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송민순 회고록' 관련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송민순 회고록' 관련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국민 앞에 진상을 밝히겠다는 생각만을 위해 냉철하고 차갑게 대응하겠다. (이 문제를) 정쟁화할 생각은 없다."

"더이상 국민이 (이 문제를) 정쟁으로 인식하는 자극적인 발언을 하지 않겠다. 지도부에도 정쟁하지 말자고 요청드렸고, 동의해주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가운 진실만을 추구하겠다."

새누리당이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이용해 연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공격하는 가운데, 여당 소속 두 의원이 당에 '차가운 진실'을 주문하며 한 말이다. 전자는 정진석 원내대표, 후자는 이 문제를 14일 당 국감대책회의에서 처음 제기한 하태경 의원의 발언이다.

당을 진두지휘하는 원내 수장과, 논란의 불씨를 점화한 이가 앞장서서 '정쟁을 자제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정현 대표도 18일 의원총회 자리에서 "절대 흥분할 일도, 과격할 일도, 비난할 일도 아니다"라면서 "역사를 새로 다잡는다는 심정으로 함께 접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진실'을 내걸고 진상 조사에 집중할 것을 요구할 때만 해도 여당의 이슈 접근방식은 일견 '차가운' 접근, 즉 이성적 대응으로 비쳤다. 하지만 실제 17일 최고위원회에서 문 전 대표를 향해 쏟아진 발언들의 수위는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당시 최고위에서 조원진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북한과 관련한 일에서는 특히 종북 좌파의 생각과 같은 행태를 취했다"면서 "(문 전 대표가 그) 세력과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밝혀라"고 말했다. 이장우 최고위원은 "(문 전 대표는) 신속하게 정계 은퇴해야 한다"면서 "북한 꼭두각시 정권이라 뭐라 해명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힐난하기도 했다. 회고록의 진위를 떠나, 사실상 문 전 대표를 겨냥한 '종북 몰이'가 시작된 것이다.

과거 색깔론 '재탕'에 막무가내 '종북론'까지

16일 서울시내 한 대형서점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이 진열되어 있다.

지난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사전의견을 구한 뒤 기권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이 회고록을 두고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16일 서울시내 한 대형서점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이 진열되어 있다. 지난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사전의견을 구한 뒤 기권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이 회고록을 두고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최고위 직후 고조된 대결 분위기에서 정 원내대표와 하 의원이 "정쟁은 하지 말자"고 선을 그은 것은 나름 평가할 부분이 있었다. 당내에서도 지나친 종북 프레임 공세로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진위 파악'이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의원의 제안 이후에도 새누리당의 공세 수위는 '통제 불능'으로 흘러갔다. 18일 의원총회에서 상당수 의원은 사건의 진상규명 요구 대신 "민주당의 종북 성향", "문재인이 북한 대변인인 이유" 등 추측과 비난만 난무한 주장을 펼쳤다.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문 전 대표에게 "셀프 국정조사, 셀프 청문회, 셀프 특검"을 주문했다. 김 수석은 문 전 대표의 셀프 특검이 필요한 이유로 '노무현 정부의 종북 성향'과 '문재인 전 대표의 대북관'을 들어 설명했다. 그는 "NLL도 포기했고, 북핵은 북한의 자위 일종이라고 노 전 대통령이 이야기하기도 했다"면서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원색 비난했다.

이어 김 수석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종북 세력을 옹호한 사실도 있다. 이석기가 반국가 단체인 민혁당 구성 혐의로 2년형을 받았을 당시 가석방 형기를 안 마친 이석기를 석방시켜 통진당 탄생에 일익을 담당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백남기에 색깔론 꺼낸 정진석 "죄인 취급 모자라 공안몰이하나").

김 수석의 이 같은 주장은 과거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이 꺼내 든 문제 제기와 똑같은 주장이다. 지난해 4.29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또한 당시 새정치민주당 대표였던 문 전 대표에게 "참여정부 시절 옛 통합민주당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특별사면 배경을 밝히라"고 종북 공세를 펼친 바 있다. 법무부 장관이 명단을 구성하고 국무회의에서 승인되는 절차상,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 전 대표가 사면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야당의 설명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주어, 목적어도 바뀌지 않은 여당의 색깔론이 송민순 회고록을 계기로 다시 반복되는 셈이다. 김 수석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문 전 대표는) 북한 대변인 역할도 했다"면서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하거나, 북한 주적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하기도 했다"고 몰아세웠다. 

조원진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종북좌파 압력 때문인지 파헤쳐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 최고위원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송민순 회고록' 관련 긴급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 최고위원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송민순 회고록' 관련 긴급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심재철 의원은 "해방 이후 반민특위를 한 것처럼, 통일 대한민국에서 인권 법정이 열리면 이 문제도 반드시 짚을 것"이라며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고록의 진위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문 전 대표를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것이다. 심 의원은 또 "회고록 파문에 따른 문재인 내통사건은 우리 인권사에 바로 세우고 하나씩 기록할 작업이다"라고 강조했다.

조원진 의원은 19대 국회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며 필리버스터를 시도한 것에도 "바깥 종북 좌파 세력들의 압력에 의한 것은 아닌지 파헤쳐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가 북한과 내통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야당의 대북 정책 기조 또한 재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조 의원은 "(민주당은) 안전행정위 당시 북한 김씨 세습 정권 비리 문제 해결을 위해 전단 살포하자는 것에 극렬히 반대했다"면서 "(과연) 의원들이 개인적 입장에서 반대한 것일까"라고 의문을 띄우기도 했다. 이어 그는 "반국가적, 반헌법적 생각을 가진 세력들의 정권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 보수를 지향하는 우리 새누리당 전 당원의 절대 절명의 역사적 소명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총 자유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자연스럽게 의원들의 공격 대상은 문 전 대표에서 민주당 전체로 확장됐다. 정갑윤 '유엔북한인권결의안 문재인 대북결재요청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도 "19대 마지막 본회의 당시 북한인권법이 통과됐는데 24명이 기권했다"며 "당시 추미애 현 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현 국회의장이 기권했으니 앞으로 조사 과정이 어려울 것임을 가히 짐작 한다"고 말했다.

의혹 제기 초반, 차가운 진실에 다가서고 말했던 일부 의원들의 일성은 새누리당의 오랜 '색깔 공세'의 관습에 파묻히고 있는 실정이다.

전날 "절대 흥분할 일도, 과격할 일도, 비난할 일도 아니다"고 했던 이정현 당 대표는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인권은 인류보편적인 문제고, (야당) 그분들의 입에 많이 오르는 문제다.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에서 (야당이) 자꾸 딴 길로 나가자고 하면 되겠나"라고 야당에 책임을 돌렸다.

정말 딴 길로 새고 있는 것은 어느 쪽일까. 감정을 앞세운 뜨거운 비난과 억측만으로 차가운 진실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태그:#이정현, #정진석, #문재인, #빙하는움직인다, #새누리당
댓글2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