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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감시당하고 있었다. 아마 처음부터 그랬는지 모른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상급부대에 보고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어떤 경로를 통해 보고되고 있는지 몰랐다.

GP에서는 외부와의 소통은 제한적이다. 특히 외부인과의 접촉은 극히 제한적이다. 부식추진을 하기 위해 통문으로 나갈 경우 담배 한 개비 피울 시간을 이용해 통문 초병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1개월에 한 번 꽃마차가 들어오면 무슨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들뜬 기분으로 PX병과 바깥 세상 이야기 몇 개를 나누고, 간혹 수색대원이 GP로 잠깐 들어오는 경우가 있지만 그들은 몹시 지쳐있기 때문에 말을 붙일 분위기는 아니었다. 물론 재수가 좋으면 지난달처럼 대남방송 관계로 여군들이 들어오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 경우였다.

일상적인 소통도구는 상황실에 설치된 통신장비가 유일하다. 무전기도 있지만 그것은 작전상의 공무적인 보고 형태이기 때문에 소통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오직 유선 전화 만이 유일한 소통도구라고 하면 틀리지 않다. GP에 있는 전화기는 GOP나 FEBA에 있는 전화기와는 다른 최신식 설비로 구축되어 있어서 연결이 매우 용이했다. 물론 부대 밖으로 연결되는 전화는 아니다.

최신식 통신장비로 북한의 동태를 파악 보고도 열심히 하지만, 옆 GP 상황병과 사적인 얘기도 하고, 중대 CP에 있는 동기들과도 FEBA에서 하던 대로 공과 사를 넘나드는 얘기들도 많이 한다. 특히 중대CP와는 직속 상급부대이기 때문에 수시로 연락을 취한다. CP와 연락이 두절된다면 탯줄이 끊기는 것처럼 생존에 막대한 지장이 있고 정말 완전히 고립되고 만다.

나의 머릿속에 말년휴가 만이 가득 차 있던 여름 초입 어느 날이었다. 이제는 당초 약속한 대로 교대 시점인 3개월이 지났고, 철책 밖으로 나가 말년휴가도 가야 하는 판국에 이렇게 섬에 갇혀 있는 나로서는 동기인 중대CP 인사병 황OO에게 맨날 불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대 인사병 주제에 무슨 힘이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나는 녀석에게 말년휴가도 못 찾아먹고 제대하는 거 아니냐며 매일 닦달거렸고, 녀석은 그래도 나의 넋두리를 다 받아주었다.

그 날도 이런 주제로 녀석을 못살게 했는데, 얘기 말미에 녀석은 다소 진지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대대에서 들은 얘긴데, 니네 GP가 군기가 빠졌다고 머러 하더라. 긴장 좀 하시고 잘들 하시라구, 고 병장님."

녀석의 말에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3개월 이상 되었으니 군기가 빠진 것은 당연한지도 몰랐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로 해서 3개월을 교체 기준 일로 잡는 게 아닌가. 하지만, 황OO의 말이 대충 어림짐작으로 말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며칠 후에 알았다.

며칠 후, 보급병 송OO이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 내 앞에 앉은 후 이렇게 입을 열었다.

"고 병장님, 어제 중대 추 병장님 하고 보급품 문제로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가 말미에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종합을 하면 정영일이가 군견병하고 싸운 것도 알고 있고, 누구라고 찍지는 않았지만 방송병 하고 고스톱 친 것도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대대장 귀에 들어갔다는 거죠. 도대체 이건 뭐죠? "

