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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을 보고 싶었다.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접어드니 초록의 빛깔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로 접어드니 그 부드러움에 간혹 노란빛과 붉은 빛이 어우러진다.

설악산 미시령이나 한계령에 서면 막 시작된 단풍의 화사한 빛깔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노란 가을빛에 한껏 고개숙인 벼를 바라보며 '이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가는구나'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며 강원도로 향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단풍빛은 곱지 않았다. 설악의 단풍은 이제막 시작되었고, 여름의 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드럽고 완연한 가을의 빛을 아닌 그 사이에 서 있었다.
구절초 설악산 권금성 절벽에서 만난 구절초 ⓒ 김민수
그 사이사이로 가을꽃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인사를 한다. 고려엉겅퀴(곤드레), 용담은 보랏빛을 자랑하며 풀숲 사이에 드문드문 피어있었고, 구절초는 흙도 없는 바위틈에서 백옥의 하얀 눈처럼 피어났다. 연한 보랏빛 쑥부쟁이는 무성하고, 길가에 코스모스는 만발했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가을은 아직 멀었나 싶었는데, 가까이 가서 다가보니 이미 가을은 깊을대로 깊었다. 싸리나무 같은 것들은 이미 단풍이 노랗게 들어 상당수 많은 이파리들이 떨어졌으며, 작은 풀꽃들은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야 곤충들의 날갯짓을 들을 수 있었다.
바위채송화 오색약수터 부근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바위채송화, 가을 초입까지도 여전히 피어나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 김민수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 초록의 풀꽃 생명들이 내년을 기약하며 피어나는 마지막 계절이 가을이다. 봄이 시작되고 가장 늦게 피어나는 꽃, 가장 오랜 시간 인내한 후에 피어나는 꽃이 가을꽃이다.

그 꽃들 사이에서 간혹 여름꽃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거의 기대도 하지 않던 꽃을 만나면 재미를 넘어서 신비함을 느끼게 된다.

지난 여름 휴가 때 오색약수터를 찾았다. 그 바위틈에서 바위채송화를 만났는데 그때는 가뭄이 극심한 때였음에도 피어난 것이 신기했고, 그것이 끝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두달 가까이 된 시점에 다시 그곳을 살펴보니 여전히 그때보다도 더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기적이었다.
산부추 보랏빛 산부추, 작고 단단하고 튼실하다. ⓒ 김민수
바위는 척박한 곳이다. 그래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것들은 키가 작다. 그러나 키는 작지만 더 옹골차고 색도 더 진하고, 향기도 더 진하다. 지금 바위틈에서 피어난 작은 꽃들이 우리에게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난이나 절망에 굴복하지 마세요.
그것을 삶의 디딤돌로 삼으세요.
그러면, 당신의 삶은 더욱 향기롭고 아름다워질 거예요.
고난이나 절망을 애써 구하지는 않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냥 그렇게 웃으며 맞이하지요.
바위틈에 피어난 꽃들 쑥부쟁이와 산부추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있다. ⓒ 김민수
권금성 가는 길에 바위틈에 피어난 쑥부쟁이와 산부추를 만났다. 마치 지금 우리네 현실의 상징을 보는 듯하였다. '저렇게 피어날 것이다. 반드시, 저렇게 피어날 것이다' 생각하며 위로를 받는다.

비상식이 상식이 되고, 불륜과 로맨스의 구별조차도 못하는 이들이 최고 권력의 자리에 앉아 국민을 조롱하는 세상이다. 그런 조롱에 맞서는 이들도 있지만, 거기에 놀아나며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춤을 추는 이들이 만연한 세상이다. 그 조롱에 맞서는 자는 한 번도 아닌 두 번도 능히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절망일까?

아니, 그 절망의 바위가 아무리 커다랗다고 해도 저 꽃 피어날 틈조차 없을까? 저 바위 틈에서 피어난 꽃이 나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다.
해국 갯바위틈에서 자라난 해국 ⓒ 김민수
해국 동해바다의 바위틈에 피어난 해국 ⓒ 김민수
동해 바다의 갯바위에서는 해국도 만났다. 제주도와 서해안의 해국은 보았지만 동해안의 해국은 처음이었다. 파도소리에 끌려 바다를 걸었고, 한적한 가을의 바다 모래사장에 홀로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좋아 걷는 중이었다.

갯바위에 초록생명의 빛이 보였다. 무엇일까 가까이 가면서 해국의 이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꽃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위를 타고 올라가 보니 설악산 울산바위를 향해 화들짝 피어난 해국, 반대편에는 떠오르는 태양을 향헤 피어난 해국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누가 봐주지 않아도 자기를 온전히 피워내는 꽃, 그래서 나는 꽃을 좋아할 수 없는가 보다. 사람은 누가 봐주지 않거나 알아주지 않으면 여간해서 피워내기 쉽지 않는데 그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닮고 싶다.
꽃향유 척박한 바위에서 자란탓에 키는 작지만, 색과 향은 더 진하고 깊다. ⓒ 김민수
땅에 핀 꽃향유들은 키가 크고 꽃도 크다. 그들도 나름나름 예쁘지만, 바위에 피어난 꽃향유와는 비교할 수 없다. 바위에 피어난 것들은 키도 작고 듬성듬성 피어난다. 그럼에도, 옥토에 뿌리를 내리고 무성하게 자라나는 꽃향유보다도 훨씬 더 빛난다.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나났다고들 한다.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도 있다.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시대가 타락했어도,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더 깊은 향기를 간직하고 더 진한 빛깔로 피어나는 꽃 있듯이, 개천이라도 은수저 하니 흙수저라도 피어나고자 하면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그렇게 피어나고자 하다가 피어나지 못한들, 그것은 왜 의미없는 인생이란 말인가?

어쩌면 바위틈이라는 것은 저 밑바닥, 막장과도 같은 척박한 곳일 터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감히, 평지에서 피어난 꽃들이 범접할 수 없는 빛깔과 향기로.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29-30일, 설악산과 동해에서 만난 가을꽃들입니다.

태그:#구절초, #쑥부쟁이, #꽃향유, #해국,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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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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