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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중학생이었다.
 언젠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중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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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자살을 계획 중이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중학생이었고, 나는 한창 졸업을 미루고 취직을 준비 중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질문하자 그는 자신의 삶이 너무도 외롭다고 말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누구도 그와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는 학급에서 철저하게 소외돼 있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니, 그들은 이미 다른 걱정도 너무 많았고 이야기 한다고 상황이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고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의 괴로움은 깊어져 갔고, 나는 죽음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후 몇일 간 그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연락이 된 그는 고등학교는 다른 곳에서 다닐 것 같으니, 일단 이 상황을 더 견뎌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나는 그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나의 만류를 받아줬다는 것이 기뻐 이 이야기를 지인에게 전했다. 그는 잘된 일이라고 답해줬지만, 표정에는 지루함이 느껴졌다. 내게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내게 이렇게 답했다.

"뭘 그런 걸로 신경을 써? 애들이잖아. 그런거 그냥 중2병이라고."

과연 10대이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까

왜 사람들은 유독 10대들의 경험에 대해서만, 마치 그것이 유별나고 미성숙한 것이란 딱지를 붙일까.
 왜 사람들은 유독 10대들의 경험에 대해서만, 마치 그것이 유별나고 미성숙한 것이란 딱지를 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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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그의 반응이 단호했기에, 당시의 나는 별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지날수록 나는 계속해서 궁금증이 일었다.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중2병'과 같은 것이었을까. 그때 그 친구가 죽을만큼 괴로웠던 것은 단지 그가 10대이기 때문이었을까. 10대가 아니라고,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극단적인 소외를 겪을 때 고통스러워 하지 않을까.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것 걱정만 늘리는 꼴이 될까 혼자 속앓이를 하지 않을까. 그 속에서 죽음을 생각 안 할까. 아닌게 아니라 크게 이슈만 되지 않을 뿐, 직장 내 따돌림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뉴스는 늘상 간간이 들려온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상황에서 그가 죽음을 말했던 것이, 단지 그가 10대이기 때문은 아니란 것이다. 청소년기를 지나갔다고 해서, 같은 문제가 더 이상 괴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성인들도 같은 것을 느낀다. 학생들이 성적을 비관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직장 생활에서 누군가는 필요한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해 목을 맨다. 다시 말해, 이런 종류의 경험이나 감정은 공간과 시간만 바뀔 뿐 사실은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유독 10대들의 경험에 대해서만, 마치 그것이 유별나고 미성숙한 것이란 딱지를 붙일까.

'혐오'가 작동하는 방식

이야기를 더하기에 앞서 잠시 혐오에 대해 살펴보자. 사람들은 보통 우리와는 다른 어떤 이질적인 대상이 혐오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 외국인, 장애인은 우리와 다른 수행을 하거나 다른 몸을 지니기에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혐오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전제에 가깝다. '다른 사람'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회가 규정한 비정상성의 표식이 이들에게 부착되기 때문이다. 가령 이성애자 남성의 게이 혐오가 그렇다. 통상적인 젠더 규범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날카롭게 구획하는데, 이들은 동성애자 남성의 성적 수행 속에서 여성성을 유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비정상의 낙인을 찍고 혐오한다.

하지만 다른 모든 규범이 그렇듯, 젠더 규범 역시도 완벽한 수행은 불가능하다. 어떤 이성애자 남성도 모든 순간에 완벽하게 사회가 말하는 남성적인 것들을 수행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사회가 '여성적인 것'이라 규정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가령 감정적인 취약함이나 수동성이 그 사례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혐오는 혼란을 막는 기능을 한다. 젠더 규범을 어긴 완벽한 비정상의 사례가 있고, 이들의 범주가 확실하다면 그만큼 자신은 정상이 되는 것이다. 게이가 비정상적 남성이라면, 자신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던 이성애자인 그는 정상적인 남성이 된다. 때문에 모든 혐오는 혐오하는 사람에게서 출발한다. 누군가가 혐오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그 사람 속에 이미 내재돼 있다.

'청소년 혐오'가 형성된 이유

요새 화두가 된 '청소년 혐오'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최근 TV프로그램에서는 '급식충'(청소년을 무상급식 복지 수혜를 받는 집단으로 낮춰 부르는 말) 개그가 나오는가 하면, '룸나무'(룸살롱+꿈나무의 합성어, 짧은 치마를 입거나 화장을 한 여성 청소년을 비하하는 말) 등의 단어가 통용된다. 일부 시설에서는 '초딩 출입금지' '중고생 떠들면 퇴장' 등의 안내 문구를 버젓이 붙여놓기도 한다.

가령 내 친구가 말했던 '중2병'을 살펴보자. 감정적인 과잉 혹은 거꾸로 극단적인 자기 도취 등이 중2병의 주요 요소로 거론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과연 10대가 아닌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나? 때때로 어찌 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치면, 성인들 역시도 감정의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극단적인 자기도취? 이건 더 심하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마치 자신이 엄청난 사람인냥 오지랖을 떠는 어른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나. 특정 업소의 10대 출입 금지를 말하는 이들은, 그들이 주체할 수 없이 시끄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금요일 밤 11시에 직장가 근처의 술집 거리를 걸어볼 것을 추천한다.

말하자면 성인들이 '유별난 10대들의 특성'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사실 그 시기를 지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경험하거나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사회는 그런 특성들을 '정상적인 성인의 것'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어른들은 이제 철이 들어서 매사에 합리적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매우 잘 통제하며 그런 문제로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이들은 독립적이며 공공 장소에서 예의를 지킨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 그것은 규범일 뿐이다. 누구도 완벽하게 그렇게 살지 못한다. 때문에 성인들은 모든 미성숙의 표지들은 10대들에게 부착시켜 버린다. 그리고 그들을 완벽하게 미성숙하고 주체적이지 않은 대상으로 만듦으로서, 스스로는 안전하게 '정상'의 지위를 차지한다.

이제는 혐오에서 벗어나야 할 때

청소년을 이렇게 바라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청소년을 이렇게 바라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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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식의 행위가 당연히 이로울 리는 없다. 이는 혐오의 대상이 된 10대들에게도 그렇지만, 청소년 혐오를 하는 성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행동은  혐오를 하는 사람이 그 사람의 취약성과 동요를 부인하게 하고, 결국은 압도적인 기준 앞에서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상황을 초래하게끔 만든다.

그런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스스로를 혐오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혹은 힐링과 같은 말도 안 되는 담론에 목을 매게 만들게도 한다. 나의 삶을 관조하고 욕망을 떨침으로서 얻는 절대적인 안정? 나는 내 삶 속에 존재하고, 욕망은 나를 구성한다. 이런 일은 유체를 이탈할 때나 가능한 일, 즉 죽어서나 가능한 일이다.

나는 사람들이 10대에 대한 혐오를 멈추고 인정해볼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어느 때고 여전히 '아이'처럼 울 수도 있음을, 어떤 일에 충격을 받아 드러누워서 일상을 살아갈 수 없을수도 있음을,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은' 사람임을 깨닫고 절망할 수 있음을, 우리는 어느 때고 불안할 수 있고 죽음을 생각하거나, 그에 준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말이다.

우리가 '10대들의 유별남'이라 칭했던 모든 것들이 실은 여전히 내 속에 있고, 그것은 전혀 '미성숙'의 표식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을 우리와 극단적으로 분리된 대상으로 보지 않고 혐오를 멈추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이 양쪽 모두를 위해서도 이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태그:#청소년 혐오, #혐오,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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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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