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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섭 인천광역시 남구청장은 내가 제기하는 민원의 총괄책임자다. 그가 인터뷰이가 된 이유다. 물론 인터뷰를 기획한 구체적인 동기가 있다. 폭염에 휩싸인 지난 여름부터 내 주거인권과 건강권에 빨간불이 켜지는 '합법적'인 일들이 연일 벌어져서다.

6월 하순에 단독주택(단층)인 내 집 뒤로 빌라신축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 가림막으로 인한 어둠은 차치하고라도, 공사를 안 하는 일요일 하루가 천국일 정도로 나날이 소음과 비산먼지 구덩이였다. 그러나 건축주는 당당했다. 공사 진행 사항 모두 건축법 상 합법이라고.

살다 보면 주변 환경 변화는 당연지사다. 그러나 건설경기 진작 명목의 악순환적 변화마저 불가항력으로 방치할 수는 없다. 민원을 위해 구청을 찾은 것은 에어컨 실외기 때문이었다. 소음과 열섬 현상을 심화시키고 대기오염물질을 내뿜는 에어컨 실외기 구멍 4개가 내 집 방향으로 날 판이었다.

주택 간 이격거리는 1.5m가 합법이다. 그러나 창에 난간을 설치한 후 난간 밖으로 실외기를 장착하다 보면 실제 간격은 훨씬 좁아진다. 창이 마주보는 상황에서 실외기가 작동할 때 피해 주민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악영향은 위험 수준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서민주택가일수록 실외기를 옥상이나 도로변 쪽으로 설치하는 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다.

며칠 후 담당 직원은 민원이 해결됐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건축주는 2층만 도로변으로 구멍 하나 더 뚫는 식으로 처리했고, 물먹은 구청에 2차 민원을 넣었더니 합법이어서 강제 이행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건축법은 건축주 우선이었다. 게다가 건축과 담당 직원은 문제의식이 희박했다. 따라서 내 민원은 어그러졌지만, 뻔히 악순환에 휘말릴 서민의 삶터를 모르쇠 잡고 끝낼 수는 없었다. 일단 구민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려는 구청장의 의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인터뷰를 위한 진행은, 일정을 잡아 준 홍보팀장에게 사전 질문지를 보내 구청 각 분과의 의견을 취합한 답변서를 받은 후 질문을 압축하고 변용해 구청장과 대면하는 순이었다. 인터뷰는 지난 9월 12일, 약 1시간 동안 이뤄졌다. 아래는 사전 질문지에 밝힌 인터뷰 취지이다.

"구청장 공약 사항들은 크게 4가지다. 지혜로운 시민, 지속 가능 도시, 사회연대 경제, i-미디어시티 등이 구현되도록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건강한 시민 사회를 지향하는 타당한 관점이고 토대들이다.

그러나 남구 주민으로서 일상에서 수시로 부대끼는 사안들의 해법을 찾기는 꽤 어렵다. 예를 들면, '건강한 시민'을 위한 전략들이 매우 제한적이다. 체육시설과 체육활동에 관한 계획들은 있지만, 정작 소음 및 대기오염물질 방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이나 주민 간 갈등을 해소하려고 기존 민원들을 살핀 계획들은 태부족이다. 청소차로 물청소를 해서 비산먼지를 줄이겠다는 증상에 대한 접근은 있지만, 원인을 밝혀 감축하는 방안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는 식이다. 구민과 공감하는 구정을 기대하니 아쉽다.

따라서 이번 인터뷰는 남구 주민으로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안들에 대해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이른바 구청장과 주민 간의 공감지수를 높여보기 위한 시도로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셈이다."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고, 만들어진 법은 지켜야 한다"

박우섭 인천광역시 남구청장
 박우섭 인천광역시 남구청장
ⓒ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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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민업무의 전방이 동이다. 21명의 동장들과 유대관계는 어떻게 구축하고 있는가?
"'동장 e음 톡'으로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아침 9시부터 9시 30분까지 30분 간 구청장, 국장, 동장 21명이 화상회의를 한다. 각 동 현안문제나 민원을 나누며 국장급들이 답변도 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오프라인에서 동장님들과 자리를 함께한다. 또 1년에 한 번은 1박2일로 동장님들과 MT를 가서 전체적인 구의 문제라든지, 공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바에 대한 연수를 한다."

