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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즈마니아의 오염되지 않은 바다에서 참지 양식을 하고 있다.
 타즈마니아의 오염되지 않은 바다에서 참지 양식을 하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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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즈마니아(Tasmania) 서부의 황량한 해안과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기웃거리며 퀸스 타운(Queenstown)에 도착했다. 호주에는 여왕(Queen)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설이나 동네가 곳곳에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퀸즐랜드(Queensland)라는 지명도 '여왕의 영지'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퀸스타운에 예약한 숙소는 집을 통째로 빌려준다. 건네주는 열쇠를 받아 집안에 들어서니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곰팡내가 난다. 죽은 파리가 바닥에 즐비하다. 시설도 빈약하다. 전체적으로 썰렁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늦은 시각에 예약한 숙소를 바꿀 수도 없다. 여행하다 보면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안위한다. 세상 사는 것 또한 그렇듯이...

짐을 대충 풀고 동네를 돌아본다. 인구 2000명이 안 되는 작은 동네다. 그러나 유명한 광산이었다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동네 한복판에는 품위 있는 오래된 건물이 있으며 광산이 융성했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설물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광산 붐이 시들해진 지금, 전체적으로 쇠퇴해 가는 동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노다지를 찾아온 사람들이 떠난 후의 쓸쓸함이 동네 곳곳에 묻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스트라한(Strahan)이라는 바닷가 동네를 찾아 나선다. 타즈마니아의 관광 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람선을 타기 위해서다. 스트라한 선착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관광객이 서성거리고 있다. 주로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다.

유람선에 올랐다. 이백 명 이상 태울 수 있다는 큰 배다. 바람을 피해 배 뒷부분 갑판에 가본다. 커다란 두 개의 프로펠러에서 내뿜는 물살이 장관이다. 맨 위에 있는 갑판에도 올라가 본다. 조타실에서는 선장 혼자서 배를 운항하면서 관광객에게 안내 방송도 하고 있었다.

조타실에 들어가니 선장이 옆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제스처를 보인다. 항해사를 위한 또 다른 안락한 좌석이다. 각종 계기와 항로를 보여주는 스크린도 바로 앞에 있다. 시야도 넓다. 항해사가 된 기분이다. 커다란 운전대 대신 조이 스틱으로 배를 조정하며 안내 방송하고 있는 선장과 흐뭇한 눈웃음을 나눈다.  

유람선이 '지옥의 문(Hells Gates)이라는 이름이 붙은 바다로 향한다. 대양으로 나가는 항로가 위험하기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좁은 항로에 있는 두 개의 돌섬에 등대가 하나씩 있다. 조금 떨어진 육지에는 집도 한두 채 보인다.    

서서히 '지옥의 문'을 빠져나온 배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바다를 가리킨다. 고래가 헤엄치고 있다. 고래가 자맥질하는 광경을 사람들이 즐긴다.

고통의 섬을 향하여

타즈마니아의 명소 고든 강(Gordon River)의 수려한 모습. 강물이 갈색이다.
 타즈마니아의 명소 고든 강(Gordon River)의 수려한 모습. 강물이 갈색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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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구경을 마친 유람선은 본격적으로 고든 강(Gordon River)을 거슬러 올라간다. 특이한 것은 강이 갈색을 띠고 있다. 언뜻 보면 오염된 강처럼 보인다. 직원에게 이유를 물으니 이곳에 서식하는 풀에서 나온 타닌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몸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며 강 색깔 때문에 오히려 고기가 숨어 살기에 좋다는 말도 덧붙인다.

가는 길에 참치 양식장에 들른다. 양식장 주위에는 수많은 갈매기가 참치에게 주는 작은 물고기를 가로채려고 맴돌고 있다. 어부는 세찬 물줄기를 뿜으며 갈매기를 쫓고 있다. 바다에 설치한 거대한 그물 안에는 웬만한 사람크기의 참치가 좁은 공간을 휘젓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영상이 떠오른다.

유람선은 좁아지는 강을 따라 계속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간다. 강 한가운데 항로를 표시한 이정표에 가마우지, 물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물이 갈색을 띠고 있어 고기 잡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혼자 앉아 있는 가마우지가 처량해 보인다.

깊은 숲 국립공원 강가에서 서너 명의 사람이 카누를 강에 띄우려고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인적 드문 강에서 뱃놀이를 하며 캠핑하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유람선이 선착장에 정박한다. 새라(Sarah Island)라는 작은 섬에 도착한 것이다. 관광 안내원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본다. 1800년대에 죄수들이 배를 만들던 섬이다. 이 지역에는 배를 만드는 목재인 상록수(huon pine)가 많다고 한다. 또한, 물살이 빨라 죄수가 탈출할 수 없기에 죄수를 가두기에도 좋은 곳이라고 한다. 죄수를 이용해 배 만들기에 좋은 장소인 셈이다. 

폐허가 된 벽돌 건물 앞에서 안내원은 죄수들의 열악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던 사례도 소개한다. 배를 만드는 소모품 정도의 대접을 받으며 고된 노동 속에서 지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배에 타라는 신호다. 갑판에서 섬을 카메라에 담는다. 울창한 숲 사이로 새들이 숨바꼭질하고 있다. 신선한 강바람도 적당히 불고 있다. 잔잔한 물결이 섬 주위에서 찰랑거린다. 공해가 없기에 밤에는 헤아릴 수 없는 청명한 별이 쏟아질 것이다. 낙원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만한 섬이다.

그러나 수많은 죄수에게는 고통의 땅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사랑이 없는 곳이라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낙원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시드니 '한호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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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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