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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아래 동국대 원총)가 다음주중 대학원생 조교에 대한 퇴직금 미지급을 이유로 동국대학교를 노동부에 고발할 방침이다.

동국대 원총은 이달 초부터 진행한 <동국대 조교들의 노동자성 판단을 위한 근무실태 설문조사>를 통해 70여 명의 피해 증언을 확보했다. 신정욱 원총학생회장은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조교의 근로자성 해당 여부와 퇴직금 미지급 등 각종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확인했다며 이미 변호사 선임 등의 법적 대응 절차를 마쳤다고 말했다. 

신정욱 원총학생회장은 노동부 고발과 함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 김민섭씨와 다음 스토리펀딩 사업을 진행해 변호사 수임 비용을 마련하고, 대학원 조교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야권 국회의원실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노동하는 학생도 노동자다"
▲ 동국대학교에 걸려 있는 현수막 "노동하는 학생도 노동자다"
ⓒ 조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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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가?

이번 동국대 원총의 노동부 고발에서 법적 판단의 핵심 관건은 결국 조교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일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2조 제1호에서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근로자 개념을 준용하고 있으며, 동국대의 경우 2008년 이후 조교에 대한 퇴직금 지급을 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동국대 원총은 조교에 대한 퇴직금 미지급 외에 4대 보험 미적용, 근로계약서 미교부, 주휴수당 미부여, 연차유급휴가 미부여, 교수·직원들의 갑질, 불교 수계 법회 참석 강요 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계약의 형식이 민법상의 고용계약인지 또는 도급계약인지에 관계없이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 1994.12.9., 94다22859)라며 '사용종속관계'의 유무를 근로자성 인정의 핵심 판단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판례는 다시 사용종속관계의 존부를 판단하는 구체적 지표로 아래와 같은 기준을 설시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의 근로자성 판단기준

"①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②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③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④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⑤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⑥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⑦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⑧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다만,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였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하여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위의 판례)라며 사용종속관계 판단의 실질적 지표들과 형식적 지표들을 나누어 설시하고 있다.

동국대 원총의 <동국대 조교들의 노동자성 판단을 위한 근무실태 설문조사>는 변호사와 노무사의 자문에 따라 위의 대법원 판례의 근로자성 판단지표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며, 수합된 70여 부의 설문조사지 결과에 의하면 동국대 조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게 신정욱 원총학생회장의 설명이다.

근로자적 지위와 피교육자적 지위가 병존하는 유사 사례의 경우

조교의 근로자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대법원 판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교와 마찬가지로 근로자적 지위와 피교육자적 지위가 병존하는 위탁실습생과 수련의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대법원이 인정한 바 있다(대판 1987.6.9., 86다카2920, 대판 1991.11.8., 91다27730).

또 고용노동부 질의회시에서 사립대학교 조교가 대법원 판례가 설시한 근로자성 판단지표와 유사한 요건을 갖춘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한 사례가 있다(근기 68207-452, '97.4.8).

이상의 법리적 판단에 비춰볼 때 조교 업무 형태에 따라 근로자성 판단이 다르게 나올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이나, 상당수 행정조교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성을 인정받으면 퇴직금은 물론이고 주휴수당, 연차휴가 등의 근로기준법상 보호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

원총학생회실에서 취재에 응하고 있는 모습
▲ 신정욱 동국대학교 원총학생회장 원총학생회실에서 취재에 응하고 있는 모습
ⓒ 조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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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인가, 장학금인가?

또 '근로장학금'이란 어색한 명칭도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 김민섭씨는 다음 스토리펀딩 연재글 <학생에게 장학금이 아닌 임금을>에서 "'근로'와 '장학'은 어울릴 수 없는 역설의 관계"라며 장학금이란 명칭 대신 정당한 근로의 대가로서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타당한 지적이라 판단된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5호에 따르면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임금 대신 근로장학금이란 명칭으로 조교 급여가 지급되는 이유는 대학 등록금에 관한 규칙 제3조에 따라 "전체 학생이 납부하여야 할 등록금 총액의 10% 이상에 해당하는 등록금을 학생에게 면제하거나 감액하여야" 하는 규정을 충족하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

실제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자료 제출 대학 중 절반이 넘는 24개 대학원들이 조교 1만 1616명의 급료 67억 원을 장학금의 형태로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관련 기사: 노웅래 의원 "연구조교 근로계약 안쓰고 장학금 지급").

조교 문제, 타 대학들로 확산될까

서울 지역 13개 대학원생이 주도해 만든 전국대학원생총학생협의회는 올해부터 일부 국회의원들과 협력해 대학원생과 조교 관련 입법 청구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대학원생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린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이란 웹툰을 제작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때 "대학원생 놀리지 마라. 잘못된 선택을 한 것 뿐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인터넷 세계에서 잠시 유행한 적이 있다. 학교 바깥도 힘들지만 안도 마찬가지다. 고상하게 논문을 검색하고 고서(古書)나 뒤적이며 연구에 매진하는 대학원생은 드물다. 대부분 조교 일이나 학내외의 알바를 병행한다. 그럼에도 조교의 노동권 문제는 대학이란 장소의 특수성, 권위적 사제관계 등에 짓눌려 오래도록 가려졌다. 이러한 은폐의 현장에 균열을 낸 게 작년 한 해 동안 화제가 되었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시리즈였다.

책 표지
▲ 김민섭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책 표지
ⓒ 조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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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 따르면 "대학은 그 어느 기업보다 노동권의 치외법권 지대"였다. 지난 8월 미국의 노동관계위원회(NLRB)는 컬럼비아대학의 수업조교(Teaching assistants)에게 노동조합결성권을 포함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된다고 밝힌 바 있다(관련 기사: 미 사립대 대학원생 노조 청신호..."수업조교, 노동자로 봐야"). 동국대의 이번 노동부 고발이 우리나라 조교 근로자권리 찾기 운동의 불쏘시개가 될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1. 본 기사 작성자는 2016년 제25회 공인노무사 시험 최종합격자입니다.
2. 본 기사는 법무법인 창조의 이용우 변호사와 노무법인 정원의 조영롱 노무사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3.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제32대 총학생회장 신정욱은 자신의 임기와 상관 없이 이번 소송건을 끝까지 떠안고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이번 소송 외에 조교의 노동권 찾기 운동을 위한 사업은 제33대 총학생회로 인계된다고 합니다.
4. 혹시 독자원고료를 보내주시면 동국대학교 소송비용으로 기부하겠습니다.



태그:#조교, #근로자성, #동국대학교, #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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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 반려견 '라떼'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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