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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방송된 <뉴스룸>의 '여객선 사고' 문건 단독 보도.
 16일 방송된 <뉴스룸>의 '여객선 사고' 문건 단독 보도.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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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들끓었다. 누구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고 했다. 비단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향한 사회적인 공분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사람이면 어떻게 그러느냐는 '인륜'에 대한 질타와 회의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이 이 정권과 대통령, 그들의 하수인들에게 던지는 분노를 정점으로 이끄는 보도였다. 지난 16일 방송된 JTBC <뉴스룸>의 '세월호 문건' 관련 단독 보도가 그랬고, 이를 접한 시청자들과 국민들의 반응이 그랬다.

"저희 JTBC는 또 다른 민정수석실 문건을 입수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불과 두 달 뒤에 작성된 이 문건은 대통령이 독자로 돼 있는 맞춤형 보고서입니다. 문제는 그 내용인데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라고 칭하면서 "여객선 사고를 빌미로 한 투쟁을 제어해야 한다"고 돼 있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국정원이 작성한 뒤 민정수석실을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대하던 태도가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세월호를 그저 여객선으로 치부하고 싶었던 국정원,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박 대통령. 그 내용이 인면수심 그 자체다. 오직 '권력' 유지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그 어디에도 '국민'이나 '안전'은 없다. 아니, 대통령의 '안전'한 권력 유지만 가리킨다.

<뉴스룸>이 입수해 보도한 이 문건은 국정원이 작성하고 민정수석실이 검토하고 박 대통령이 최종 독자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뉴스룸>은 이 문건을 올해 8월 간암으로 별세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유족 측으로부터 입수했다고 밝혔다. 김 수석은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불화 끝에 지난해 1월 청와대를 떠난 인물이다.

보고서 작성 시기는 참사 두 달 후, 실종자 12명을 끝까지 수색하던 2014년 6월 19일부터 27일로 알려졌다. '불과'라는 표현이 딱 알맞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국민들 전체가 도탄과 집단적 우울증에 빠진 시기였다. 실제 내용을 보면 왜 분노가 극에 치달을 수밖에 없는지, <뉴스룸>의 이 보도가 왜 파괴력이 큰지, 왜 그토록 이 정부가 세월호 관련 이슈에 그토록 민감하게 집착했는지 절감하게 된다.

"시체장사" 운운했던 이들의 배후는 국정원과 청와대

16일 방송된 <뉴스룸>의 '여객선 사고' 문건 단독 보도.
 16일 방송된 <뉴스룸>의 '여객선 사고' 문건 단독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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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도 상승국면에서 맞닥뜨린 '여객선 사고' 악재가 정국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국정 추진력 약화·사회 분위기 저하 등 위기에 봉착. 대통령님 지지도가 64.3%(4월)까지 상승세를 이어가다 여객선 사고 여파로 40% 후반대로 하락"
"여객선 사고 후유증·재보선 등으로 국정 정상화 지연"
"여객선 추모집회가 소규모·과격시위로 변질 양상"
"정부·보수권 협력 하 투쟁 조기 종식 노력 배가"
"보수언론·단체들의 적극적인 맞대응 집회·여론전 전개 병행"

문건 속 문장들로 많은 것이 설명된다. 또 저 내용이 현실로 반영됐다. 그저 한 '여객선 사고'로 인한 '악재'일 뿐이라는 식이다. 오로지 관심은 박 대통령의 지지도다. 문건 속 '국정 정상화'라는 건, 이를 테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일 것이다. 실제로 2014년은 최근 제기된 의혹에 따르면, 최순실이 활발하게 전방위적으로 나라 전체를 유린하고 좌지우지했던 시기 아니었나.

참사 '진상 규명'에 관한 언급은 없다. 희생자에 대한 추모나 유가족에 대한 위로도 당연히 없다. 그래서 오로지 관심은 '여객선 추모'가 어떻게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영향일 미칠 지로 쏠린다.

"정부·보수권"이 협력해야 했다. 왜 새누리당 의원들과 정부 관료들이 "시체장사" 운운하며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쏟아 됐는지 설명된다. "보수언론·단체들의 적극적인 맞대응 집회"와 "여론전"이 실제로 전개됐다. 전경련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추모 집회에 허구헌날 나타나서 유가족들을 할퀴고, 일베가 광화문광장에서 '폭식투쟁'에 나섰는지 설명된다. 국정원이 기획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추동한 '선동'에 놀아난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여객선 사고'라니... 오직 '박근혜 국정운영'만 봤던 집권세력

16일 방송된 <뉴스룸>의 '여객선 사고' 문건 단독 보도.
 16일 방송된 <뉴스룸>의 '여객선 사고' 문건 단독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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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세력'의 국정 발목잡기가 부담이라면서 그 해 6·4 지방선거를 통해 뽑힌 진보교육감이나 세월호대책회의,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을 거론합니다. 언론에 대해서도 '매체별 논조 차이가 심화될 것'이라며, 일부 보수지가 정부 비판에 나서는 데다, 방송사 노사 갈등, 종편의 독자행보 강화가 부담을 준다는 분석까지 덧붙였습니다.

