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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가 열렸다. 그것이 '최순실 게이트'이건 '박근혜 게이트'이건 국민들의 뜻은 아마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일테다.

이번 사태가 가져온 변화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이 사태의 책임자인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시위에 처음 참석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이 사태 이후로 주말, 평일 가릴 것 없이 크고 작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에서는 약 20만 명이, 부산에서는 3000여 명이, 전국 각지에서 총 30만 명가량이 시위에 참가했다. 심지어 뉴욕에서도 200여 명이 "박근혜는 퇴진하라!"면서 시위를 벌였다.

필자가 작년 이맘때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과 거리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했을 때 찍은 현장 사진이다. 필자를 처음으로 시위 현장으로 이끌었던 故 백남기 농민을 떠올리면 아직도 부끄럽고,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이 날 이후 여러차례 더 시위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시위'에 대한 상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필자가 작년 이맘때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과 거리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했을 때 찍은 현장 사진이다. 필자를 처음으로 시위 현장으로 이끌었던 故 백남기 농민을 떠올리면 아직도 부끄럽고,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이 날 이후 여러차례 더 시위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시위'에 대한 상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 정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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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사태 이후로 조금은 다른 목소리도 있다. 그것은 기존의 집회·시위 방식에 의구심을 가지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려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에 이슈화됐던 의경출신 서울대생의 '권역별 시위'(관련 기사: 박근혜는 권력을 내놓을 생각이 없다) 주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지난 5일 광화문 광장에서 텐트를 치고 시위를 하던 예술인들, 한복을 입고 나온 학생들, 발언대에 올라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을 보면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됐던 시위 현장에서, 필자는 특히 경찰과 대치 상태에 있을 때에는 '우리끼리 싸우고 있구나'라는 한계를 느꼈다. 참가자들은 무언가를 주장하고, 경찰은 이를 막아서는 형태의 시위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다(물론 가슴이 뜨거워지지기도 했지만). 시위 참여가 꼭 재밌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여서 '새로운 시위'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시위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이들은 지난 11월 4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 30분까지 세 시간이 넘도록 서울숲역 근처 복합문화공간 '카우앤독'에 모여 '새로운 시위'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나눴다. '해보지, 뭐.'라는 단순한 제안으로 치러진 행사였지만, 그 자리에는 필자를 포함해 6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고 있었다.

'해보지, 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관련된 이번 사태로 많은 시민들이 광장과 거리로 나갔고, 처음으로 집회, 시위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더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시위'를 제안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관련된 이번 사태로 많은 시민들이 광장과 거리로 나갔고, 처음으로 집회, 시위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더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시위'를 제안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
ⓒ 와글뉴스레터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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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번 행사를 정치 스타트업 '와글'의 뉴스레터를 통해서 알게 됐다. 하지만 이 행사는 와글에서 주최한 것은 아니었고, '새로운 시위'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김정현 씨와 박혜민 씨가 페이스북 담벼락(관련 글 보기)에 남긴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이번 행사를 공동으로 제안한 김정현씨는 지난 11월 2일, 이 행사를 제안하며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거리로 나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안타까운 질문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왜 우리가 이미 가로막혀 있는 경찰벽을 향해 행진해야 하지?"
"뭔가 하고 싶어서 나왔지만, 낯선 구호만 반복해서 외치는 집회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
"무엇보다, 대체 우리는 이 상황 속에서 왜 거리로 나왔고, 뭘 얻을 수 있는 거지?"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하는 시위의 풍경이 있습니다. 판에 박힌 구호 제창과 목적없는 행진, 경찰벽에 가로막혀 충돌을 빚기도 '시위대' 같은 것들이요.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낡은 방식이라고 비난하고 시위 자체를 사회악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또 (저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이렇게 해서 정말 뭔가가 바뀔까?" 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기도 하구요.

"낡은 시위를 그만두라"고 말하는 대신, 저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낡은 시위'를 추운 날씨 속에서도, 경찰의 폭력에 맞서가면서까지 이어간 분들 역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많은 부분이 실제로 그러한 '투쟁'에 참여한 분들의 희생으로 가능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집회 시위 방식이 낡았다고 비난하고 부정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사람들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켜온 분들의 노고와 의미를 헤아려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글은 해당 글의 일부이고, 페이스북에서 80회가량 공유되며 '새로운 시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 내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집회·시위에서 개인의 마주침을 이끌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날 행사는 참가자들에게 '오늘 해볼 것'을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안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시위에 대해서 '공간·시간', '방법·방식'으로 분류한 뒤, 이에 해당하는 각자의 아이디어들을 포스트잇에 붙인 후, 투표를 통해서 하나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 내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중에서도 제안자들의 이야기에 앞서, 모든 참가자들이 각각 30초씩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 것과 각각의 아이디어들이 토론을 통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각각 30초씩 이곳에 온 이유와 '새로운 시위'를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역할과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각기 다른 이유에 대해서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참가자들의 의견들은 매우 다양했는데 "재미있는 시위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치적 표현에 관심이 있어서" "집회도 축제처럼 하면 좋지 않을까" "이 말도 안 되는 사태에 뭐라도 하고 싶어서" "늘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는 시위를 바꿔보고 싶어서" "온라인 시위 문화를 형성하고 실행해보고 싶어서" 등의 의견이 나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깊었던 의견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느라 (시위에 참석하지 않고)이 시대를 놓치는 건 미래에 대해서 책임지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한 고등학생의 의견이었다.

