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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기나긴 고통의 세월이었다. 역사가 과거 유신시절로 돌아간 듯한 어둠의 시대였다. 우리가 이미 획득했다고 믿었던 그 민주주의의 원칙과 틀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그러나 마침내 시민들은 이 어둠을 촛불로 몰아냈다. 독재자는 자기의 성에 유폐되었고, 우리는 광장에 섰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광장을 불살랐던 촛불의 열기를, 그리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그 뜨거운 외침을 진정한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믿는다. 광장의 열기가 그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법률과 제도로써 정립되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오마이뉴스>에 연속 기고한다. -기자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진 시민들의 외침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주의' 규정이다. 이 외침은 촛불집회 내내 하나로 집약된 목소리였다. 

하지만 권력자는 이 조항을 아랑곳하지 않고서 마치 모든 권력은 자기의 손에 독점되어 있다고 여겼다. 촛불민심은 주권자로서의 자기 선언이며 주권자를 부정하는 음험한 권력에 대한 항거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독재자를 무너뜨려 나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우리를 옥죄었던 구체제는 철저한 국민 배제의 시스템이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원칙을 철저하게 부정하고서 거꾸로 모든 권력으로부터 국민을 배제하였다. 이제 이 국민주권의 원칙을 완전하게 복원시켜야 한다.

과연 이 국민주권주의라는 추상적 선언을 과연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국민주권주의 원칙을 어떻게 구체화시키고 제도화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

KBS 사장과 검찰총장, 직선하라

8일 오후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언론노조KBS본부와 KBS노조 양대노조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정방송 쟁취 및 보도참사, 독선경영 심판 총파업 출정식’이 열리고 있다.
▲ KBS 양대노조 합동 총파업 출정식 8일 오후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언론노조KBS본부와 KBS노조 양대노조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정방송 쟁취 및 보도참사, 독선경영 심판 총파업 출정식’이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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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독재권력은 우리 사회의 언론을 철저히 자신의 나팔수로 길들여왔다. 최소한 공영방송 KBS 사장은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 KBS TV를 켜면 스스로 국민의 방송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국민들이 원하지도 않은 북한 뉴스와 권력 입장만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뉴스의 절반 이상을 채우는 것은 국민의 뜻에 명백하게 반한다. 

이제 국민이 명실상부한 주인 노릇을 수행해야 한다. 국민 직선으로 KBS 사장을 선출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정치검찰'을 국민이 통제하기 위하여 검찰총장을 국민이 직접 선출해야 한다. 이 방안에 대하여 포퓰리즘을 경계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이제까지 권력의 하수인 역할만을 자임하면서 무소불위,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어온 정치검찰에 대한 국민의 통제기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경찰청장 역시 직접 선출이 바람직하다.

미국의 카운티(county)는 지방의 시장을 비롯하여 보안관, 판사, 검사장, 감사원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일반 시민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될 수 있어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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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탄핵 결정은 헌법재판소에 넘겨졌다. 그런데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단순히 법관 출신만의 전유물일 수 없다. 시민이 참여하고 개입해야 한다. 시민운동가도, 문인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법조 자격만을 재판관 자격으로 요구하지 않고 법관을 비롯하여 대학교수, 관료, 변호사 등 다양한 직역에서 재판관을 선출하고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다원적 구성을 위한 것이다.

헌법이 국민의 것이듯, 헌법재판 역시 국민의 몫이다.

4대강 사업과 원전은 국민이 참여·통제해야

국민의 환경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하여 법률과 제도로써 국민들의 참여와 통제 그리고 결정이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 때 강행된 4대강사업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아무런 수단이 없이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생활음용수안전법(Safe Drinking Water Act, SDWA)은 식수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때 신속하게 주민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수질과 수원 관련 정보를 주민에게 매년 반드시 제공하며 아울러 매년 식수안전 기준을 준수하는 식수 시스템에 대하여 연도별 종합보고를 대중에게 발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은 주민들이 수원(水源) 평가계획 제정 및 음용수 공급시스템 개선 기금 운용 계획 수립, 관련 업무 근무자 인증계획 등에 반드시 참여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원전이 많기로 유명한 프랑스가 그나마 안전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에는 시민이 참여하고 관리하는 제도도 그 주요한 요인으로 꼽힐 수 있다.