심지어 국민을 무시하는 듯한 대목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꺼내든 '국가 개조론'에 대해 "국민들의 성급하고 높은 기대감이 걸림돌"이라고 했습니다. 보고서는 "대통령님의 강력한 지도력으로 하반기 국정운영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갈무리해 보자.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을 분열 국면으로 몰아가고, 세월호 유족들을 궁지로 몬 것이 다름 아닌 국정원·정부여당·청와대 그리고 박 대통령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국민들이 걸림돌'이라고도 했다. 가당치도 않았던 박 대통령이 내민 '국가 개조론'의 가치를 적확하게 판단한 국민들이 '걸림돌'이란다. 국민 전체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대통령 자신'만 바라봤던 박 대통령과 그의 수하들, 그러니까 국정 농단의 공범들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러면서 전방위적인 편 가르기를 시도한 정황도 엿보인다. 세월호대책회의, 민주노총 등 세월호 단체와 진보 단체는 물론 진보 교육감들이 그 걸림돌이 될 거라 분석한 것이다. 이 '진보 vs. 보수' 프레임은 실제로 집회 현장에서 실현됐다. 더불어 철도노조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공권력의 처절한 탄압이 설명되는 대목이다.

언론 대응도 곁들여 졌다. 일부 보수지가 세월호 참사 이후 돌아설 것으로 우려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진보지는 물론, 종편이나 보수지 가릴 것 없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현 새누리당 대표가 KBS에 압박을 가한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게 다 오로지 "국정 발목잡기"를 막기 위한 국정원과 정부여당의 세심하고 일관성 있는 '기획'이었던 셈이다.

그러면서 <뉴스룸>은 이 문건의 입수 경위와 실제 근거, 대통령이 읽었을 가능성도 잊지 않고 꼼꼼히 제시한다. 향후 제기될 반론을 보도 자체에서 차단한 것이다. 그래서 여타 문건과 워터 마크를 비교하고, 최종 독자가 박 대통령임을 적시하고, 민정수석실의 개입 여부를 재확인했다. <뉴스룸>에서 2014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진보교육관 관련 내용이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관련된 내용도 남았다는 '친절한 예고'도 곁들이는 센스는 덤이었다.

"민중은 개돼지"란 인식과 무엇이 다른가

2014년 팽목항에서 뉴스를 진행했던 손석희 앵커.
 2014년 팽목항에서 뉴스를 진행했던 손석희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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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 세월호 관련 문건을 보도하던 16일,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박근혜는 7시간 행적을 밝혀라"라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엘시티 철저 수사"를 지시했다.

국정 농단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대통령이 오히려 검찰에 수사 지시를 내리는 상황에 정치권과 국민들은 다시 한 번 분개했다. 퇴진이나 하야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는 대국민 메시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물론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이 7시간'에 대한 의혹은 훨씬 더 커졌다.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YTN은 17일 아침 "세월호 당일 간호장교 靑(청) 출장...'7시간' 열쇠 되나?"라는 보도를 통해 국군 수도병원에 근무 중이던 한 간호장교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청와대로 출장을 갔다고 전했다. 이에 관해 진위 논란이 예상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역시 오는 19일과 26일 '대통령의 7시간'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내용을 방영할 예정이다.

"'밖은 영하 10도. 청와대는 영상 10도' (중략). '여객선 사고', 국민 모두에게 아픔이었던 그 참사를 골칫거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세월호는 교통사고', '세금도둑'. 입에 담기조차 거북스러운 이런 말들이 여당에서 나온 것도 이러한 인식에서 본다면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그 견고한 성의 안과 밖의 온도는 이렇게나 달랐던 겁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관련 연속보도에 매진했던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의 이날 앵커브리핑 중 일부다. 짐짓 점잖은 어조였지만, 그 분노는 쉬이 전해졌다. 국민들을 '개돼지'로 여긴 듯한 정권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문건 내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박 대통령의 버티기와 겹쳐져 더욱 충격적이었다.

박근혜 정권 내내 벌어졌던 '국민 편가르기'가 국정원과 청와대, 정부의 작품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세월호 유족들의 눈물과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 앉히기 위해서라도, 특검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철저한 진상조사는 물론 국민들이 참여하는 '광장'에서의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힐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당일 7시간의 행적을 밝히고 독립 특검으로 수사 할 것"을 촉구했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힐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당일 7시간의 행적을 밝히고 독립 특검으로 수사 할 것"을 촉구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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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뉴스룸, #세월호, #손석희, #청와대_민정수석, #박근혜_최순실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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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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