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중총궐기가 열린 12일 경복궁역 인근을 가득 메운 시민들. 시민들을 막아 세운 경찰버스와 사진의 우측 상단에 어둠에 휩싸인 청와대가 보인다.
 민중총궐기가 열린 12일 경복궁역 인근을 가득 메운 시민들. 시민들을 막아 세운 경찰버스와 사진의 우측 상단에 어둠에 휩싸인 청와대가 보인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대통령님, 저는 지금 광화문광장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 시청광장 한복판에 앉아 있습니다. 12일 오후 10시, 대형 스크린에선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라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 이승환씨의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 옆의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100만 명이 광화문광장 일대를 메웠다고 합니다. 이승환씨의 노래 제목처럼, 100만 시민은 '어떻게 대통령이 그래요'라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을 겁니다.

거짓과 꼼수로 점철된, 대통령의 3주

대통령님, 어떻게 대통령이 그렇습니까. 10월 25일을 떠올려봅니다. 이른바 '최순실 PC'에서 연설문이 나왔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다음 날, 대통령님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연설·홍보 분야에서 최순실씨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면서요.

그런데 바로 그날 밤, 최순실 PC에 안보·경제와 관련된 문서가 들어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과가 '녹화 사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실망했습니다.

그러던 대통령님은 2일 갑작스레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합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일했던 김병준 교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김대중 정부에서 일했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노무현과 김대중의 사람을 '심으면' 명분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그 꼼수를 잘 알기에, 여론은 더 분노했습니다.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6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을 들고 을지로, 종로 방향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흐르는 분노의 촛불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6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을 들고 을지로, 종로 방향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한 실장을 임명한 다음날, 대통령님은 다시 카메라 앞에 섭니다. 대국민담화문을 '읽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임하겠다" 그리고 "특검을 수용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빠졌습니다.

국민은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김병준 교수 당사자 마저, 대국민담화에 자신과 관련된 내용이 빠지자 "당혹스럽다"고 할 정도로, 대통령은 국민의 눈높이를 읽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이 쏙 빠진 대국민담화에는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으로 추진된 일",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에게 큰 실망을 드려 송구" 등의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국민의 삶이 아닌 특정인의 삶을 위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 그리고 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 돈을 갖다 바친 이유가 선의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말입니다.

또 대국민담화 말미에는 "지금 우리 안보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고, 경제도 어렵다. 더 큰 국정혼란과 공백상태를 막기 위해 (중략)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 속히 회복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안보와 경제의 위기,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바로 대통령 아닙니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통령님은 8일 갑작스레 국회를 찾아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났습니다. 13분짜리 면담에서 대통령님은 "국회에서 국무총리를 추천해 달라"라고 말합니다. 또 중요한 게 빠졌습니다. 하야든, 퇴진이든, 2선후퇴든, 국민이 대통령에게 궁금했던 것은 대통령의 거취였습니다. 그렇게 대통령께선 국회에 공 하나를 툭 던진 채 지금까지 말이 없습니다. 어떻게 대통령이 그렇습니까.

광장도, 대한민국도 우리의 것이다

이러한 과정 때문에, 저는 오늘 100만 시민이 모였다고 생각합니다. 거짓과 꼼수로 대변되는 대통령님의 상황 인식이 여론을 갈수록 악화시켜왔고, 100만 시민을 광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청와대의 모습을 사진으로 봤습니다. 짙은 어둠 사이로, 옅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커튼을 쳐 둔 모양입니다. 저는 그 닫힌 커튼이 대통령님의 눈꺼풀처럼 느껴졌습니다. 눈을 뜨셔야 합니다.

오늘 광장에 나온 100만 시민을 대통령님은 꼭 보셔야 합니다. 백 번 양보해 국회의 압박, 언론의 비판 그리고 2주 연속 기록한 5% 지지율은 민의의 간접 경험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님 커튼 너머의 100만 시민은 우주의 기운도, 혼도 아닌 직접 마주해야 할 실체입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명 국민들의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청와대 본관 커튼 사이로 불빛이 새나오고 있다. 행정동 사무실 곳곳에도 불이 켜져 있다.
▲ 커튼 사이 불빛 새나오는 청와대 본관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명 국민들의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청와대 본관 커튼 사이로 불빛이 새나오고 있다. 행정동 사무실 곳곳에도 불이 켜져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오늘 광장에 나온 100만 시민과 생중계를 통해 현장을 지켜 본 수많은 시민,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가슴으로 알았을 겁니다.

'광장은 우리의 것이고, 대한민국도 우리의 것이다.'

대통령님의 인식과는 다를 수도 있지만, 이건 사실 당연한 겁니다. 당연한 줄 알았던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상황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고 다시 당연하게 만들려는 마음, 이제 대통령님은 이 마음과 마주해야 합니다.

오늘부로 대통령님의 상대는 국회도, 언론도, 여론조사도 아닌 이 100만 시민이 될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 광장에 나온 100만 시민을 대통령님은 꼭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해야 합니다. 시민과 맞설지 아니면 물러날지.


태그:#민중총궐기, #박근혜, #최순실
댓글2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