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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11일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의 제3자 뇌물공여죄 혐의에 대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제 특검을 주목해야 할 상황.
  • 박근혜·최순실은 대한민국 정치체제의 부조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로'를 세웠다.
  • 정경유착은 새로운 게 아니다.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미군정이 드러서면서, 적산기업이 헐값에 한국 기업인들에게 넘어가면서 시작됐다. 인기 없는 정권의 선택은 재벌이었으니까.
국정농단의 두 '주역'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최순실(왼쪽)씨.
 국정농단의 두 '주역'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최순실(왼쪽)씨.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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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검찰청 특별수사본부는 박근혜 대통령 및 최순실에 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수사를 일단락지었다. 여러 혐의 중에서 특히 삼성그룹의 최순실·정유라 지원, 롯데 및 SK 그룹에 대한 K스포츠재단 자금제공 강요 등과 관련해 특별수사본부는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공여죄 혐의에 대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라면서 관련 자료를 박영수 특별검사에게 넘겼다.

형법 제130조에 규정된 제3자 뇌물공여죄는, 간략히 정리하면, 부정한 청탁을 들어준 뒤 자신이 아닌 제3자에게 뇌물을 제공하도록 유도하는 범죄다. 형법 규정은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 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라고 밝혀놨다.

대기업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774억 원이나 되는 거액을 내놓은 것은 단순히 최순실 때문이 아니다. 최순실에게 돈을 주는 게 박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기금을 출연했다고 말했다. 최순실 단독으로는 삼성그룹을 상대로 그런 심리적 압박을 가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압박의 진원지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재용을 비롯해, 청문회에 출석한 재벌 총수들은 한결같이 "대가성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돈을 내놓았다"라고들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도 피해자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재벌이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거금을 내놓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경험 법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제껏 항상 그랬듯이 합법적 지원을 가장한 특혜 제공이 없다면, 재벌은 절대로 그런 거액을 출연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특검 수사가 올바로 이뤄진다면, 최순실이 받은 돈이 대가성을 전제로 한 것이며, 재벌들이 그 돈을 낸 것은 최순실이 아니라 박근혜 때문이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수사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박근혜는 제3자 뇌물공여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박근혜 본인이 직접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때는 제3자 뇌물공여죄가 아니라 형법 제129조의 수뢰죄가 적용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정권과 재벌의 유착은 지금뿐 아니라 과거에도 항상 있었다. 그때마다 국민들은 매번 분노하고, 매번 비판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수십만,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토요일마다 거리로 뛰어나가 촛불을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여러 가지 사정이 복합적으로 한데 뒤엉키면서, 정경유착 관계가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태도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결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최순실의 캐릭터와 인격, 자격과 능력 없이 국정 핵심사항에 함부로 개입한 그의 주제 넘음, 그것을 허용하고 부채질하며 모종의 이익들을 챙긴 박근혜의 무책임함, 출처가 불명확한 돈으로 초호화 생활을 누린 최순실 일가의 행태, 다른 학생들의 정당한 기회까지 빼앗으면서 명문대생이 되고 체육특기자가 됐으면서도 뻔뻔함을 보이는 정유라의 오만함 등등이 한데 뒤엉키면서, 정경유착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과거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응집될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은 박근혜·최순실을 통해 정권과 재벌의 유착 관계를 보다 분명히 이해했고, 이런 악행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박근혜의 '즉각 하야(퇴진)'를 요구했다. 또 재벌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이라는 것도 보다 명확히 알게 되었다. 뇌물을 되로 바치고 대가를 말로 받는 그들의 사업방식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최순실 처벌과 더불어 재벌에 대한 처벌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의 잔재가 남긴 '치명적 바이러스'

