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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4지구의 불탄 상가
 서문시장 4지구의 불탄 상가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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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요. 서문시장에 또 불이 났다고 하네요. 새벽에요. 아직까지 불을 못 껐대요."

11월 30일 아침에 아파트에서 서문시장 화재 소식을 들었다.

"우짜노? 안 그래도 나라도 뒤숭숭하고 경제가 안 좋은데 서문시장까지 불이 나서... "

대구 주민들 모두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한숨을 쉬었다.

전국 3대 시장의 하나로 손꼽히는 서문시장은 대구 시민들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한 '시장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한동안의 부진을 딛고 '도시철도 3호선 개통' 등의 호재에 힘입어 다시 도약하던 중이었다.

우리나라 어느 전통시장에서건 장꾼이나 고객들은 거의 중노년층이다. 서문시장도 마찬가지였지만 판세가 달라지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가게가 젊은이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시장에 점차 생기가 돌았다. 그러던 차에 큰불이 난 것이다.

서문시장 화재가 발생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3일 필자는 4지구 화재로 피해를 본 상인 두 명, 숙녀복 전문점을 운영하는 안성희씨와 천연염색 및 한복가게를 운영하는 정선희씨를 만나 시장 내 상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2억 피해봤다... 보험 보상 거의 못 받을 듯"

지난달 30일 화재로 인해 완전히 불에 타버린 서문시장 4지구 건물.
 지난달 30일 화재로 인해 완전히 불에 타버린 서문시장 4지구 건물.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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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대통령 왔을 때 한바탕 소란이 났다지요? 박사모들 플래카드 만들어 와서 박수치고... 동영상 보니 박사모 회원들과 시장 상인들하고 말싸움도 있었더라고요. 시장 상인들이 불난 집에 와서 박수 치고 난리 치냐고 소리 치니, 박사모 회원인 듯한 사람이 '당신들은 보험 다 받을긴데 뭐 유난 떠느냐고 대꾸하더라구요."

상인 안성희(아래 안) : "불이 날 위험이 높으니 보험회사에서 보험을 잘 안 들어줘요. 그리고 들어준다 해도 보상액수는 쬐매한데, 보험료는 되게 비싼 기라요. 시장 상인들이 물건에 대한 보상은 아마 거의 못 받을 거예요."

상인 정선희(아래 정): "이번에 피해 본 물건값이 2억 가까이 돼요. 돈으로 다 계산할 수가 없어요. 천연 염색 천 무늬 내가 공들여 디자인 한 천, 여러 군데서 발품 팔아 모은 거 등등..."

 : "상인들은 돈을 많이 벌어도 그걸 예금해놓지 않아요. 버는 족족 물건을 사서 가게에 쟁여 놓지. 그러니 불이 나면 고스란히 다 날아가는 거지요."

: "1층만 불이 나고 사실 2층까지는 불이 안 옮겨붙었어요. 근데도 불난 이후로 우리 가게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어요.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르고 귀금속 가게 같은 데는 도난 문제 때문에 경찰이 출입을 통제해서요. 가게가 얼만큼 탔는지도, 괜찮은 물건이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니 답답할 수밖에요. 나무로 만든 돈 통에 돈 넣어 놓은 집도 있는데, 그게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고... 하루종일 멀찍이서 불구경하다가 돌아올 뿐이에요. 메케한 냄새 때문에 오래 쳐다보지도 못해요."

그들은 불난 집에 마치 애라도 떼놓은 심정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 "서문시장 상인들이 암만 박근혜 대통령 편이 많다고 해도 누리꾼들이 좀 너무한 것 같아요. 댓글에 서문시장 박근혜 좋아하다 불 잘 났다고 써놓고, 그런 글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더라니까요. 안 그래도 속상한데 어찌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지..."

기자 : "네티즌도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 많으니, 너무 마음 상하지 마세요."

: "정치인들은 자기 왔다갔다는 거나 자랑하려고 사진이나 찍어싸코, 우리한테 별로 도움 되는 것도 없어요."

기자 :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 그죠? 대구시장님은 어떻게 신경을 좀 쓰고 있나요?"

: "예. 워낙 큰일이니... 전에 2지구 불났을 때의 선례가 있어서 일을 해결하는데 훨씬 빠른 것 같아요. 새 건물을 지을 때까지 임시 시장 개설할 곳 찾고 있는데, 개인적 생각으로는 계성고등학교 자리가 좋아요. 2호선 지하철에서 가깝고, 장소도 널찍하고..."

