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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광화문광장 등 서울 도심에서는 모두 6차례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국민이 준 권력을 듣도 보도 못한 민간인에게 농단케 한 대통령을 더 이상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촛불민심은 매번 거대한 분노로 타올랐고 마침내 국회의 탄핵을 성사시켰다. 10일의 7번째 집회는 '승리의 축제'로 열리게 됐다.

이번 촛불집회가 유독 주목을 끄는 것은 100만이 넘는 시민이 모이는 유례없는 대형집회인데도 폭력이나 연행자 없는 평화시위라는 것. 그 흔한 안전사고 하나 없었고 집회가 끝난 뒤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하고 깨끗한 거리로 돌아와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 같은 '기적'의 뒤엔 집회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게 도운 서울시 공무원들의 땀이 숨어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지난 3일 촛불집회 후 경복궁역에서 지하철로 귀가하는 시민들. 이날 경복궁역은 20만명의 이용객이 몰렸다.
 지난 3일 촛불집회 후 경복궁역에서 지하철로 귀가하는 시민들. 이날 경복궁역은 20만명의 이용객이 몰렸다.
ⓒ 서울메트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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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명 이용하던 역에 20만 명 몰려... "계단·환기구 안전에 가장 신경"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백정현 역장(59)은 지난 10월 29일 첫 촛불집회가 열린 이후 12월 3일 6차 대회까지 매주 토요일 역으로 출근하고 있다.

시청역, 안국역, 종각역 등과 함께 경복궁역은 이번 시위로 인해 가장 바빠진 역이다. 특히 경복궁역은 청와대 인근까지 진출하는 시위대가 가장 마지막 해산하는 곳이라 이튿날 새벽까지 홍역을 치른다.

평소 하루 3만 명 정도 이용하는 역이 토요일만 되면 평균 15만 명 이상이 몰린다. 시위대가 가장 많았던 지난 토요일은 20만 명 가까운 시민이 경복궁역을 이용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안전문제다. 발 디딜 틈 없이 빽빽이 사람이 들어찬 계단과 에스컬레이터에서 누가 발을 헛디디는 경우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안전요원을 배치해놓고도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역사 밖에 설치된 환기구도 요주의 시설이다. 집회를 지켜보기 위해 간혹 올라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무게에는 버틸 수 있게 돼 있고 안전띠를 설치해 못 들어가도록 해놓긴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아직 타고 있는 촛불을 들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다. 촛불이 쓰레기통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화재위험이 있다.

드물지만 술에 취해 역무원에게 다짜고짜 시비를 걸고 욕설하는 사람도 있다.

"공무원에게 정부의 잘못을 따지고 싶었나 봅니다. 우리도 똑같은 국민이고 똑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집회가 매주 계속되다 보니 이용객들을 맞는 노하우도 생겼다. 지방에서 올라온 시위대를 위해 1회권(교통카드가 없는 이용객들을 위한 지하철 승차권)을 미리 준비해놓는 것.

매표기 앞에 줄을 서서 사다 보니 한 장 사는데 30분이 넘게 걸려 혼잡이 더해지는 것을 보고 아예 1회권을 준비해놓고 현금으로 팔고 있다. 탄핵이 가결돼 광화문광장에서 '축하집회'가 예정된 9일 역시 일반권 1천매와 소아권 200매를 준비해놨다고 한다.

막차가 떠나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것을 확인한 뒤 백정현 역장이 퇴근하는 시간은 새벽 1시 반 경. 이 시간에 교통편이 있을 리 없다. 그 역시 일반 시위대들과 마찬가지로 독립문이나 아현역까지 걸어가 택시를 타고 귀가한다.

그러나 백 역장은 매번 집회 때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는데도 파손된 시설 하나 없고, 화장실 한번 이용하는데 수십 분씩 줄을 서도 불평 하나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위해 개방화장실 안내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는 서울시 직원과 시민단체 회원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위해 개방화장실 안내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는 서울시 직원과 시민단체 회원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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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시민의식 체감... 위험한 행동땐 주변 시민들이 나서서 설득·자제" 

거리에 설치된 환기구 안전을 책임지는 시설관리과 박철규 팀장도 달라진 시민의식을 체감하고 있다.

집회가 주로 열리는 거리와 지하철역 주변에 설치된 환기구는 모두 64개. 이곳에 시민들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원뿔형 라바콘과 안전띠를 두르고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올라가도 문제가 없도록 만들어져있지만 2m가 넘는 환기구 위에 올라간 사람이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통 집회 모습을 보다 잘 보기 위해 올라가죠. 어떤 사람은 그 위에 올라가서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 안전요원이 설득하면 대개 내려오지만, 안 내려오는 사람에게는 시민들이 '위험하니 내려와라', '평화시위인데 왜 위험한 일을 하냐'고 항의해 내려오게 하기도 합니다. 주최 측에서 위험한 일을 하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해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집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화장실 문제다. 서울시는 집회 주최 측에 요청해 서울광장, 청계광장, 광화문광장 등에 모두 16개의 간이 화장실을 설치했지만 이것만으론 턱이 없다.

그래서 광장 주변 건물주들에게 요청해 건물 내 화장실을 개방토록 유도하고, 개방화장실 1천여 곳의 지도를 만들어 붙이거나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건물마다 안내 스티커를 붙였다.

생활보건팀 신귀식 주무관은 "갑자기 커진 집회여서 초기에는 화장실이 부족해서 불편하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왔는데, 집회가 거듭되면서 개방화장실이 늘어나 원활히 운영되고 있다"며 "화장지·수도요금이 부담될 텐데도 협조해주는 건물주들과 질서 있게 이용해주는 시민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3층에 마련된 종합상황실. 직원들이 광화문광장 화면을 띄워놓고 촛불집회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3층에 마련된 종합상황실. 직원들이 광화문광장 화면을 띄워놓고 촛불집회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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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로 보는 촛불집회 장관... 어서 시국 정상화됐으면"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에 가면 밤을 새워 집회 상황을 체크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하3층에 마련된 상황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울 시내 곳곳의 교통상황을 보여주는 10여 개의 화면이 눈에 확 들어온다. 지난 2013년 디지털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HD급 고화질로 현장의 모습을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집회가 벌어지고 있는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주요 시위 현장은 보다 큰 화면을 띄워놓고 혹시 모를 안전사고 발생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장에 있는 직원들이 보내오는 카카오톡 메시지도 현장 파악에 큰 도움이 된다.

이곳 직원들도 매주 토요일마다 당번을 정해 새벽 2시 교통이 풀릴 때까지 퇴근을 못하고 있다. 평소 하루 4~5건 오던 교통문의 전화도 20~30건으로 늘었다고 한다.

상황실 근무한지 5년이 넘었다는 양윤계 주무관은 "광장을 꽉 메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질서정연하게 집회를 치르는 것을 보면 장관"이라면서도 "어서 시국이 해결돼 시민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태그:#촛불시위, #서울시, #상황실, #개방화장실, #경복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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