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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군인은 좋은 직업으로 다른 인도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습니다. 군인선발시험도 경쟁이 치열하고 인재들이 많이 지원합니다. 지난달 인도 쪽 히말라야를 등반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인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인도 관련 인터넷 신문기사를 훑어보았습니다.

올해 초 보도된 인도 관련 뉴스 중에 이런 기사를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16년 1월 인도의 모디 총리는 전격적으로 인도국민군(India National Army) 총사령관을 지낸 네타지(Netaji) 수바스 찬드라 보스(Subhar Chandra Bose, 1897년 1월 23일~1945년 8월 18일, 벵골출생)와 관련된 비밀문서 100점을 공개했습니다.

인도 식민시절 영국 총리를 지낸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Attlee)의 발언이 충격적입니다. 영국이 인도를 포기한 이유는 국민회의와 마하트마 간디 때문이 아니라 네타지 보스가 조직한 인도국민군(INA)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인도국민군'의 존재를 알게 됨으로써 대영제국 인도군(British Indian Army)이 더는 영국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북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실전 경험을 두루 익힌 대영제국의 주력군으로 전군의 80%에 해당하는 250만 인도군이 '인도국민군'으로 각성하여 총독부로 총구를 돌려 총공격에 나서면 영국은 지구 위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영국은 인도에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간디의 국민회의에 모든 걸 내주고 허겁지겁 떠나고 말았습니다.

네타지 보스는 변호사의 아들로 콜카타대학을 차석으로 입학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여 인도 고등문관 1차 시험에 합격한 수재입니다. 1921년 간디의 국민회의에 투신하여 1927년엔 사무총장에 올랐고 1930년에는 콜카타 시장을 역임합니다.

이어 간디의 지명을 받아 1938년엔 국민회의 의장에 오릅니다만 간디가 인도의 무장독립투쟁가 바가트싱을 처형해 달라고 영국인도총독에게 탄원을 올리고, 1, 2차 세계대전에 인도의 자치권을 획득하고자 인도의 젊은이들에게 대영제국을 위해 싸울 인도군으로 참전하라고 촉구하는 모습을 보고 간디에게 환멸을 느끼고 1939년 간디가 지명한 의장 후보에 맛서 경쟁 후보로 선거에 임해 예상을 뒤엎고 의장에 선출이 됩니다.

이때 간디는 보스의 승리는 나의 패배라며 자신을 따르는 힌두교 기득권층의 보스 흔들기를 유도하여 보스의 의장 당선 3개월 만에 사임하게 하고 3년간 당권행사금지처분을 받게 합니다.

그해 9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보스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간디에게 고개를 숙이고 무장봉기를 설득하지만, 영국을 도와야 한다는 간디의 단호한 거절과 밀고로 1940년 7월 투옥되고 맙니다. 이에 보스는 옥중단식을 결행하여 민심을 고려한 인도총독부의 가택연금을 기화로 극적인 대탈출을 감행합니다.

보스는 아프가니스탄을 거처 러시아로 또 독일로 이탈리아로 일본으로 떠돌며 영국으로부터 인도의 독립을 모색하며 대영제국 인도군 포로와 투항자 2만 명을 모아 1943년 6월 16일 인도국민군을 창설하고 총사령관에 취임합니다.

1943년 10월 2일 간디의 생일에 맞추어 싱가포르에 자유인도 임시정부를 세우고 인도국민군 장교로 구성된 11명의 내각을 중심으로 임시수반에 오릅니다. 이 자유인도 임시정부는 독일 이탈리 일본 등을 비롯한 9개국이 승인한 명실상부한 정부가 되어 공식적으로 영국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간디 부대, 네루 부대, 자유 부대로 구성된 2만 명의 3개 부대는 이날 싱가포르에서 거리행진을 하며 훗날 독립 인도의 애국가로 채택된 인도국민군가를 불렀습니다. 인도국민군은 대영제국에 대항하여 일본군과 함께 버마지역의 임팔전투에 참전하여 영국군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웁니다.

종전 직후, 인도총독부는 인도국민군 지휘부를 군사재판에 부쳐 300명의 장교를 반역죄로 기소를 하지만 인도 전역에서 민중들의 총궐기가 일어나자 전원 석방하고 간디의 국민회의에 자치권을 이양하기 시작하여 1947년 인도를 독립시키고 인도를 떠나기에 이릅니다.

아쉽게도 네타지 보스는 패전국인 추축국 쪽에서 독립무장투쟁을 전개한 바람에 공식적으로는 1945년 8월 19일 대만을 이륙하여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 폭발사고로 화상을 입고 20일 사망한 것으로 23일 발표가 됩니다.

후일 보스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끊이질 않자 인도 정부는 1956년과 1970년 그리고 2006년 보스 사망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를 하기에 이릅니다. 간디의 국민회의가 집권한 1956년과 1970년 조사보고서는 알려진 내용과 다르지 않았지만, 인도인민당이 집권했던 2006년의 보고서는 비행기사고는 위장되었고 사망에는 의문점이 있다는 조사보고서가 작성됩니다. 하지만 2006년 말 재집권한 국민의회는 2006년 조사보고서 채택을 거부합니다.