프랑스에는 현재 '환경리스크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정부, 관료, 기업, 과학자, 언론, 일반시민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이해를 깊게 한다는 점이다.

이익집단이나 전문가만의 참여로는 좁은 시야에 갇히기 때문에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시민들의 참여를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시스템이다. 이렇듯 정보의 공개와 투명성은 원자력 문제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지자체에서 직접민주주의 확대해야

지자체 차원에서 직접민주주의가 적극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독일에서 활성화되어 있는 시민단체들은 기존 지방자치제도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90년 쉴레스비히-홀스타인 주에서 지방자치법이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광범위한 주민 참여를 보장하게 되었다.

그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민청원으로서 일정한 수의 주민이 청원한 사항에 대하여 지방의회는 일정 기간 내에 반드시 심의하여 결정해야 한다.

둘째, 주민회의로서 지방자치단체는 최소 1년에 한 번 이상 지역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주민회의를 소집해야 하며, 여기에서 집약된 의견은 해당기관에서 일정 기간 내에 심의되어야 한다.

셋째, 주민투표로서 일정 수의 주민은 지역의 중요 문제에 대하여 주민투표를 청구할 수 있고, 이 경우 지방의회 의원의 2/3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와 규정이 있다면, 예를 들어 주민의 뜻에 반하는 일방적인 사드 배치는 불가능하게 된다.

헬조선의 극복을 위하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 탄핵 가결 후에도 꺼지지 않은 '촛불의 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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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권(droits sociaux)'이란 국가로부터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본적 권리로서 시혜적 차원의 복지 개념과 달리 시민의 적극적 권리로서의 개념이다. '사회국가(Sozialstaat)'란 그 국가의 정책이 사회적 안정, 평등, 정의의 원칙에 따라 법적, 사회적 질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데 초점을 두는 국가를 가리킨다. 

독일 기본법 20조 1항은 "독일연방공화국(독일)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동시에 사회국가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회국가의 목표는 스스로 자신을 도울 수 없는 약자들을 지원하고, 국민의 다수를 빈곤이나 최저 생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목표를 지닌다.

국가는 극단적인 사회 격차, 즉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며, 당연히 소득이나 재산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재분배 정책이 중시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상호 적대감을 해소하며 사회적 평화를 유지한다.

다시 말해, 사회국가 원칙이란 국가가 모든 국민이 사회공동체의 틀 안에서 실질적인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정부 제도를 구축하고 정책을 시행한다는 원칙이다. 구체적 내용은 경제적으로 소수 기업의 경제적 독점과 담합을 반대하고, 그 대신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며, 사회복지와 정의로운 분배에 정책의 중점을 두는 것 등이다.

이러한 사회국가의 원칙은 이른바 '경제민주화'의 개념에서 한 걸음 전진한 것으로서 다만 사회국가는 개인의 능력과 책임을 근간으로 하고 자유주의의 틀 안에서 경쟁을 통한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이를 통하여 소득의 공정한 분배와 사회복지를 실현한다는 개념으로서 무조건적인 복지와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국가와 상이한 개념이다. 

덧붙이는 글 | 소준섭 박사는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받았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직접민주주의를 허하라>, <대한민국민주주의처방론>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유신반대 운동으로 수배, 구속된 바 있고, 서울의 봄 때 다시 수배되어 광주항쟁 전 과정을 <광주백서>로 기록하고 지하에서 출판 배포하기도 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태그:#소준섭, #촛불, #박근혜 탄핵, #헌법재판소,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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