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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를 시작한 이래 한결같이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지도자가 반칙을 하는 나라. 국민이 지도자를 의심하는 나라는 절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원칙을 지키면 저절로 신뢰가 뿌리 내립니다." - 2002년 4월 27일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

봉하마을 추모관 노란리본으로 만든 노무현대통령 얼굴
 봉하마을 추모관 노란리본으로 만든 노무현대통령 얼굴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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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르게 찾아온 늦가을 추위가 갑작스레 물러간 후, 나날이 싸늘해져가는 시국과 달리 날씨가 갑자기 봄볕처럼 따스해졌다. 어딘가로 나서기를 부추기는 날씨였다. 그 햇살에 기대어 지난 11일 봉하마을을 찾았다. 봉하마을을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벼들은 이미 추수가 끝나 들녁은 휑하게 비어 있었다. 부엉이바위가 내려다보이는 도로면엔 차들이 제법 길게 늘어서 있었다. 촛불의 한가운데서 나처럼 그, 노무현의 얼굴을 떠올린 사람들이 제법 되는 모양이다.

봉하마을 앞 도로에 세워진 차들
 봉하마을 앞 도로에 세워진 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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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봉하를 찾았던 건, 2008년 이른 봄이었다. 그때 봉하는 마을 전체가 잔치 분위기였다.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고향마을로 돌아왔고, 김해에서도 한쪽 구석에 처박혀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작은 동네에 갑자기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주변에 변변한 가게 하나없는 한적한 시골, 먼 길 오신 손님 그냥 보낼 수 없는 시골인심에 급하게 부녀회에서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마을회관 앞에 천막을 치고 국수를 말아 손님 대접하느라 부녀회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많아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은 마치 잔치집에서 손님 맞이하듯 기쁘고 들떠 있었다.  

"갑자기 손님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힘드시겠어요?"
"아이구, 우리도 마 정신이 없습니더. 그래도 뭐 맨날 이러기야 하겠습니까? 좀 만 있으면 안 오겠지예. 당분간만 고생하믄 될 낍니더."

마을을 찾은 손님들은 무리를 지어 마을 이곳저곳으로 몰려 다녔다. 그중에 마을 중간에 있는 슈퍼는 대통령의 단골집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들녘에 나갈 때마다 한번씩 들러는 곳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자전거가 거기 수퍼 앞에 세워져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타시던 자전거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타시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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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일부러 그 조그만 구멍가게같은 슈퍼에 들어가 음료수라도 하나 사서 나왔다. 마을 이곳 저곳을 몰려다니던 사람들은 시간에 맞춰 한때 아방궁이라도 비난받았던, 그러나 전혀 아방궁과는 거리가 먼 아담한 대통령의 사저앞에 모여 들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소리쳤다.

"대통령님, 나오세요~!"

그러면 정말 문이 열리면서 이제는 전직 대통령이 된 그가 활짝 웃으며 나타났다. 웃음 때문에 얼굴의 주름살이 더 깊어보였다.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진을 찍을 때였다.

"손님이라도 너댓명 와야 같이 막걸리잔도 기울이고 대접을 할 낀데... 날이면 날마다 이리 많이 오셔가 제가 모든 분들하고 사진도 다 몬 찍어드립니더... 저도 바쁩니더. 그래도 아이들은 안으로 보내세요. 대통령 할아버지하고 사진 찍자~"

그러자 사저의 문앞에 있던 경호원들이 사저의 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문안으로 들어가 대통령옆에 쭉 늘어섰다. 초등학생 아이들 대여섯 명이었다 . 대통령은 양다리를 구부려 키를 낮추고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으며 '김~치'를 했다.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난 건 왜일까?

