지역의 명물인 에노시마 전동 열차로 이동한다. 영화로도 제작된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 등 수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바다를 달리는 열차는, 모두 이 열차의 얼굴이다. 열차에 타고 있자니, 만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설레임이 배가 된다.

첫날의 숙소인 유이가하마 해변에 도착하니, 벌써 4시 반을 넘어가고 있다. 다섯시 쯤 해가 진다고 하니, 해가 남아있는 바닷가는 좀 더 서둘러야겠다. 여행 가방을 둘러멘 채, 해변을 향해 무작정 달린다. 요 몇 주 동안, 허리병이 도져서 달리기는 '못'하는데, 어쩔 수 없다. 해변에 남아있는 햇님을 만나지 못하면, 오늘 새벽부터 서두른 일정이 헛수고가 된다.

해가 지고 난 후, 한참을 저 해변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낮의 눈부신 햇살이 아쉬웠는지, 계속 조금씩 더 붉어지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같이 토닥토닥, 위로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괜찮아, 이제 우리 만났잖아.
▲ 해변의 붉어진 뺨 해가 지고 난 후, 한참을 저 해변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낮의 눈부신 햇살이 아쉬웠는지, 계속 조금씩 더 붉어지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같이 토닥토닥, 위로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괜찮아, 이제 우리 만났잖아.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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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해변이 보이고, 가방을 해변의 모래사장에 집어던진 후,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님과 햇님을 보낸 후 울고 있는 '퉁퉁 부어버린' 수평선의 붉은 얼굴을 토닥거리며 달랜다. 울음을 참아가며 더욱 더 붉게 물들어가는 볼이 너무도 예쁜 선홍색이어서, 수평선 너머로 불이 난 것만 같다.

'울지마. 이제서야, 간신히 왔잖아. 나도 울고 싶다고!'

해가 지려하는 해변은, 지금이 12월임을 잊게 만드는 서퍼들로 가득하다. 저 어딘가에 키리시마(<바닷마을 다이어리> <바나나 키스>의 등장인물)가 서핑보드를 타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이대로 수평선 너머로 달이 떠 준다면 더 좋겠지만, 아쉽게도 달은 보여주지 않는 밤이다.

노을을 즐기며 보내던 시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에 체크인을 한다. 예쁘게 정리된 침대에 짐들을 대충 던져 놓고, 이 동네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잔멸치 덮밥'을 찾아서 근처의 작은 식당으로 향한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아담하게 정돈된 식당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하다. 잔멸치 덮밥을 주문하고 '세계 맥주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그 동네의 지역 맥주를 한 잔 하고 났더니, 식사가 준비되었다. 인증샷을 찍기 위해 가방에 챙겨넣은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꺼내들었다.

잔멸치는 '작은' 멸치가 아니라 뱅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바닷가의 작은 식당에서 그 동네의 맥주를 마시며, 잔멸치가 가득 얹어진 식사를 하려고 하니, 만화책 속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요!
▲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등장한 '잔멸치 덮밥' 잔멸치는 '작은' 멸치가 아니라 뱅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바닷가의 작은 식당에서 그 동네의 맥주를 마시며, 잔멸치가 가득 얹어진 식사를 하려고 하니, 만화책 속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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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아세요?"

"아. 네! 알아요."
"배경이 이 곳, 가마쿠라 맞죠?"
"네. 맞아요! 저도 좋아해요."