서울 광화문광장 집회. 박근혜를 감싼 포승줄 속에 재벌들의 명패가 끼어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 집회. 박근혜를 감싼 포승줄 속에 재벌들의 명패가 끼어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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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박근혜·최순실은 대한민국 정치체제의 부조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로'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1945년 해방 이래 미군정 및 대한민국 정권 하에서 정권과 재벌이 유착해 국민을 억압하고 그 위에 군림하면서 국민 세금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려왔다는 사실이 두 사람 '덕분'에 좀 더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총독부를 앞세워 한국인들을 착취하고 이 땅에서 일본 기업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런 일본인 기업들의 재산이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한국에 남게 됐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이런 기업들을 적산(적국 재산) 불하라는 명목으로 자신들과 가까운 기업가들에게 헐값으로 나눠주고 그들과 협력해 이 땅에 대한 지배체제를 확립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일본인 기업들이 정권의 비호 하에 한국 기업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일례로, 조선생명 및 미쓰코시 백화점은 이병철(삼성)에게, 조선이연금속 인천공장은 정주영(현대)에게, 선경직물은 최종건(SK)에게, 조선제련은 구인회(LG)에게, 조선화재보험은 조중훈(한진)에게, 조선유지는 김종희(한화)에게 넘어갔다. 사례를 열거하자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적산기업은 식민통치 하에서 신음한 우리 국민들의 몫이다. 일본은 조선인 부유층을 착취하지 않았다. 주로 서민들만 착취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적산기업들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국민들의 몫으로 환원됐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것은 정권의 보호 속에 재벌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것이 해방 이후 한국 재벌이 성장하는 데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해방과 함께 국민의 몫으로 돌아갔어야 할 재산이 정경유착에 의해 재벌들한테 넘어갔으니, 대한민국은 정권과 재벌의 국민재산 강탈행위로부터 시작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권력과 금권의 유착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시대나 다 있었다. 하지만, 1945년 해방 이후에는 그 유착의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대한민국 정권의 정통성 부족을 들 수 있다.

1947년 4·3항쟁 당시 제주도민 3만 명(정부 발표로는 1만4000명)이 학살되고, 1949년과 1947년에 대중적 지도자인 김구와 여운형이 각각 암살을 당한 사실 등에서 느낄 수 있듯이, 1945년 이후의 대한민국 정권은 수많은 한국인들에 대한 살상을 기반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정권이란 존재가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정통성 없는 집단이었기에, 그렇게 권력이 취약한 집단이었기에, 대한민국 정권은 금권을 가진 재벌들에게 한층 더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45년에 성립된 이 땅의 지배체제, 한마디로 1945년 체제는 그런 의미에서 부조리한 것이었다.

박근혜·최순실은 그런 부조리의 습성을 이어받아 '신나게' 이익을 챙기다가 2016년의 찬바람을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이들로 인해 정경유착의 검은 실체가 드러났고, 정권뿐 아니라 재벌들까지도 국민들을 지배하는 현실이 한층 더 분명해졌다. 평범한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고도 항상 빡빡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로 인한 분노가 가슴 밑바탕에 있기에, 국민들이 쌀쌀한 날씨를 무릅쓰고 거리로 뛰어나와 박근혜·최순실뿐 아니라 재벌의 척결까지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재벌도 공범"이라는 외침까지 나오게 만들었으니, 박근혜·최순실이야말로 그 어떤 진보적 인물보다도 1945년 체제의 부조리를 잘 드러낸 '영웅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안은 재벌이, 밖은 주한미군이

재벌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는 국민들.
 재벌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는 국민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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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45년 체제를 떠받쳐 온 것은 재벌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권의 존립기반을 형성하는 또 다른 한 축이 있다. 그것은 광화문광장 동편에 자리한 미국대사관에 의해 상징되는 미합중국과 주한미군이다. 재벌이 안에서 대한민국 체제를 지탱한다면, 미국과 주한미군은 밖에서 이 체제를 지탱한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6월 최순실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즉 사드의 제작사인 미국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의 회장과 직접 만났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최순실과 록히드마틴 측의 만남이 5월부터 9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런 보도들에 따르면, 양측 간에 합의된 사업 규모는 최소 100조 원이며 초기 계약금만 70조 원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재벌들이 낸 돈을 훨씬 크게 상회하는 거액을 미국 기업이 최순실의 주머니 속에 넣어줬을 것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

광화문광장 동편의 미국대사관.
 광화문광장 동편의 미국대사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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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록히드마틴 측은 최순실과 연루된 적이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록히드마틴과 최순실 연루 관련 보도가 확정적인 사실로 드러난다면, 재벌 및 미국과의 부정한 제휴 관계를 발판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대한민국 정권의 부조리가 한층 더 명확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해외와 전국의 촛불 집회에서 재벌들의 초상화뿐 아니라 오바마나 트럼프의 그림까지 등장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국민들은 1945년 체제의 정당성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나라의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존립기반에 내재된 근원적인 부조리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최순실은 대한민국 정권의 부조리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를 제공해준 인물로 역사에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그들은 역사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영광을 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태그:#정경유착, #촛불집회, #최순실, #박근혜, #미르·K스포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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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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