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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라서, 국민연금, 건강보험료가 월 30만 원 넘게 나간다는 내 친구는, 당장 급여는 오르지 않고, 물가만 오르니 미래를 위한 이 돈들이 아깝게 느껴지기만 한다며 한숨을 내 쉰다. '근로자'인 나는 그보다 부담이 적지만, 지금 내는 보험료를 60세까지 내도 65세에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지금 화폐 가치로 5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긴 노후를 생각하면 헉 소리 날 만큼 불안하다.

그런데, 그런 돈을 모아 관리하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여름에 자기 집 한 달 전기료로 2300만 원 내는 재벌 3세의 세습을 완성시켜주려고, 6천억 원의 손실을 보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했다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도왔던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메르스 사태로 경질되고도 4개월 만에 곧장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이 되었다. 삼성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바친 돈은 드러난 것만 239억 원이라 하니, 삥을 뜯겼다기보다 톡톡히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최고 권력자에게 사실상의 뇌물을 바치면서, 삼성이 자신감을 얻은 문제가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다. 삼성 측이 먼저 제안해서 만든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는 2015년 여름, 피해자 보상을 위해 공익법인을 설립하라는 내용을 담은 조정권고안을 내놨다.

그러나 조정위원회를 만들자던 삼성은, 정작 권고안이 나오자 이를 거부하고 본인들이 피해자를 선별하여 '알아서' 보상하겠다며 독자적인 보상위원회를 만들었다. 자기가 깔아 놓은 판을 스스로 걷어차 버린 셈이다. 8년간 문제를 은폐하고 대화를 거부하던 가해자가 피해자를 선별해 보상하겠다는 주장에 당연히 당사자들이 반발했고,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지난해 10월부터 400일이 넘는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시기가 최순실이 독일에 설립한 코레스포츠에 우리 돈 35억 원을 송금한 시기란다.

그 돈이 노동자에게 갔더라면...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앞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 농성장에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를 모델로 한 '반도체 소녀상'이 놓인 모습.
▲ 삼성전자 앞 '반도체 소녀상'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앞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 농성장에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를 모델로 한 '반도체 소녀상'이 놓인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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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정부가 자기들의 잇속 계산에 눈 어두워 우리 삶의 안전을 외면하는 현실은 지금도 계속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꼼수를 부린 3차 담화를 준비하는 사이에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노동자는 죽어갔다. 2016년 11월 28일 오후,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했다. 30대의 이 노동자는 기계장치를 점검하다가, 중장비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현대제철 당진 공장은 공장을 세울 때부터, 하도 사망 사고가 많아 죽음의 공장, 죽음의 용광로라고 불렸다. 2013년에는 아르곤 가스 누출로 5명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한꺼번에 사망한 것을 비롯해 총 그해 10명의 노동자가 사망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현대제철은 2015년 매출액 16조1325억 원, 영업이익 1조4641억 원의 성과를 냈다고 한다. 어마어마하다. 이런 영업이익을 내는데 노동자의 생명이 스러지는 것은 '부수적 피해'라 해야 할까? 이번 사고가 발생한 장소에서, 2010년 5월에도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통로가 좁아 기계에 몸이 끼일 수 있다고 노조가 여러 차례 개선을 요구한 곳이다. 수십 명의 노동자가 죽어가는 데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예방 대책에 힘과 돈을 쏟았다면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의 결과로 우리가 잃게 된 것이 사람의 생명이라는 데 화가 치민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김군"도 마찬가지다. 2015년 강남역에서 아주 똑같은 사고가 있었다. 당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 노동자도 역시 사망했다. 이후 반드시 2인이 함께 작업해야 한다는 매뉴얼이 생겼다지만,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뛰어다니던 청년 노동자에게는, 2명이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나 여유가 없었다. 역시나, 막을 수 있었던 그 사고의 결과는 한 우주의 소멸이다.