봉하마을
 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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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있는 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세대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어릴 때 개구리 잡고 가재 잡던 마을을 다시 복원시켜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함께 사는 촌락공동체 같은 것을 새로운 형태로 복원시키고 자연속에서 순박한 정서를 가지면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2006년 임업인 오찬 발언

그때 그는 대통령이 아니라 마을주민으로서 마을앞을 흘러가는 죽어가는 화포천을 살리기 위한 꿈과 계획을 가지고 한창 그 일을 도모하고 있다고 했다.

두 번째 봉하를 찾은 것은 2009년 5월이었다.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에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라하다가 우리 같은 많은 사람들이 봉하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퇴근을 한 뒤 봉하를 향해 출발했다. 가는 길 내내 차가 막혔고, 봉하마을은 아직 한참 멀었는데 더 이상 차량 접근이 되지 않아 내려서 차를 옆에 세우고 긴 줄의 끝에 섰다. 봉하마을이 보이지도 않는 먼 위치였다.

줄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 줄의 끝까지 가야 그의 영정 사진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어느 정도 줄이 줄어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자 차가 늘어서 있던 들녘 옆으로 만장들이 곳곳에 휘날리고 있었다 .현실이 아닌 어느 영화 한 장면 같았다.

마을은 1년 전, 마치 잔치집 같던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슬픔에 잠긴 초상집이었다. 줄은 뒷쪽으로 자꾸 늘어나기만 하고 앞으로는 정말 더디게 줄었다. 불평 한마디없이 그렇게 오랫동안 서 있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모두가 조용히 서서 한걸음씩 한걸음씩 앞으로 갔다. 밤 10시에 도착해 다음날 어스럼하게 주변이 밝아올 때까지 서 있어야 했다. 마을 주민들은 그때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전히 손님들이 많았다. 그러나 1년 전 잔치집의 주인 같이 즐겁게 분주하던 얼굴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한 슬픔이 배어나온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다. 마을주민들은 시골 여느마을처럼 이 고장의 특산품인 단감을 파느라고 길가에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지난 두 번의 방문 때처럼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며 마을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됐다.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는 그가 떠난 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면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는 떠났지만 마을 곳곳에는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들이 절절이 새겨져 그의 향기는 더 짙어져 있었다. 

봉하마을 추모블록
 봉하마을 추모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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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추모블록
 봉하마을 추모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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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놀란 것은 마을 추모관 곳곳에 붙어있는 사진의 표정이었다. 표정이 감탄스러울만큼 다양하고 살아있다. 어쩜 이렇게 표정이 다양할 수가 있지?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대통령을 오래 보다 보니 그 대비가 더욱 선명히 느껴졌는 지도 모른다.

이마에 일자주름을 선명히 드러내며 활짝 웃기도 하고,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책에 몰두해 있기도 했다.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들녘을 가는 모습은 한없이 평온해 보였다. 마을을 찾아온 사람들 앞에서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동그랗게하고 '사랑해요'를 하는 사진도 있었다. 추모관 영상에서는 어느 집회에서인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오만상을 찡그리며 목청껏 열을 올려 자신의 주장을 고래고래 펴고 있기도 했다.

봉하마을 노무현추모관 대통령 사진
 봉하마을 노무현추모관 대통령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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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를 태우고 봉하들녁을 달리는 노무현대통령
 손녀를 태우고 봉하들녁을 달리는 노무현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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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관에서 상영중인 노무현 다큐
 추모관에서 상영중인 노무현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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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이 인간 노무현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었다.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호탕하게 웃고, 때로는 분노하고 있는 사진 속의 표정은 그가 세상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며 살았는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역사를 위해서,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우리는 할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답은 하나입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만큼 발전할 것입니다." - 2007년 참여정부 평가 포럼 강연 중

대통령의 말이 과연 누구의 생각과 마음을 담은 말이었는가가 백만 촛불의 핵심이 된 지금, 진심을 담아 열정적으로 국민을 향해 던졌던 그의 말들이 새삼 진한 울림으로 가슴으로 다가온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석
 노무현 대통령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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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무현, #봉화마을, #바보대통령, #부엉이바위, #노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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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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