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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원고를 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원고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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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사과했다. 오늘(4일) 사과로 대통령의 하야일이 조금 앞당겨진 느낌이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은 '마음의 상처', '가슴이 아픕니다', '큰 실망',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 등 국민의 정서에 호소하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인정 많은 사람이라면 자칫 공감해버리고 말 이런 표현들 사이에서,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임기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대통령의 사과문 전문을 조목조목 짚어본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먼저 이번 최순실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국정을 맡겨주신 국민 여러분께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드려서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표현으로만 보면 진심어린 사과로 보기에 충분하다. 이런 정서적 접근은 전통적인 새누리당 지지층,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깊은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박근혜 대통령이 부모를 잃고 '어려운 인생'을 살았다며 안타까움에 그를 찍었던 유권자들에겐 아마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지금 대통령은 1차적으로 '콘크리트 지지율 복원'이 목표일 테니까 말이다. 참고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후 34일 만에 발표한 사과문에서도 "유가족들의 아픔과 비통함을 함께 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었다.

"저와 함께 헌신적으로 뛰어주셨던 정부의 공직자들과 현장의 많은 분들, 그리고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공직자들과 현장 공무원들을 직접 거론한 것은 실제로 이번 사태 때문에 정부와 현장 공무원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 사회의 동요가 계속될 경우 대통령의 정부수반로서의 힘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리 없다. 기업인에 대해서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한 것은 일부 재벌들의 불만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할 만하다.

다만 대통령은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이라고 표현했는데, 자신은 재벌들에게서 강제로 돈을 걷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직접 재벌회장을 호텔방에서 독대하여 돈을 요구하였더라도 그것은 압력이 아니며, 안종범 전 수석에게 대통령이 지시를 한 것이 드러났지만 그 역시 자발적 모금이라는 말이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 저의 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은 지난 번 1차 사과의 '순수한 마음'과 비슷한 느낌의 표현이다. 대통령은 좋은 뜻에서 했을 뿐인데 다른 사람 때문에 일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 사태는 '특정 개인' 최순실씨가 모두 지고 가기로 한 모양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를 완전히 버리기로 작정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국민이 언뜻 양해 가능한 수준에서 최순실씨가 책임을 지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는 이미 사전에 얘기된 데 따른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어제 최순실씨가 중대한 범죄 혐의로 구속되었고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등 검찰 특별수사 본부에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검찰이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최순실씨에 대한 구속은 여론과 상황에 밀려 진행된 것이다. 그마저도 검찰은 최순실씨에게 '31시간의 자유'를 보장해줘, 뜬금없이 인권검찰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검찰은 신속하지 않았다.

게다가 구속 사유도 어처구니없다. 최순실은 직권남용과 사기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한 가지 얘기만 하자면,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상의 권리를 남용하여 누군가가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도록 하거나, 하려고 하는 일을 못하게 했을 경우 성립한다.

그런데 최순실은 공무원이 아니고, 애초에 직무상의 권리 같은 것도 없다. 힘을 부당하게 남용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러 전문가들은 최순실에게는 '뇌물죄' 등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는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이미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도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
검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려면 최재경 민정수석 임명 전에 이런 발표를 했어야 했다. 갑옷을 다 갖춰 입은 후 곤장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꼴이다. 우병우 민정수석 밑에서 검찰이 솜방망이였듯이 최재경 수석 밑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초유의 일이라서, 벌써부터 대통령 수사의 방법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대통령이 출두할 리는 만무하다. 평소에 '서면보고'를 즐겨 받았으니 이번에도 '서면조사'를 받거나 아니면 검찰이 청와대를 찾아가 '방문조사'를 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될 리 없다. 대통령이 제대로 수사 받으려면, '전직 대통령'이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직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했었다.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를 수용하겠다고 했는데 특별검사는 새누리당이 이미 만장일치로 의결한 상황이다. 대통령이 새누리당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소용없는 일이다. 특별검사를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찰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거나 특검에 의해 수사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소추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수사만 받고 그냥 끝이라는 얘기다.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미다. 하야 후라야 대통령에 대한 소추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하야 없는 수사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신속하고 철저한' 검찰 수사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천명한 것이다.

"국민 여러분.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었고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돌이켜 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족끼리는 대통령 되기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후 대통령직을 청렴하게 수행하기 위해 가족 간의 교류를 끊었다는 것은 대통령의 '외로움'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실관계를 다르게 말한 것이다.

바로 이어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라고 표현하면서 대통령 직 수행을 위해 가족관계 마저 끊었더니 외로움이 커졌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최순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대통령이 의존한 일들은 '개인사'가 아니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부터 주요한 의사결정을 '전화로 상의하고', '연설문이 걸레가 되어 돌아오도록' 했던 두 사람의 관계를 마치 '대통령직을 대쪽처럼 수행하다보니 생긴 외로움' 때문에 발생한 '개인사'인 것처럼 축소한 것이다.

"저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이 듭니다.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국민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각오로 노력해 왔는데 이렇게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어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입니다."

계속 정서에 호소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에 정서적 호소가 포함될 수야 있지만 동시에 정치적,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조치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 가운데 국민이 가장 원하는 것은 '하야'다.

"심지어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대통령은 지난 30년 동안 최태민 관련 의혹에 대해 "말할 가치가 없는 주장들이다." "실체가 없는 이야기다." "천벌을 받을 짓"이라고 말했었다.

"다시 한 번 저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이미 마음으로는 모든 인연을 끊었지만 앞으로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고 살겠습니다. 그동안의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 마땅합니다만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자칫 저의 설명이 공정한 수사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오늘 모든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것 뿐이며 앞으로 기회가 될 때 밝힐 것입니다."
"진실은 검찰에서 밝히겠다." 죄를 지은 고위공직자나 재벌이 흔히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서 많이 하는 얘기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현재 사태를 해결할 의사가 있다면  '앞으로 기회가 될 때'가 아니라 당장 오늘이라도 진실을 밝히면 그만이다. 또한, 하야를 통해 국민의 염원을 수용하면 된다.

게다가 대통령은 앞서 말한대로 결코 검찰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서면조사 시 혹은 검찰이 대통령을 방문조사할 때 오늘 사과문에 나와 있는 수준 정도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것이다. 혹은 검찰이 알아서 하거나. 만약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으로서는 국민 보다는 검찰이 더 편한 상대다.

"또한 어느 누구라도 이번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며 저 역시도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당장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 안보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고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외의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히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더 큰 국정 혼란과 공백 상태를 막기 위해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은 검찰에 맡기고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 속히 회복해야만 합니다."
대통령은 하야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 속히 회복해야한다고 했는데 총리와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가 조속히 개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국민이 인정해 달라는 뜻이다. 그리고 검찰이 사태수습을 할테니 이 사태에 대해 국민들은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말아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민들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각계의 원로 분들과 종교 지도자 분들, 여야 대표님들과 자주 소통하면서 국민 여러분과 국회의 요구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계속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오늘 대통령은 국민에게 '말로만 사과'할 뿐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사태 수습은 청와대 휘하의 검찰, 혹은 자신이 뽑은 특별검찰에게 맡겨, 최순실·안종범 구속 선에서 끝내자는 메시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또 부분 개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 재벌과 공직사회는 동요하지 말라고도 했다.

오늘 대통령의 사과로, 국민이 할 일이 보다 분명해졌고, 대통령의 하야일은 조금 더 앞당겨졌다.


태그:#하야, #대국민담화문, #사과, #특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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