- 질문지에 대한 각 부서의 답변서를 보면 "행정지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내용이 많다. 지혜로운 시민, 건강한 시민이 태부족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구청장의 발품 행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법적인 문제들이 많아 그렇다. 질문지에 건축 얘기도 많이 있었는데, 남구는 건축 민원이 상당히 많다. 건물 하나가 들어서면 그 자체가 하나의 민원이 된다.

사실 남구는 '건축사전예고제'라는 걸 독자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6층 이상의 건물이 들어설 거면, 이런 건물이 들어선다고 알리고 주위에서 그것을 보고 사전에 민원을 제기하는 거다. 건축주와의 만남도 주선하고.

그런데 국토부에서는 이걸 하지 말라고 한다. 왜 법에 없는 규제를 지자체에서 하느냐는 거다. 우리 입장에서는 건축법이 건축주 우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사는 사람들의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러다보니 설계사무소나 건축하는 사람들은 남구가 규제가 심하다고 한다. 이런 문제들은 오히려 법적인 문제, 그 다음에 중앙정부의 방향 등과 관련 있다.

도시형 생활주택 같은 경우도, 건축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주차장을 완화시키고, 차선 제한도 없다. 그런 법은 여기 사는 주민들을 위한 법이 아니고, 땅을 이용해서 건축으로 이익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중심인 법이다. 이렇듯 법적인 어려움이 많다. 특히 건축분야에서 지방정부가 자율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야 한다.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현장에 나가 현장의 소리를 직접 듣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결국은 현장에 가야 문제의 해결점이 보인다. 일주일에 한 번 동을 순회하기도 하고, 민원이 들어오면 현장에 나가 보곤 한다."

- 그러나 민원은 이미 증상이다. 증상 이전에 원인을 줄이는 방안, 가렵기 전에 가렵지 않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하나의 예로 개똥 문제로 민원을 넣었더니, 딱 한번 알림 용지를 배포하더라. 그럼 효과가 없다. 주차문제처럼 갈등 요인이 그대로이면 구청이 잘 한다는 생각이 안 든다. 단, 불법홍보물 부착은 덜해졌다. 이 부분은 애를 쓰는구나 생각했다.
"(웃음) 우리로서는 4대과제로 불법주차, 노점상, 쓰레기, 불법현수막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런데 구청 직원이 만날 가서 버티고 있을 수도 없기에 거꾸로 그 사람들이 노리는 이익보다 오히려 손해가 더 가도록해서 문제를 안 일으키게 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예를 들어 노점상도 노점상이지만, 가게 앞에 물건을 내놓는 사람들에게도 과태료를 지속적으로 부과하고, 불법현수막은 떼도 또 붙이니까 과태료를 계속 부과해 이익보다 손해가 크도록 해서 결국엔 안 붙이도록 유도하는 행정이다. 노점상도 도로점용료를 내게 해서 합법적으로 운영하게 하고.

그게 잘 되지는 않는데, 그런 쪽으로 가보자 해서 가고는 있다. 사실 과태료를 부과하는 게 쉽지 않다. 불법 주차에 대해 지속적으로 돈을 못 받을 바에야 차라리 주차선을 긋고 돈을 받는 것이 낫지 않은가. 유럽 같은 곳은 시간대별로 돈도 다르게 해서 시행한다.

뭐든 질서를 세우는 게 필요한데, 우리는 금지선만 그어 놓고 어쩌다 걸리면 딱지 떼는 식이다. 그러면 법의 권위도 서지 않고 질서도 안 잡힌다.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고, 만들어진 법은 지키는 방향으로 가야지, 지키기 힘든 법을 만들어 놓고 단속도 안 하다가 가끔 재수 없는 사람만 걸리게 하는 식은 안 된다."

- 고충을 들으니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 집 뒤로 빌라가 신축되는 과정을 겪으며 구청이 아직 분쟁을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했구나 느낀 적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실외기 설치 문제다. 주택 간 이격거리가 법적으로 1.5미터인데, 이것저것 따지면 1미터가 채 안 되는 벽에 실외기가 설치돼 있어, 상대 주민은 건강권을 바로 침해당한다.