그런 구제적인 사실을 밖에서 안다는 것은, 그러니까 이 섬 안에 밀고자가 있다는 것 분명했다. 그래, 우리는 감시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털보 송OO, 킹콩 문OO, 박사 한OO를 식당으로 호출했다. 이 상황을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 숙고를 해야만 했다.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혼돈에 빠지기 마련이다. 당연히 그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첫째 우리는 밀고자가 누구인지 찾는데 열중했다. 이 벙커에서 잠을 자는 모든 대원은 밀고자에서 자유롭다는 전제 하에 한 명 한 명 검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있는 네 명도 결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 한OO가 안경을 한번 치켜 올리며 말을 이었다.
"지난달인가, 상황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그 때 차준환이가 어디 하고 전화하는 소리를 잠깐 엿들었거든요. 지금 문득 떠오르는 게, 그러니까 우리 지피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였어요. 머 누가 어떻고 하는... 지금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그의 얘기를 숨을 죽이고 듣고 있었다. 사실 외부와 그나마 자유롭게 소통을 할 수 인원은 상황병인 나와 차OO이었다. 나는 아니라고 단정하면, 차OO이 우선 순위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합리적 의심인지 모른다. 녀석 말고 다른 대원은 쉽게 개연성을 찾을 수는 없었다. 복잡한 추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선 며칠 차OO의 동태를 감시해보기로 하고 그날 회의를 마쳤다. 빼도 박지 못하고 감시자은 당연히 나였다. 어쨌거나 나의 부사수를 감시해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이 정말 밀고자라면 감시자가 감시자를 감시하는,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지 모를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감시를 당한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은데, 그 밀고자가 나와 함께 근무하는 부사수라는 관계 설정은 물론 사실이라면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의 관계 정도로 밀접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 이후 나는 차OO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웠다. 특히 상황근무 비번일 때도 나는 슬그머니 상황실에 올라가 녀석 주위를 맴 돌았고,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녀석의 전화 통화를 엿들으려는 의도로 잠시 멈추어 서곤 했다. 녀석이 눈치 채지 않기 위해 나는 무슨 스파이처럼 태연한 척 하려고 때론 안 해도 되는 말을 툭툭 던지기도 했다. 심증만 증폭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우리는 누군가에 감시를 당하고 있으며, 그 감시자가 누구인지를 찾고 있다는 상황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차OO을 포함해 대원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서로를 의심할 수뿐이 없는 상황이었다. 들어내 놓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행동과 말은 그런 상황 인식에 속박되어 감시에서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혔고, 따라서 언행에 주의를 하고 위축되고 심지어는 자기 검열도 하기에 이르렀다. 다혈질인 정OO은 "개XX 잡히면 확 발라버리겠'노라고 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물론 이런 분위기에 대해 우리는 내부는 물론이고 밖에 다 절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차OO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과연 그가 어떻게 그런 임무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섬에 들어오기 전부터 밀고자였을까? 아니면 이곳에 온 후에 대대에서 그를 지목하여 밀고자의 임무를 주었을까? 섬에 들어와서 그런 임무를 받는 다는 것은 주변 여건 상 어렵기 때문에 전자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물론 그게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런 의심을 가지고 녀석에 대한 지나온 기억을 더듬어 보니 무언가 분명치는 않지만 법상치 않은 언행들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나면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관찰자의 시선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미루어 짐작하니까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OO은 아니었다. 모두가 녀석을 의심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일주일 후, 정OO이 엉덩이에 종기가 나서 치료차 의무실에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숨겨져 있는 것 같은 의문의 무전기를 발견했고, 날짜가 적혀있는 의미심장한 수첩도 보았노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의무병은 일반적인 업무에 대한 통화는 상황실 전화를 사용해 왔는데 무전기를 별도로 감추고 있었다는 것은 의구심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위생병이 따로 무전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건 의심할 만한 개연성이 충분했던 것이다. 대대CP와 직선거리로 불과 2km도 안되기 때문에 무전 통화거리는 충분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섬에 있는 특과병들이 다 그렇듯 의무병도 우리와 잘 섞이지 않았고 군견병과 방송병들과 잘 어울렸다. 그런 현상은 다른 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만의 울타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과 몇 개월씩 한솥밥을 먹어도 우리는 그들을 잘 몰랐으며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우리를 알려고 접근하지 않았다.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거래만이 관계를 연결하고 있었다. 연대감이 형성될 소지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특과병들은 우리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물품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맡은 임무 외에 또 다른 임무가 있는지 우리는 파악할 권한이 없었다. 군견병과 방송병은 군단 직할부대 소속이었고, 의무병은 대대소속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의무병을 더욱 의심하는 이유는, 군견병과 방송병은 몇 단계 높은 상급부대 소속이기 때문에 우리와 직접적인 관심사를 파악할 위치에 있지 않았고, 그런 반면 바로 직속 상급부대 의무대 소속인 의무병은 긴밀한 상명하복의 관계였기에 의심의 정도는 명확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딱 맞는 퍼즐의 완성이었다. 우리를 감시하므로 해서 그 동태를 가장 필요로 하는 부대는 바로 대대였던 것이다.

우리는 며칠 후 정OO에게 다시한번 치료를 받으면서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날 녀석은 다혈질 성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의무병에게 "야 이 스파이 같은 XX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대들고 말았다. G섬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일명 스파이 사건은 이렇게 사달이 나고 말았다.

사실 의무병이 밀고자라는 확증은 없었다. 무전기가 동태 보고용으로 사용했는지는 심증 만 있을 뿐 물증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의무병도 그런 와중에서도 실토하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나 예민해져 있는지도 몰랐다.

설령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렇다고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이 망망대해 비무장지대에 홀로 남아 있는 우리는 어찌보면 당연히 감시를 당하고 있어야 하는 존재는 아닐까. 우리의 심리적 변화는, 조금만 비약시키면 내부적 충돌로 총기사고를 유발시킬 수도 있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을 할 수도 있기에 감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고의 예방차원에서 철저하게 감시를 당하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었다. 거부할 명분도 없었다. 무력감은 사치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똘방졌던 의무병은 교체되었다. 새로 온 의무병은 한 계급 높은 상병이었다. 그도 전임 의무병과 마찬가지로 우리와 섞이지 않고 군견병과 방송병들과 금방 친해졌다.

여전히 전임 의무병이 밀고자였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었고, 후임도 계속 우리를 감시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확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확실한 것은, 그들과 우리의 관계가 팩트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의무병의 행위를 제어할 수 없으며 그 어떤 권한도 없다는 것이었다. 대놓고 감시해도 우리는 무력하다는 것이다.

이제 이 섬을 떠날 날도 길어야 한 달이었다. 한 달 후 나는 종로2가 어느 건물 모퉁이를 거닐고 있을 것이다. 숨 막힐 것 같았던 그 여름, 지워지기엔 너무나 깊이 페인 그 부조화된 기억을 골방에 던져놓고, 그렇게 잊으려고 안간힘을 쓸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골방에 던져 놓았던 기억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의식의 저편에서 길게 손을 뻗어 내 목을 흔들어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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