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기사 한눈에

  • 혹자는 제주에서 농가주택을 구해 손수 고친다고 하면 '낭만적'이라는 가벼운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건 살아생전 절대 친해지지 않을 것만 같던 '막노동'과 점점 가까워지는 일이다.
느리지만 나태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재미있지만 시끄럽지 않고, 철학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삶을 위한 공간 만들기

#. 우리가 뒤집어 쓴 것은 새똥이 아니었다

새똥 같은 백시멘트를 뒤집어 쓴 우리
 새똥 같은 백시멘트를 뒤집어 쓴 우리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천정 나무 샌딩 작업
 천정 나무 샌딩 작업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5일 동안의 철거 및 밑 작업을 마치고, 서까래와 대들보 샌딩(sanding: 흠집을 제거하고 도장할 표면을 매끄럽게 하며, 페인트 코트의 점착을 좋게 하기 위해 연마재를 사용하여 문지르는 일) 작업을 시작했다.

샌딩 작업이란 쉽게 말하자면 사포질인데, 둥근 사포를 샌딩 기계에 부착하여 버튼을 누르고 문지르면 샌딩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사포질을 도와준다. 샌딩작업을 할 때는 미세먼지가 매우 많이 날린다. 때문에 꼭 보안경과 방진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코를 풀 때 새까만 코가 엄청 나온다.

이 작업을 J 혼자 며칠에 걸쳐서 했는데, 어깨며 허리며 매우 아파하던 J가 무지 안쓰러웠다. 그래도 며칠 동안 작업을 하니 거실 서까래가 모두 나무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다. 샌딩작업, 특히 우리가 이번에 한 작업은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나무의 묵은 때를 벗겨준 것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그 속에 간직한 채 더 단단해져 있는 나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부분이 균일하게 벗겨지지 않아서 울긋불긋하지만 그 자체로도 매력인 것만 같았다.

천정 밑 작업하기
 천정 밑 작업하기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나는 내 생에 이번 집 공사를 통해 막노동을 처음 해본 것인데, 여러 가지 작업 중에서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은 시멘 작업과 천정 작업이었다. 시멘 작업이나 천정 작업을 한 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곤 했다. 그런데 드디어 그 두 가지의 작업이 만난 것이다. 바로 천정에 백시멘트를 바르는 작업이다.

이 모든 작업(이라 쓰고 '고생'이라 읽는다)은 서까래를 살리자는 우리의 결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서까래와 대들보를 내보이게 한다는 것이 이만큼 어마어마한 고생을 초래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울퉁불퉁하지만 올곧고 기나긴 세월을 버텨온 단단하고 아름다운 이 나무를 도저히 합판 떼기로 덮어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이 힘든 작업을 할 때 우리의 가여운 도련님(J의 남동생)이 일을 도우러 왔었다. (고마워요 도련님!)

1차 작업
 1차 작업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3차 작업
 3차 작업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매끈해진 표면
 매끈해진 표면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백시멘트를 바르기 전에 우리는 먼저 흙을 반죽해서 떨어져나간 부분에 보수해주었다. 그 흙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그 위에 백시멘트를 덧바르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 천정 작업은 철저한 분업으로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밑 작업으로, 흙이 발려진 천정에 붓으로 물을 바르는 작업이 필요하다. 백시멘트 반죽이 흙에 잘 달라붙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 작업은 도련님이 해주었다.

밑 작업에 이어서 1차 작업은 한 명이 백시멘트 반죽을 손으로 덕지덕지 천정에 발라놓는다. 2차 작업은 한 사람이 작은 고무 헤라를 들고 반죽이 발리지 않은 구석구석을 메꾸는 일이다. 3차로 내가 붓을 이용해 묽은 백시멘트 반죽을 스윽스윽- 발라 표면을 매끄럽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마른걸레를 이용해, 서까래에 묻은 백시멘트를 닦아낸다.

하루종일 천정을 올려다보며 작업했다
 하루종일 천정을 올려다보며 작업했다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그러면 이렇게 매끈한 표면이 완성된다. 그렇게 안채 큰 방과 작은 방의 한 쪽 천정을 마무리하고, 거실까지 완성시키면 되는데, 우리는 그 당시 새벽같이 일어나 밤늦도록 야간작업까지 하면서 이틀에 걸쳐 이 작업을 해야 했다.

완성된 거실 천정의 모습
 완성된 거실 천정의 모습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이틀 연속 미친 듯이 위만 쳐다보고 작업한 결과 거실 천정이 하-얗게  마무리되었다. 다 해놓고 보니, 참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천정과 대비되어 대들보와 서까래의 모습이 더 돋보였고, 정갈하고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오랜 나무들이 보이게 살리길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온통 새똥을 뒤집어쓴 마냥 새하얀 백시멘트 똥을 뒤집어썼다.