서빙을 도와주시는 직원분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당당하게 '인증샷'을 부탁한다. 책을 한 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자니 뭔가 하나의 미션이 끝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책에서 '잔멸치'로 번역된 생명체는 뱅어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쩐지, '잔멸치'를 사서 비슷하게 만들어보고 싶어도 한계가 있었던 게 이유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창에 비치는 눈부신 햇살에 마음이 급하다. 오전의 햇살로 반짝이는 바닷가를 놓치고 싶지 않은데다가, 오후에는 축구 경기를 보러 요코하마로 이동해야 하기에 서둘러야 한다. 아... 이 좋은 동네에서, 여유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일정이라 속상하다. 게다가, 전날 밤의 산책이 추웠던지 밤새 머리가 아파서 잠을 설쳤는데, 다행스럽게도 바닷가에서 마시는 편의점 커피가 약이 된다. (브라질 월드컵 때) 이파네마에서 만났을지 모르는 커피의 맛도 맛이지만, 노란색 슬리브와 파란 하늘의 대비가 아름답다.

전날 밤, 두통으로 잠을 자는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편의점에서 사들고 나와 저 푸른 바다와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며 앉아서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아, 좋다!
▲ 해변에서 '브라질' 커피 한 잔 전날 밤, 두통으로 잠을 자는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편의점에서 사들고 나와 저 푸른 바다와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며 앉아서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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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의 해변은 이른 시간부터 무척이나 분주하다. 편의점 커피를 뽑아들고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데, 오른쪽 앞에선 서핑 보드를 옆에 둔 채 열심히 몸을 풀고 계신 어르신이 보이더니, 왼쪽 옆으로는 해변의 까마귀들에게 모이를 주시면서 그들과의 교감을 즐기시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게다가, 눈앞에 펼쳐진 바다엔 서퍼들로 가득하고, 해변엔 반려 동물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오신 주민들이 분주하다.

중년의 어르신이 서핑보드를 해변에 내려둔 채, 한참동안 준비운동을 하고 계셨다. 이미 바다 안에는 부지런한 서퍼들로 활기가 가득하다. 운동을 마치신 후, 노란색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로 출발하신 당당한 발걸음이 눈부시다. 제발, 멋지게 나이들자!
▲ 노란 서핑보드를 들고 해변으로 가는 어르신 중년의 어르신이 서핑보드를 해변에 내려둔 채, 한참동안 준비운동을 하고 계셨다. 이미 바다 안에는 부지런한 서퍼들로 활기가 가득하다. 운동을 마치신 후, 노란색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로 출발하신 당당한 발걸음이 눈부시다. 제발, 멋지게 나이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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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으로 분주한 모습. 누구 하나 같은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았고, 무언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설들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의 풍경은 눈부시게 평화롭다. 어색한 단어의 조합이지만, 평화롭고도 분주한 해변은, 젊은이들만의 것도 아니고 반려동물들의 것도 아니며, 관광객이나 호객꾼들의 것도 아니었다. 그냥 평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철썩이는 파도를 담아내 주었던 그 해변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상처입은 자들에게 평안을 나눠주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도 허락하는 '평안' 말이다.

이 바다를 바라보며, 요시다 아키미가 왜 바닷마을의 네 자매에게 이 바다를 선물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리고, 2007년에 시작한 만화를 왜 아직 끝내지 않는지도, 그들의 시간을 가능하면 느리게 더 느리게 가져가고 있는지도 말이다. 그는, 어쩌면, 그들을 좀 더 오래 이곳에서 살아가게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이곳의 평화를 온전히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지금 바다를 보며 내가 그러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해변을 떠나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햇살이 내리비치더니, 해변에 나란히 서 있던 서퍼들의 그림자 세 개가 해변에 새겨졌어요. 하지만, 금세 그들은 움직였고, 햇살도 다시 구름 뒤에 숨어, 이 '찰나'의 장면은 '그날의 순간'이 되어 남았답니다. 덕분에, 저 순간을 담아낸 사진에 남겨진 모든 풍경들이 정말 감사하네요. 고마워요!
▲ 햇살이 허락한 '순간' 아쉬움을 가득 안고 해변을 떠나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햇살이 내리비치더니, 해변에 나란히 서 있던 서퍼들의 그림자 세 개가 해변에 새겨졌어요. 하지만, 금세 그들은 움직였고, 햇살도 다시 구름 뒤에 숨어, 이 '찰나'의 장면은 '그날의 순간'이 되어 남았답니다. 덕분에, 저 순간을 담아낸 사진에 남겨진 모든 풍경들이 정말 감사하네요. 고마워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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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자칫하면, 경기가 오후 4시부터라는 것을 잊어버릴 뻔했다. 해변의 유혹이 너무도 달콤해서, 돌아가야 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해변에 그려진 서퍼들의 그림자도 멀리로 태양을 품어낸 하늘의 색깔도, 그 순간적인 햇살의 인사도 헤어지기 싫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기면서, 꼭 다시 오겠다 약속을 한다. 꼭, 다시!