김군을 보며, 흙수저 계급 청년의 안타까운 사정만을 본다면, 아쉽다. 우리 자신을 함께 들여다보면 좋겠다.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안 돼요, 못하겠어요'라고 말할 수 없고, 안전을 요행으로 빌며 일하러 가는 나 자신 말이다.

안전사고만의 문제겠는가. 능력주의를 빙자한 부장의 괴롭힘에 모멸감을 느끼지만 견디는 수밖에 없고, 사장의 성희롱이 오늘은 심하지 않기를 바라며, 내년에 있다는 회사 구조조정의 칼끝이 나에게는 향하지 않기를 기원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일터를 지키는 내 모습 말이다.

지진이 나도 야간 자율학습을 강행해야 한다는 교사의 호통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 옆 공장에서 화학물질이 누출돼 불안한 마음에 조기 퇴근 했더니 징계 공문이 날아드는 노동자들 모습에도 이런 내가 들어 있다. 

박근혜 퇴진 만큼 중요한 것

지난 11월 29일 오후 비선실세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가운데, 청계광장 부근 파이낸스빌딩앞에서 파업중인 철도노조원들과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박근혜 퇴진, 박근혜 구속' 촉구 촛불집회 지난 11월 29일 오후 비선실세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가운데, 청계광장 부근 파이낸스빌딩앞에서 파업중인 철도노조원들과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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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멀리 있지 않고, 요행은 계속되지 않는다. 올해 초에는 삼성전자 하청 업체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던 20대 청년들이 메탄올에 중독되어 집단으로 시력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노동자는, 그것도 2~3달 일하고 옮겨 다니는 파견 노동자는 알 필요 없다는 세상에서, 물어보고 따져보지 말고 가만히 일하라는 세상에서, 자신들이 어떤 물질을 사용하는지도 모르고 일하던 젊은이들은 평생 시력을 잃은 채 살아가게 됐다.

정부는 자주 그렇듯,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며, 전국적으로 메탄올을 사용하는 업체들을 점검하고, 환자가 발생한 업체에서 숨겨진 환자가 없는지 찾아보겠다고 소동을 피웠다. 그러나 기가 막히게도, 뒷북 행정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더 이상 환자를 찾지 못 하겠다던 노동부 발표가 난 뒤 몇 달 후, 같은 업체에서 일하다 실명했다는 노동자들이 나타났다. 심지어 이들 노동자의 사고는 2015년에 있었다. 5명의 노동자가 시각을 잃고,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더 많은 피해자를 찾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무게감보다는, 어서 덮어야 할 치부처럼만 느껴진 모양이다.

우리가 촛불을 내려놓았을 때, 다시 살아갈 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광장 너머의 세상에서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아닐 뿐 아니라, 안전이 요행이 아니고 우리 권리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생명이 매출액이나 순이익보다 중요하게 생각됐으면 좋겠다. 자기 몸이 다치고 병 들면서, 생명보다 이윤이 앞서는 비정한 세상을 우리에게 알려준 피해자들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나의 안전과 건강을 다른 사람의 판단에 맡기지 않고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이 시국에도 우리가 2016년 인권 10대뉴스를 꼽아보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와 최순실과 더러운 정치인들과 셈 빠른 기업들의 진흙탕 싸움 속에서 우리가 잃은 것들, 잃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 이름조차 붙지 않았던 이런 사건과 사람들에게 이름 붙이는 일. 그것은 우리가 박근혜를 당장 퇴진시키기 위한 촛불을 드는 것과 함께 꼭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지금 잠시 시간을 내어, 2016년 우리가 우리의 인간다움을 위해 했던 싸움, 인간답지 못한 현실을 보여주며 사라져간 사람들을 떠올려 보시기를 권한다. '2016 인권 10대 뉴스' 온라인 페이지가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 덧붙임. 2016 인권10대뉴스와 숨겨진인권뉴스 투표는 12월 1일(목)부터 7일(수)까지 7일간 진행됩니다. 투표는 홈페이지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입니다.



태그:#인권10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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