#. 멋있고, 재미있고, 낭만적인 일?

바닥을 10cm 정도 낮추기 위해 하루 3만원에 '뿌레카'를 빌려와 바닥을 부수었다.
 바닥을 10cm 정도 낮추기 위해 하루 3만원에 '뿌레카'를 빌려와 바닥을 부수었다.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혹자는 제주에서 농가주택을 구해 집을 손수 고치고 있다고 하면,

"오- 멋있다. 재밌겠다. 낭만적이네!"

하고 가벼운 반응을 보이곤 한다. 과연 이 일이 정말 멋있고, 낭만적이고, 재미있기만 할까?  물론, 자기가 살아갈 공간을 손수 맘껏 고치고, 꾸밀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나와 J처럼 뚝딱뚝딱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재미있기도 하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요정이라도 나와서 '뾰로롱-'요술방망이로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추운 겨울날 땀 뻘뻘 흘릴 만큼 힘든 일들도 해야 하고, 검은 먼지를 마시며 온 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일도 다반사이다. 실제로 나는 공사를 시작하고부터 살아생전 절대 친해지지 않을 것만 같던 분야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로 막노동이다.

삽질이 절대 팔 힘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 허리를 써야 한다는 걸 알아가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시멘트를 잘 반죽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 말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요즘 유행한다는 화장품이 무엇인지, 가격은 얼마인지는 몰라도 벽돌이 한 장당 100원, 브로쿠(블럭)가 한 장당  1000원이라는 건 알았다.

예쁜 옷을 어디서 싸게 살 수 있는지는 몰라도 시멘트가 한 포에 7000원, 레미탈(시멘트와 모래가 섞여있는 작은 포대)이 한 포에  5000원이지만, 시멘트와 모래를 사서 직접 반죽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들여다보고도 과연 사람들은 '멋있다, 낭만적이다, 재미있겠다'라며 마냥 부러워할 수 있을까?

실제로 결과물이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공사하면서 가장 많이 한 작업이 바로 '미장'이 아닐까 싶다. 바닥 기초 미장부터 벽돌 조적 미장, 창문 틈새 사춤 미장까지... 우리는 끝없이 시멘트와 모래를 사다 나르고, 반죽하고, 발랐다. 나는  끝없이 믹서 드릴을 돌려가며 반죽했고, J는 점점 요령이 생기면서 미장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어느 날은 유튜브(Youtube)로 미장하는 미장공 아저씨들의 작업 동영상을 하루 종일 보기도 하며 열의를 보였다.

미장이 되어있지 않던 골방의 바닥도 삽을 이용해 퍼내었다. 흙과 돌이 어마무시하게 나온다.
 미장이 되어있지 않던 골방의 바닥도 삽을 이용해 퍼내었다. 흙과 돌이 어마무시하게 나온다.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이번에 우리가 해야할 작업은 보일러 깔기였다. 보일러를 깔기 위해서는 바닥을 10cm 정도 까내고 수평을 맞춰 기초 미장을 한다. 그 후에 비닐과 스티로폼을 깔고 보일러 배관을 깔고, 그 위에 마감 미장을 해야 한다. 길고도 긴, 고생 중의 상고생인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우리의 함만으로는 힘들겠다 싶어서 나무꾼 보일러 아저씨에게 전화로 문의해봤다. 그런데 보일러 관을 까는 데에만 140만 원이라고 했다. 아... 140이라니, 너무 비싸다. 그래서 이번에도 사서 고생하기로 했다.

'그깟 보일러! 직접 해보지 뭐!!'

보일러 작업
 보일러 작업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보일러 작업
 보일러 작업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작은방, 큰방, 골방, 물 부엌에 이어 거실까지 모두 바닥을 파냈다. J는 '뿌레카'를 이용해서 미장된 바닥을 깨부수고, 도련님과 나는 열심히 통에 담아서 밖으로 날랐다. 가여운 나의 도련님은 지난번 천정 작업에 이어 보일러 작업까지, 가장 힘든 일을 할 때마다 와서 고생을 했다. 나는 그 당시 매우 지쳐있었는지 거실 자갈밭에 털썩 주저앉아 손으로 콘크리트 조각을 주워 모으고 있었다.

물 수평으로 잡아놓은 형광색 줄에 맞춰 석분을 깐다.
 물 수평으로 잡아놓은 형광색 줄에 맞춰 석분을 깐다.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바닥을 다 파낸 후에는, 물 수평을 잡아 눈에 잘 띄는 형광색 줄을 걸어 놓은 후, 퍼낸 바닥의 조각들을 다시 선에 맞춰 채워 넣는 작업을 해야 했다. 나는 왜 애써 퍼낸 바닥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잔뜩 골이 나있었다.

