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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논설의원이 쓴 23일자 "'박 對 이'도 점입가경"이란 제목의 '만물상' 칼럼 중에서.
 최재혁 논설의원이 쓴 23일자 "'박 對 이'도 점입가경"이란 제목의 '만물상' 칼럼 중에서.
ⓒ 조선일보 온라인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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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쳇말로, 애간장이 녹아 들어가나 보다. 아니 '똥줄'이 탄다고 해야 하나. 성난 민심이 정국을 주도하는 '촛불의 시대', 보수정권의 연장 가능성이 점차 줄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조선일보> 역시 화들짝 놀라 제대로 '민낯'을 드러내는 중이다. 보수정권 연장과 야당 대권주자 흠집 내기는 여전하지만, 확실히 다급하고 시급해 보인다.  

"12일 광화문 집회에 백만 명 가까이 모인 이후 야당 정치인들 사이엔 촛불 민심에 편승하려는 경쟁이 한창이다. 박·이 두 시장이 특히 두드러진다. 맨 먼저 '대통령 하야'를 주장한 것도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거친 발언과 '촛불'을 의식하는 행동들을 하고 있다."

최재혁 논설의원이 쓴 23일 자 "'박 對 이'도 점입가경"이란 제목의 '만물상' 칼럼은 애교(?) 수준이다. 최근 대선주자 지지율이 급상승 중인 이재명 성남시장과 보수층의 전통적인 타격 대상이었던 박원순 시장을 대립각에 놓은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이 둘을 비판하는 근거도 우습기 그지없다.

박원순 시장은 어제(22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국무위원 총사퇴"를 요구한 것도 모자라 서울시청 앞 광장 야외 스케이트장 공사를 하루 미뤘다는 이유로, 이재명 시장은 '세월호 7시간'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을 직무유기·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는 이유다.

최 논설의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친발언과 '촛불'을 의식하는 행동"이 고까웠나보다. 이 시국에 '촛불 민심'을 적극 수용하고 반영하는 야권 대선주자들이 그렇게도 못마땅한 <조선일보>. 하지만 진짜 '민낯'은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주필'인 김대중 고문이 선보였다. 제목부터 화끈하다. <[김대중 칼럼] 이제 '박근혜'는 과거다>. 

사실, 민낯이라기보다 시꺼먼 속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테다. 본문에서는 제목보다 더 나아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국정운영 방향에 참고했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그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이미 박 대통령을 '죽였다'.   

"어제의 박근혜는 이미 죽었다"

 23일자 [김대중 칼럼] 이제 '박근혜'는 과거다.
 23일자 [김대중 칼럼] 이제 '박근혜'는 과거다.
ⓒ 조선일보 온라인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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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차 촛불도 했으니 그만하면 사람들의 분노와 뜻은 하늘에라도 닿았을 것이다.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아니고는 더는 의미가 없다. 우리 마음속에서 어제의 박근혜는 이미 죽었다. 이제는 사태를 거리에 방치하지 말고 정치권으로 끌어당겨 거기서 대타협을 했으면 한다. 현 정치권 가지고 부족하다면 정치 원로들이라도 나서야 한다. 아니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 원로 인사들이 모여 현 사태를 끝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했으면 한다."

'100만 촛불'의 힘이 확실히 두려웠던 듯싶다. 이제 그만 촛불을 들라고 징징대는 꼴이 볼썽사납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우주의 기운'마냥 "분노와 뜻은 하늘에라도 닿았을 것"이라니, 성난 촛불이 멈췄어야 하는 근거가 부족하다 보니 샤머니즘을 끌어들일 태세다.

김 고문은 심지어 "우리의 마음속에서 어제의 박근혜는 이미 죽었다"고 선언한다. 다행히(?) "우리의 마음속에서"란 전제가 붙었다. 그에 대한 김 고문의 진심(?)은 더 이상 캐묻지 말아야 예의지 싶다. 저 표현 자체도 비장해서 더 웃기지만, 김 고문의 이번 칼럼은 그야말로 갈팡질팡 방향을 못 잡고 있다. 보수층의 난맥상과 '멘탈붕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박 대통령의 사면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현행법과 제도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통상적이고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일 때 얘기다.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적 자구책이 절실한 여건에서는 특별법적 출구를 마련할 수도 있는 일이다. 누가 다음 정권을 이끌게 되더라도 지금의 '박근혜 문제'를 슬기롭게 넘기지 못하면 그와 그의 정부는 임기 내내 '안티 세력'의 비협조와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도 있을 법하다.

기회에 민감(?)한 문재인씨가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준다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며 "퇴진 후에도 대통령의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그런 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대권 인사가 최초로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언급한 것은 흥미롭다. 중요한 것은 이제 '박근혜'는 사실상 끝났고 우리는 '박 이후' 앞을 보며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을 필두로, "반드시 구속"이란 주장이 나날이 높아가는 와중에 "사면"이라니. 심지어 절실한 여건에서는 "특별법"이라도 만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아래 더민주) 대표의 '명예로운 퇴진'론을 가져오는 기민함을 선보인다.

