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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의 표지.
 <게스트>의 표지.
ⓒ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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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게스트>(The Paying Guest)(2014)는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로 유명한 세라 워터스의 최근작입니다. 작가는 <핑거스미스>를 포함한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이후,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 2편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2차대전을 겪은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The Night Watch>(2006), 2차대전 종전 직후 몰락해 가는 어느 젠트리 – 영국의 하급 지주 계층으로 가문의 문장과 장원을 소유할 수 있었음 – 가문의 이야기인 <리틀 스트레인저>(The Little Stranger)(2009)가 그것이지요.

이번 작품의 무대는 1차대전 종전 직후인 1920년대입니다. 전쟁으로 남자 형제들을 잃고, 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신 프랜시스는 어머니와 런던 교외의 저택에서 단 둘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큰집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빚과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2층에 세를 놓고 자기 또래의 릴리안과 레너드 부부를 세입자로 들입니다.

처음에는 중상류층인 프랜시스네와 이제 막 중산층으로 편입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사무원 계급'인 젊은 부부의 계급 차이가 묘한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레즈비언으로서의 성 정체성을 가진 프랜시스가 릴리안과 가까워진 다음부터입니다.

이들의 사랑은 프랜시스의 어머니와 릴리안의 남편 레너드의 눈을 피해 비밀스럽게 꽃피는 데까지 이르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큰 위기를 겪습니다. 굳이 이 소설의 장르를 규정한다면 본격 레즈비언 로맨틱 서스펜스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슴 설레는 사랑의 순간들, 큰 위기를 겪고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서스펜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열매는 합당한 시련을 겪은 후에야 얻을 수 있다'는 작가 특유의 주제 의식이 잘 표현된 성찰적 결말이 눈길을 끕니다.

여러 면에서 세라 워터스 소설만의 특징이 빛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시대 배경에 대한 꼼꼼한 묘사가 돋보이죠. 런던 중상류층 주거지의 풍속과 생활, 보다 떠들썩하고 활기찬 중하류층의 모습, 후반부를 장식하는 재판 과정 같은 것들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광범위한 리서치를 통해 얻어낸 매력적인 디테일들로 가득하지요.

또한, 사랑에 빠진 이의 다양한 감정 상태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싹튼 사랑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설레는 모습, 그 사랑이 받아들여졌을 때의 말로 못할 환희, 그리고 그에 곧바로 뒤따르는 두려움과 실망 같은 것들을요. 작가의 데뷔작 <벨벳 애무하기>에 나왔던 열병 같은 첫사랑도 신나고 재미있었지만, 이 책의 장면들이 훨씬 더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 같습니다.

한번 이야기에 휩쓸리면 도무지 책을 손에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작가의 뛰어난 필력도 여전합니다. 이 책도 700페이지 가량 되다 보니 읽기 전에 압박감이 좀 들었는데, 조금 읽다 보니 금세 빠져 들어서 페이지 수를 별로 신경 안 쓰고 읽게 되었습니다. 다만, 출판사에서 다소 무거운 종이를 쓴 탓에 들고 다니면서 읽기는 좀 버거운 편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책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아무래도 후반부를 장식하는 서스펜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부터 로맨스, 미스터리, 호러 같은 장르 소설의 공식들을 매끄럽게 잘 소화했던 작가이긴 하지만, 서스펜스를 이 정도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알고 있는 정보가 모두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숨막히는 긴장감을 매우 뛰어나게 형상화 해냈거든요. 만약 작가가 관심만 있다면 액션 스릴러나 스파이 소설도 잘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라 워터스는 성소수자인 레즈비언 캐릭터의 사랑 이야기를 매우 생생하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다룬다는 평을 듣는 편입니다. 또한 소수자를 대변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이것도 하나의 자연스런 삶의 방식이라는 태도를 취하지요.

게다가 문학적 완성도와 장르적 재미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서, 어쩌다 한 작품이라도 읽게 되면 나머지 작품들도 다 찾아서 읽고 싶어지는 작가입니다. 아직까지 출간되지 않은 2006년작 <The Night Watch>와 앞으로 나오게 될 신작들도 빠짐없이 번역되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게스트> 세라 워터스 지음, 김지현 옮김 / 자음과모음 펴냄 (2016. 6. 17.)



게스트

세라 워터스 지음, 김지현 옮김, 자음과모음(2016)


태그:#게스트, #세라 워터스, #김지현, #자음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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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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