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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뭇한 기억입니다.

 

시청에서 을지로 가는 도로에 시위대가 가득했고 선두 못미쳐 이십여명의 무리가 매서운 눈매만 내놓고 붉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투박한 단화를 신고 이삼 미터 간격 이열 횡대로 전진합니다. 그들 손에 들린 굵은 쇠철봉 막대. 아스팔트를 사르릉 긁어대는 무쇠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고 그들이 내뿜는 기운은 전투경찰들 오금을 저리게할 만큼 살벌했습니다. 강철대오란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어디선가 무전이 왔는지 그들은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어느날엔가는 신촌 대로에서 구호를 외치던 시위대가 퍼버벅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다연발 페퍼포그탄이 하늘을 까맣게 뒤덮습니다. 눈이 따가운 최루가스도 그렇지만 머리 위로 날아드는 그 포탄은 가히 공포스러웠습니다.

그랬는데. . .

 

지난주 토요일, 늦은 오후 광역버스에 올랐습니다. 을지로 3가를 못가서 승객을 몽땅 내려놓습니다. 곧이어 깃발들을 앞세우고 나타난 시위대를 따라 을지로 지나, 종로 지나, 광화문 현판앞까지 가는 그 길에 또다른 젊은 얼굴들 여기저기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뒤쪽에서 풍물패의 묵직한 북소리와 꽹과리가 길을 열어갑니다. 


깃발들 사이 확성기로 들리는 카랑카랑한 여성동지들의 목소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광화문을 경계로 차벽이 세워져있고 그 앞으로 우리의 전경들은 한켠에 다소곳이 서있습니다. 어두워서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 역시 불안한 기색은 전혀 느낄수 없었습니다.

 

광화문 앞까지 한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60년 4월, 70년 11월,  80년 5월,  87년 6월 시대의 고비마다 수많은 죽음으로 열어놓은 이 길을 지금 우리가 이렇게 평화로이 걷습니다. 한시간이면 족한 이 길을 가는데 반세기를 넘긴 만큼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값진 길입니다. 

 


 

때로는 어린 학생들이 선두에 서서, 때로는 단신으로, 때로는 남녀노소 가림없이 폭정과 폭압을 넘어 달려온 그 길에서 진실을 열망하는 백만 의식이 자유와 평화의 이름으로 전진합니다. 그 먼 여정을 지나온 오늘, 이 큰 의식의 힘은 헤아릴수 없이 많은 생명들이 그 길에서 스러지며 진실을 지켜낸 각고의 전력이었습니다.

 

 

광화문과 경복궁역 사이에서 선전을 하던 금속연맹 대오의 선전 엠프가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립니다.

 

"멀리 브라질과 이탈리아 국제노조연대에서 동지들이 오셨습니다!"

 

여기저기 함성과 박수가 터집니다.

 

"한국 동지 여러분! 저는 이탈리아에서 왔습니다. 201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오늘처럼 백만명이 모인 결과 베를루스코니를 권좌에서 내려앉혔습니다! 그날처럼 오늘밤 이 거대한 함성이 값진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신념어린 기운찬 목소립니다. 이어 주먹을 불끈쥐고 우리말로 외칩니다.

 

"빠그녜는! 당쟝 하야하라!!!"

 

또다시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에 광장이 떠나갈 듯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대오의 진실을 향한 열망에는 국경도 이방인도 따로 없습니다.

 

매케한 최루가스 자욱한 도로에서 머리 위로 날아드는 최루탄을 피하던 그 시절, 그길 위에 있던 우리의 의식은 부정한 정부에 대한 분노와 폭력적 진압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한 시대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 어디에도 핏발선 분노나 두려움은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진실과 평화의 백만 의식이 만들어낸 거대한 기운은 전경들마저도 과거 성난 시위대를 향했던 분노와 부상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어디선가 우렁찬 구호가 울립니다.

 

"너.희.는.포.위.됐.다!"

 

경찰차벽을 치고 그 뒤 좁은 울타리에 스스로 감금된 모양새입니다. 진실을 향한 평화의 힘 앞에 두려운 것은 오직 거짓뿐이요, 그 거짓은 불안에 떨며 그밤을 하얗게 지새웠을 것입니다.

 

백만의 진화된 의식이 지나간 광화문은 거짓을 품은 자에겐 굳게 닫친 문이었지만 진실을 품은 자들 가슴엔 이미 활짝 열린 문이었습니다.

 

이미.


태그:#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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