문재인 전 대표도 용인했으니, 특별법이든 제정해서 사면시키고 어서 '포스트 박근혜'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하야 후 망명"이란 일각의 주장이 제기되는 이 와중에 사면이라니. 꿈 깨시라. 어불성설도 도가 지나친다.    

<조선>의 제1명제, "보수정권 연장"

지난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에서, 전국으로!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에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에서, 전국으로!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에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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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고문의 '멘탈 붕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칼럼 서두, 김 고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 한 이유 중 하나가 "자기가 지금 물러남으로써 민주당의 문재인씨에게 유리(有利) 또는 결정적 대권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란다. '보수정권 연장의 꿈'이 강하다 보니, 없는 '박 대통령의 혼'도 보이게 된 걸까. 

김 고문은 그러면서, '5% 지지율' 박 대통령이 '문재인 집권'을 피하고 싶은 보수세력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고, 국민적 비난을 받고 있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의 '박근혜 올인'도 '대권 헌납'을 막아야겠다는 전략이라고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을 늘어놓는다.

'보수 정권 연장'에 모든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지극히 이기적으로 "나만 살고 보겠다"는 벼랑 끝 전략을 구사 중인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다 '우군'으로 보이는 해탈의 경지에 올라선 듯 보인다. 물론, 김 고문의 이러한 '멘탈붕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심화되고, 100만 촛불이 타오르던 지난 10월 말부터 계속됐다.

"정확히 14개월 후 새 대통령이 탄생하면 박근혜 정권은 사실상 끝난다. 개헌과 상관없이 그렇다. 이 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해야 하는 일의 우선순위는 행정적으로는 업무의 마무리이고 정치적으로는 보수 정권의 재창출이다(중략).

그 연장선상에서 정권마저 야당인 민주당으로 넘어가면 박 대통령은 물론 보수적 가치들은 험한 꼴을 겪게 되어 있다. 문재인씨가 이끄는 민주당 친노의 노선은 대북·외교·국방·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가치들을 깡그리 뒤집을 기세다. 따라서 그들이 정권을 잡으면 박근혜의 통치는 청문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 다시 말해 보수 정권의 재창출이 안 되면 '박근혜'도 지워지게 돼 있다." (<보수 정치의 고난>, 10월 25일자 김대중 칼럼 중)

"그다음의 선택은 국민에게 맡기는 것이다. 야당에 맡기라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이제 정국의 초점은 야권으로 넘어가게 돼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권의 기회가 도래한 만큼 야권은 그 자리를 놓고 자기들끼리 속된말로 피 터지게 싸울 것이다. '최순실 정국'에서 보여준 야당의 꽃놀이패는 박 대통령 못지않게 실망스러웠다.

나라 꼴이 어찌 됐건 아랑곳없이 얼굴에 웃음을 애써 감추면서 박 대통령과 집권당을 향해 쏟아낸 막말들은 많은 국민에게 '박 대통령에게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저들에게 정권 맡겨도 괜찮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박 대통령 퇴진 요구가 역풍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 '제3지대'라는 새로운 정치 영역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朴 대통령의 길 네 가지>, 11월 8일자 김대중 칼럼 중)

박근혜 정권 창출 1등 공신 <조선일보>, 자성이 먼저다

지난 11월 8일자 김대중 칼럼 <朴 대통령의 길 네 가지>.
 지난 11월 8일자 김대중 칼럼 <朴 대통령의 길 네 가지>.
ⓒ 조선일보 온라인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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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김 고문의 예언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겨우 맞았다. 지금 박 대통령의 안중에는 '보수정권 연장'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인다. 게다가 김 고문이 고언한 '박대통령의 네 가지 길', 그러니까 '1. 책임총리 또는 거국 중립내각 2. 탄핵 3. 하야 4. 환골탈태' 중 대통령은 탄핵을 선택했다.

박 대통령의 격렬한 저항을 보자니, 김 고문이 네 가지 경우의 수 중 하나를 맞히긴 한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결코 그 '탄핵'의 길을 원했던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사실, 김 고문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보수층을 결집시키려는 그 노력은 눈물겹다. 야권 대선주자들을 흠집 내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부역자들이 국민들에게 공히 거센 비판과 자성을 촉구 받는 이 와중에 '보수정권 연장'만 부르짖고 있을 땐가. 통렬한 자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론만 놓고 보면, 박근혜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인 <조선일보>야말로 화끈하게 반성하고 가는 게 맞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 있어 TV조선은 JTBC와 함께 종편의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아니, 사활을 걸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물론, 내년 종편 재승인을 앞두고 박근혜 정부를 끌어내리는 편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고문' 역할을 했던 김대중 고문 역시 쩨쩨하게 '문재인 때리기'는 그만두고, 더 대국적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1등 신문'에 걸맞게 국민들의 관심이 조선일보에, '김대중 칼럼'에 쏠려 있다는 점을 주지해 주시라.


태그:#박근혜,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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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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