그리고는 남는 공간을 석분을 이용해서 형광색 줄(수평)에  맞춰 깔아준다. 앞마당에 쌓인 석분들이 그 당시에는 얼마나 큰 산처럼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산처럼 쌓여 있는 석분을 삽으로 퍼 담으며 삽질의 요령을 배워가고 있었다. 석분을 다 깐 후에는, 나는 다시 시멘 반죽을 하고, 도련님은 시멘 반죽을 나르고, J는 그 시멘 반죽을 바닥 석분 위에 부어 기초 미장을 했다.

비가 내리 며칠을 내려서 기초 미장이 마르는 데 꽤 오랜 날들이 지났다. 그 당시 J는 영 공사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자꾸 늦어지는 것 같아 조급해하고 있었다. 조급하고, 초조해 한껏 예민해진 J에게 나는 비가 내리는 김에 조금 쉬어가자고, 너무 조급해말라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 너무 늦다 채찍질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실은 그런 J를 보고 있노라면 나까지도 마음이 좋지 않은 그런 날들이었다.

깔끔하게 마감이 된 기초미장
 깔끔하게 마감이 된 기초미장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그러다 마침내 비가 그쳤고, 해가 떴다. 이제 박차를 가하고 앞으로 나아갈 때가 온 것이다. 바닥 미장이 마르고, 보일러 배관을 깔 수 있게 되었다. 이놈의 보일러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얼른 일을 마치고 떨쳐버리고 싶었다. 다행히도 우리의 전기 아저씨는 다재 다능하셔서 보일러 배관일도 할 줄 아는 멋진 사람! 이번에도 역시 도움을 받고, J도 열심히 보일러 배관 공부를 해서 보일러 배관을 깔았다.

습기 차단을 위해 비닐을 가장 먼저 깔아주고, 그 위로는 단열을 위해 스티로폼을  빈틈없이 깔아주어야 한다. 예전에는 스티로폼 없이 그냥 바로 보일러 관을 까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게 시공하면 열이 바닥 아래로 많이 빼앗겨 실제로 보일러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그리고 요새 스티로폼 대신 열반사 단열재(은박 단열재)를 까는 경우가 많은데, 스티로폼을 까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다고 한다). 스티로폼 위에는 '와야 매쉬'(와이어매쉬 인데 현장에서 '와야 매쉬'라고들 하셔서... 나도 편하게 와야 매쉬라고  한다)를 깔아주어야 하는데, 배관을 간격에 맞춰 고정시키기 위함이다. 이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면 그 위에 비로소 보일러 배관을 깔 수 있다.

보일러 배관 까는 작업
 보일러 배관 까는 작업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위와 같이 와이어 매쉬에 작은 철사를 이용해서 배관을 구부려 고정시킨다. 방 곳곳에 보일러 배관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시작하기 전에 계산을 해보고 깔면 좋다. 배관을 모두 깐 후에는 그 위에 마감 미장을 해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우리가 직접 하려고 시도했다. 내가 반죽하고 J가 작은 방부터 시작했지만, 마감 미장이라 반듯하게 수평으로 잘 나와야 하는데 영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오롯이 나 혼자서 시멘 반죽을 해서 날라주려니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이미 너무 지쳐있었다.

미장공 삼춘의 숙련된 손길
 미장공 삼춘의 숙련된 손길
ⓒ 박다비

관련사진보기


며칠 후, 어렵게 미장공 삼촌을 모셨다. 삼촌은 오래전에 미장일을 하셨지만, 지금은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우리의 부탁으로 도와주러 오신 것이었다(요즘 제주는 곳곳에 공사가 하도 많아서 미장공을 구하기가 힘들다). 역시 장인의 손길은 남달랐다. 도와주러 오신 전기 아저씨가 계속 시멘 반죽을 하고, 나는 그 반죽을 통에 퍼 담고, J는 나르고, 미장공 삼춘은 계속 미장을...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사서 고생 끝에 보일러 설치를 마쳤다. 지나고 보니 길고도 긴, 힘들고도 힘든, 시험의 기간이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 J와 나는 모두 지쳐있었고,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고 계속 늦춰져서 예민해져 있었다. 서로 상처 주는 말들을 내뱉고, 다투기도 했었다.

마침내 비가 그쳤고, 길고도 길었던 보일러 공사를 마무리 지었고, 긴장도 풀렸고, 서로의 마음도 풀렸다.

[농가주택 개조기 이전 기사 보기]

① 100년된 건물을 사람 사는 집으로 만들어라
100년 된 집에서 찾아낸 '오래된 보물'


태그:#농가주택, #리모델링, #제주농가주택고치기, #제주, #제주살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