갔던 길을 반대로 거슬러 요코하마의 숙소에 짐을 밀어 넣은 후, 일행을 만나러 간다. 약속장소를 찾아가는 걸음이 어딘가 익숙하더니, 멀리로 15년 전에 만났었던 붉은 창고 건물이 나타난다. 멀리로 보이는 레인보우 브릿지도, 붉은 창고도, 관람차와 랜드마크 타워도 그 옛날 내가 걸었던 풍경 그대로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풍경은, 어느 곳에서 만나든 반가움이 먼저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곳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발전의 상징처럼 '조변석개'하는 변덕의 풍경이 아니라 말이다.

마지막 날의 아침이 아쉬워서 산책을 나섭니다. 해가 떠오르는 풍경의 옆으로 레인보우 브릿지가 펼쳐지고, 요코하마의 아침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 그림같아요. 떠나기 싫어요!
▲ 아침의 산책에서 만난 레인보우 브릿지 마지막 날의 아침이 아쉬워서 산책을 나섭니다. 해가 떠오르는 풍경의 옆으로 레인보우 브릿지가 펼쳐지고, 요코하마의 아침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 그림같아요. 떠나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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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무래도 사흘의 일정은 너무 짧다. 게다가, 그 공간이 품고 있을 이야기들을 되짚어 가야 하는 여행이라면, 잠시 들러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은 '삶'이나 '생활'이 아닌 이상, 충분하게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니 한계는 인정해야 하겠지? 짧은 사흘이었으나 여행지가 선사한 일상의 장면들은, 얼마간의 삶을 힘나게 하는 처방이 될 것이니 말이다. 그 처방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좀 더 풍성하게 한다면 감사할 수밖에 없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코쿠리코 언덕에서>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의 배경으로 나오는 도시가 요코하마예요. 일정이 길지 않아서, 많은 곳을 돌아보지 못했지만, 배가 들어오는 항구의 풍경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눈부시네요.
▲ 코쿠리코 언덕에서 바라보았을 풍경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코쿠리코 언덕에서>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의 배경으로 나오는 도시가 요코하마예요. 일정이 길지 않아서, 많은 곳을 돌아보지 못했지만, 배가 들어오는 항구의 풍경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눈부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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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번 여행에선 <신비한 동물사전>의 주인공이 들고 다니는 마법의 가방을 만난 느낌이다. 아직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여, 세상을 향해 꿈틀거리는 이야기들이 가득 채워진 여행가방. 돌아간 일상에서도 짐을 다 풀지는 못하겠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가방을 다시 챙겨들고 떠나야 할테니 말이다. 그 '언젠가'가 너무 멀리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제 모든 여행이 끝이 났네요. 항상 설레임과 아쉬움을 함께 품어내고 있는 공항에서의 시간은, 마음이 너무나 복잡해 집니다. 붉게 물든 노을, 그 찬란함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 떠나야 하는 공항의 노을 이제 모든 여행이 끝이 났네요. 항상 설레임과 아쉬움을 함께 품어내고 있는 공항에서의 시간은, 마음이 너무나 복잡해 집니다. 붉게 물든 노을, 그 찬란함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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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클럽월드컵, #일본여행, #가마쿠라, #요코하마, #축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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