기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마침 계성고도 올해 이사 가고 비어 있으니..."

 : "임시 시장 정할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으니 가게를 또 얻어야 해요. 발 빠른 사람들은 벌써 얻었어요. 서문 지하상가로 제일 많이 간 것 같아요."

기자 : "함께 얻어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찾아가기도 쉽고..."

서문시장 화재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이용하는 시민들
 서문시장 화재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이용하는 시민들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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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조심 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시장

 : "700개 가까운 점포가 피해 입었지요. 서문시장 상인들만 빈털터리 된 게 아니에요. 상인들이 장사해서 먹여 살리는 가족 수가 얼마예요? 곱하기 4를 하면 2천 5백명이 넘지요? 우리에게 납품하거나 우리가 물건을 떼어오는 공장이나 가게도 있잖아요? 우리 장사가 스톱되면 거기도 당연히 지장이 있지요? 서문시장에 의지해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 수만 명이 될 거예요. 그니까 대구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요. 대구의 큰 돈 흐름은 서문시장이 주도해요."

기자 : "서문시장 왔다갔다할 때 시장 안에 소방서가 있어서 미더웠어요. '여러 번 화재가 나니 이젠 시장 안에 소방서를 설치했구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왜 출동이 그리 늦었어요?"

: "소방서가 4지구에서 100m 여 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어요. 우리도 이해가 안 돼요. 신고도 빨리했는데... 매주 수요일, 토요일 두 번씩 소방차 출동 연습도 해왔거든요."

: "워낙 여러 차례 화재를 당해 놔서 상인들 한 사람, 한 사람 불조심을 많이 해요. 가게마다 전기 차단기가 다 따로 달려 있어요. 퇴근 때는 꼭 내리고 가요. 전체적으로 전기를 내리는 차단기가 또 있으니까 어떤 가게가 혹시 내리지 않더라도 상관이 없지요."

기자 : "2단지도 화재 후 다시 지었잖아요. 2단지 지하는 처음에 수산시장처럼 지었는데, 요즘 각종 식당이 늘어나서 성업을 이루더라고요. 요리를 위해 가스 등 연료통이 증가하니까 좀 걱정이 됐어요. 원래 설치가 가능한 설계가 되어있는지?"

: "상가 사이에 있는 노점 음식점들도 전부 큰 가스통 옆에 세워 놓고 장사하니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요. 상가만 단속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 가스 쓰다가 불똥 튀면 그대로 원단에 옮겨붙는다니까요. 어떤 때는 상가번영회에서 이권 때문에 너무 무리하게 허가를 내주는가 싶기도 해요. 시장에는 전부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전기 누전에 의한 화재 위험도 늘 도사리고 있어요. 불법 개조도 많고요. 점검, 보수가 필요해요."

그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말을 이었다.

: "그래도 잠시 모든 걸 놓고 싶어요. 8년 동안 가게에 모든 걸 걸고 종종걸음 치며 바쁘게 살았지요."

연일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해맑았다. 물건들과 함께 마음의 욕심도 태워버린 듯이 담담한 표정이었다.

7일자 뉴스 보도에 따르면 정부와 업계는 지난해 초 재래시장 자영업자들을 위한 정책성 화재보험 상품을 내놓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준비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흐지부지된 이 보험을 서문시장 화재를 계기로 재검토했으면 한다.

재래시장에 대한 지원. 육성책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재래시장은 시장 경제의 출발점이자 서민 경제의 주춧돌이다.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전통 음식과 낮은 물가는 서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한 버팀목이다. 부산의 자갈치 시장이나 대구 서문시장에 중국 관광객이 쇄도하듯이 재래시장은 엄청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지자체마다 재래시장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고, 이들의 노력으로 이전보다 재래시장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주차 문제, 안전시설, 상인들의 친절도 향상 등을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전문 인력과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재래시장 조언가나 전문가 그룹을 시청이나 구청 산하에 배치한다든지, 시장 소식을 알 수 있는 잡지 등을 발행하여 재래시장 발전과 서비스 향상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서문시장 화재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고 화재 복구와 재발 방지 대책을 고민하는 마음으로 상인들과 인터뷰 형식의 글을 싣습니다.



태그:#서문시장, #서문시장화재, #재래시장, #전통시장, #대구서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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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공산 자락에서 자스민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여행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쓰고 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보는 ssuk02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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