인도인들의 애정이 어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도국민군처럼 대부분의 인도인은 지도자 또는 총통을 의미하는 네타지의 의미처럼 네타지 보스를 인도 독립의 은인으로 생각하며 웅장한 레드포트 성에도 영국국왕 조지 5세의 동상을 치우고 네타지 보스의 동상을 세웠고 인도 곳곳에는 많은 네타지 보스의 동상이 세워져 아직도 그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보스에 대한 인도인들의 정서는 마치 버마의 아웅산, 베트남의 호지명,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신중국의 모택동, 북조선의 김일성, 이집트의 나세르, 유고의 나토처럼 인도의 독립영웅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참고:
1. EXCLUSIVE: Attlee told Bengal governor, Netaji, not Gandhi, got India freedom
2. What is the truth behind Subhas Chandra Bose air crash story?
3. Netaji's declassified files trigger 'War Criminal' row, show Nehru in bad light
4. Netaji Subhas Chandra Bose: A glimpse into the hero's personal life
5. PM Modi declassifies 100 secret Netaji files, family members welcome move

국민의회를 쥐고 흔드는 간디가 보스를 의장에 지명하고 국민의회의 진행을 지시하고 있다.
▲ 마하트마 간디와 네타지 보스 국민의회를 쥐고 흔드는 간디가 보스를 의장에 지명하고 국민의회의 진행을 지시하고 있다.
ⓒ 저작권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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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인도군 포로와 투항자 2만 명을 모아 1943년 6월 16일 인도국민군을 창설하고 총사령관에 취임
▲ 인도국민군 총사령관 네타지 보스 대영제국 인도군 포로와 투항자 2만 명을 모아 1943년 6월 16일 인도국민군을 창설하고 총사령관에 취임
ⓒ 저작권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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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 두데이가 무디 수상의 보스관련 자료를 공개를 보도하며 마련한 자료.
▲ 네타지 보스와 인도국민군 인디아 두데이가 무디 수상의 보스관련 자료를 공개를 보도하며 마련한 자료.
ⓒ 인디아투데이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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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인도의 모디 총리는 전격적으로 인도국민군(India National Army) 총사령관을 지낸 네타지(Netaji) 수바스 찬드라 보스(Subhar Chandra Bose, 1897년 1월 23일~1945년 8월 18일, 벵골출생)와 관련된 비밀문서 100점을 공개를 다루는 인도 텔레비젼 방송
▲ 네타지 보스의 인도독립 기여도를 보도하는 로컬 이브이 2016년 1월 인도의 모디 총리는 전격적으로 인도국민군(India National Army) 총사령관을 지낸 네타지(Netaji) 수바스 찬드라 보스(Subhar Chandra Bose, 1897년 1월 23일~1945년 8월 18일, 벵골출생)와 관련된 비밀문서 100점을 공개를 다루는 인도 텔레비젼 방송
ⓒ 인디아투데이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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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총독 클레멘트 애틀리는 영국이 인도를 포기한 이유가 국민회의와 마하트마 간디 때문이 아니라 네타지 보스가 조직한 인도국민군(INA)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인도국민군'의 존재를 알게 된 대영제국 인도군(British Indian Army)이 더는 영국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실전 경험을 두루 익힌 대영제국의 주력군으로 전군의 80%에 해당하는 250만 인도군이 '인도국민군'으로 각성하여 총독부로 총구를 돌려 총공격에 나서면 영국은 지구 위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은 인도에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간디의 국민회의에 모든 걸 내주고 허겁지겁 떠나고 말았다.
▲ 인도 식민시절 마지막 인도총독을 지낸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Attlee)의 발언 인도총독 클레멘트 애틀리는 영국이 인도를 포기한 이유가 국민회의와 마하트마 간디 때문이 아니라 네타지 보스가 조직한 인도국민군(INA)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인도국민군'의 존재를 알게 된 대영제국 인도군(British Indian Army)이 더는 영국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실전 경험을 두루 익힌 대영제국의 주력군으로 전군의 80%에 해당하는 250만 인도군이 '인도국민군'으로 각성하여 총독부로 총구를 돌려 총공격에 나서면 영국은 지구 위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은 인도에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간디의 국민회의에 모든 걸 내주고 허겁지겁 떠나고 말았다.
ⓒ 인디아투데이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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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http://blog.daum.net/enature/15854412)에도 올린 글입니다.



태그:#인도국민군, #마하트마 간디, #네타지 보스, #대영제국 인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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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연구소 연구원 근무하다 버지니아텍에서 농공학을, 브라운대학에서 지질학을 공부했으며 노스이스턴 공대 환경공학석사와 로드아일랜드대학 토목환경공학박사를 취득했다. 플로리다주 리 카운티 공무원을 시작으로 미연방공무원으로 국방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에 근무하고 있다. 2003년 한국정부로부터 5.18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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