새로운 시위를 제안하는 '해보지,뭐' 1차 모임에서 제안자 중의 한 명인 김정현 씨가 "1960년대 시위와 2016년의 시위가 왜 같은 양상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참석했던 시위 현장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시위를 제안하는 '해보지,뭐' 1차 모임에서 제안자 중의 한 명인 김정현 씨가 "1960년대 시위와 2016년의 시위가 왜 같은 양상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참석했던 시위 현장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다.
ⓒ 정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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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소개를 마치자, 이어서 이 행사의 제안자들이 모임 제안 이유를 이야기했다.

김정현씨는 그동안 자신들이 참석했던 시위를 포함해 예전부터 있었던 시위 현장 사진을 보여주면서 "1960년대의 시위와 2016년의 시위가 왜 같은 양상일까?"라며 "우리는 왜 거리에 나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어서 박혜민씨는 대학시절 "'자보 쓴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모임에서 한 학생이 "학내에서 투쟁중인 청소노동자들을 만나러 가보자"는 제안에 그분들을 만나러 갔던 적이 있는데, 만나서 청소 노동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물이 많이 났다"고 고백했다.

또한 이런 현상들을 겪으면서 "시위에 참석한 개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오늘 제안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은 바로 "집회·시위에서 개인의 마주침을 이끌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소개했다.

새로운 시위를 제안하는 '해보지,뭐' 1차모임에서 모임 제안자 중 한 명인 박혜민 씨가 대학 재학 시절 '자보 쓴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서 학내에서 투쟁중인 청소 노동자들을 만나러 갔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새로운 시위를 제안하는 '해보지,뭐' 1차모임에서 모임 제안자 중 한 명인 박혜민 씨가 대학 재학 시절 '자보 쓴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서 학내에서 투쟁중인 청소 노동자들을 만나러 갔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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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위'는 이미 시작되었다

제안자들의 제안에 따라 참가자들은 '새로운 시위'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공간·시간', '방법·방식'으로 분류한 뒤 각자 포스트잇에 작성하고, 그것들을 모두 화이트보드에 붙여 카테고리화 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카테고리화하는 과정과 분류된 아이디어들을 토론을 통해 최적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와 결국 모임이 마치기로 예정됐던 시각인 오후 9시 30분을 훌쩍 넘겨 무려 70분이 초과된 10시 40분까지 진행되기도 했다.

토론이 1시간 이상 더 지속된 데는 '새로운 시위'를 열망하는 이들의 에너지가 그만큼 넘쳐흘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자리에 모인 70여 명이 토론을 통해 '새로운' 집회·시위의 구체적 방법을 도출하고, 투표를 통해 순위를 매겨 합의에 도달한 것은 매우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도출됐지만, 그 중 순위가 가장 높게 도출된 주요 아이디어들은 다음과 같다.

1.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 주변에서
2. 주말 낮시간대에
3. 소규모 대화 그룹을 이루어
4. 축제의 형태로
5. (가능하다면 드레스 코드를 맞추어서)

이를 육하원칙에 따라 다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시위가 '새로운' 형태를 띄어야 한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누가)이 모여 주말 낮시간대에(언제)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 주변(어디서)에서 '새로운 시위(무엇을)'를 가능하다면 드레스 코드를 맞추어서 소규모 대화 그룹을 이루어 축제의 형태로 (어떻게) 진행해서 기존 시위와의 차별성을 두고, 기존 시위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것들을 해결(왜)해 보겠다."

새로운 시위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해보지,뭐' 1차 모임에서 참가자들이 포스트잇에 작성한 자신의 생각들을 비슷한 다른 생각들과 카테고리화 하고 있다.
 새로운 시위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해보지,뭐' 1차 모임에서 참가자들이 포스트잇에 작성한 자신의 생각들을 비슷한 다른 생각들과 카테고리화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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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안하는 방식이 성공한다면 좋겠지만, 실패한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혁명이라는 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혁명의 모든 과정 역시 혁명이라는 이 단순한 진리로 본다면, 이 날의 참석자들이 꿈꾸는 '새로운 시위'는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2차 모임, 3차 모임, 마지막으로 실행에 옮기고 거기에 문제점이 있다면 다시 최적화하는 일이 남아있다. '새로운 시위'를 추구하는 이 과정에 동참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아래의 링크를 따라와 신청하면 된다.

☞ 바로 여기

'새로운 시위'를 꿈꾸는 이들은 8일 오후 7시에 준비모임 장소와 시간을 확정하고 세부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다. 또 11일 오후 7시에는 기획한 내용의 역할을 나누고 점검하는 전체 모임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19일에는 '한 번 해보는 시위·집회'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아이디어들을 실행에 옮기게 될 것이다.


태그:#시위, #새로운 시위, #박근혜하야, #해보지,뭐., #시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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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미래학을 기반으로 한 미래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어떻게 변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읽고 씁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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