구청에 옥상 설치를 요청했더니 그런 경우는 없었다고 일축하고, 당연히 건축주는 남들도 다 벽에 설치하므로 문제될 게 없다 했다. 기후 변화 뿐 아니라 건강권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하니까 실외기를 옥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지 않겠는가?
"답변서에도 소개됐지만, 건축과에 '제도개선동아리'가 있으니 검토해 볼 수 있다. 집하고 집 사이의 거리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건데, 결국 법이라고 하는 게 구체적인 현실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그걸 요구해서 옥상으로 올리든, 집과 집 사이에 설치할 때는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인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건축하는 사람들이 대개 살 집이 아니라 팔 집을 짓는 거니까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전혀 안 한다는 거다. 내가 살 집이면 옆집에 어떤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실외기를 설치하면 되는 건데, 모든 걸 법으로 규제해서 못하게 해야 하니 건축과는 일일이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도 없고...

또 법으로 되어 있지 않으면 딱 뭐라고 정리하기가 어려운데, 그나마 구청이 얘기하면 들으려고는 한다. 아무래도 우리한테 준공도 받아야 하니까. 그런데도 자기네가 비용이 많이 들거나 어떤 난점이 있어서 안 하고 버티면 구청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 법 때문에 행정조치에 한계가 있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환경도시라는 남구의 청사진이 있는데, 건축주들이 건축 허가를 냈을 때 '이런 사항들은 지켜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하면 비용이 들더라도 그들도 염두에 둘 것 아닌가.

그 중 하나가 분진막과 방음막이다. 재료를 보니까 전혀 분진을 막지 못할 거 같아 건축과에 얘기했더니 일반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마스크도 등급이 있는데, 정말 시민 건강을 생각하고 남구가 안전도시가 되려면 건축과에서 분진을 막을 수 있는 재료까지는 알고 제시해야 한다.
"그건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허가를 낼 때 취할 수 있는 조치다. 법이 콕 집어 규정하지는 않지만,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구청 말 안 듣고 공사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 공무원들도 아직 그런 데까지 신경을 못 쓰고 있다. "

- CCTV를 제대로 활용하는지도 의문이다. 처음 설치한다고 할 때는 사생활침해를 걱정하다가 쓰레기무단투기라도 막을 수 있겠거니 기대를 했는데, 막상 무단투기가 계속 돼도 CCTV 바로 밑인데 해결이 안 된다. 통장에게 물으니 구청에서 CCTV를 잘 안 본다고 했다. 또 불법홍보물 때문에 현장에 나온 공무원에게 CCTV 활용을 건의했더니 그건 경찰 소관이라고 했다. 그리고 신청자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민 입장에서 황당했다. 이런 CCTV라면 무용지물이다. 그럼 왜 설치했는가?
"이번에 CCTV 통합관제센터를 강화하려고 진행 중이다. 지금은 주차 따로 쓰레기 따로 되어 있는 모든 CCTV를 한 곳에서 통합해서 보는 쪽으로 하면 나아질 거다. 물론 인력이 더 필요하다."

- 마지막으로,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쓸 때마다 망설여진다. 썩지 않으니까. 언제까지 썩지 않는 걸 써야 하는가. 일반 재활용품도 비닐에 넣지 않으면 안 가져간다. 자꾸 비닐 사용만 늘어난다.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건가?
"썩는 비닐은 나와 있는데 안 쓰고 있다. 비용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쓰레기 처리 비용이 1년에 한 100억 정도 들어가는데, 쓰레기봉투 팔아서 한 50억 정도 들어온다. 비용이 높아지는 부담이 있긴 한데, 썩는 쪽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비용 문제다."

- 비용 문제를 들어 계속 미루고 있기에는 묻히는 비닐 양이 엄청나다. 종량제로 예산을 얻는 부분이 있지만, 이것 때문에 환경은 더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계속 미룰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고민거리다."

박 구청장은 외무에서 돌아오자마자 인터뷰이가 되었다. 사전 질문지에 없는 질문들이 대부분이었음에도 솔직하게 의견을 개진하거나 막힘없이 설명했다. 특히 구청안팎의 다양한 관점들을 짚으면서도 자기 말의 행간을 살피도록 하는 어법이 인상적이었다.

탈권위주의적 집중력으로 낯선 구민과의 공감지수를 높인 박우섭 구청장에게 '사람 중심' 행정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아울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에게 선뜻 일정을 잡아준 홍보팀장과 고심 어린 답변서를 마련한 구청 공무원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태그:#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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