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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부산 경성대학교 기숙사인 누리생활관 남학생과 외국인 학생이 머무는 제1누리생활관과 여학생 기숙사인 제2누리생활관을 합쳐 1300명 가량이 머물고 있다.
 부산 경성대학교 기숙사인 누리생활관 남학생과 외국인 학생이 머무는 제1누리생활관과 여학생 기숙사인 제2누리생활관을 합쳐 1300명 가량이 머물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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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5.8의 지진이 전국을 뒤흔들었던 지난 12일 저녁, 그 익숙하지 않은 떨림에 부산 경성대학교 기숙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불안감을 느낀 학생들이 15층 높이의 기숙사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외부로 통하는 비상계단 출입문(아래 비상문)은 잠겨 있었죠.

600여 명이 생활하고 있는 경성대 제1누리생활관은 외부로 통할 수 있는 지상 1층과 2층, 지하 1층 비상문이 평소에도 잠겨 있습니다. 이 문이 닫혀있는 상태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건물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기숙사에는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학생도 약 250명이 생활하고 있죠.

기숙사생인 A씨는 지금도 지진 당시를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하다고 합니다. 그는 "지진에 놀란 학생들이 계단으로 대피하려 했지만 비상문이 열리지 않아 대피하지 못했다"라면서 "유일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로 사람이 몰렸고, 한참이 지나서야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제보를 접하고 지난 19일 저는 경성대를 찾아 기숙사생들을 만났습니다. 취재 결과 내용은 사실이었죠. 갑작스러운 지진에 학교 측은 우왕좌왕했고, 제때 비상문을 여는 시간을 놓쳐버렸던 겁니다. 뒤늦게 학교는 대책을 세우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취재를 하고 돌아온 날 밤 또 한 번의 강력한 여진이 찾아오자 경성대는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신속히 안내방송을 하고 비상문을 열고 학생들을 대피시켰다는군요. 하지만 학교측의 지진 대응을 지적하려고 했던 제 기사는 세상에 선보일 수 없게 됐습니다.

애써 취재한 기사를 묵힌 아쉬움도 있긴 했지만, 경성대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고 지진에 대응했다는 점이 더 흐뭇했습니다.

다운되는 서버, 늑장 재난 문자 "국민안전처는 어디에?"

19일 오후 8시 33분께 경주 남남서쪽 11km 지점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이번 지진이 지난 12일 발생한 지진의 여진이라고 밝혔다.
 19일 오후 8시 33분께 경주 남남서쪽 11km 지점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이번 지진이 지난 12일 발생한 지진의 여진이라고 밝혔다.
ⓒ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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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저는 지진 기사를 자주 쓰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퇴근 후에야 찾아오는 그 진동을 고스란히 느끼면서요. 솔직히 불안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름의 성과라면 지진에 대한 대책을 세워가고 있다는 겁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경성대 기숙사처럼 몇 차례 지진을 겪으며 빠르게 대비책을 갖춰가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가슴 한쪽에서는 거대한 물음표가 떠오릅니다.

"국민안전처, 어디에 있나요?"

모두가 아시다시피 국민안전처는 지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교훈 삼아 설립된 정부의 재난 콘트롤타워입니다.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런 국민안전처가 정작 지진 앞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불안해서 몰려 들어간 국민안전처 누리집이 지진 이후에 다운됐다는 소식은 어느덧 평범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지진파의 특성을 고려해 지진 발생 수 초 전에 선제적으로 지진 발생 문자를 발송한다는 일본에 비할 바는 못 되더라도, 매번 상황 종료 후 한참이 지나 도착하는 거북이 재난문자를 보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난문자를 보내는 걸 국민안전처가 아닌 기상청에 맡기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정부 내부에서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안전처가 재난 콘트롤타워라는 말을 하기 머쓱해지는 상황이 오고 있는 겁니다.

유언비어에 속지 말라는 정부...강한 여진 없을 거라더니?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지진 대응시스템 미흡에 따른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지진 대응시스템 비판에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지진 대응시스템 미흡에 따른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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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대처 매뉴얼인 '지진발생 시 국민행동 요령'의 마지막에서 국민안전처는 "유언비어를 믿지 말자"고 강조합니다. "시·군·구나 경찰, 소방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직접 얻은 정보를 신뢰하고, 결코 근거 없는 소문이나 유언비어를 믿고 행동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불편한 진실은 국민을 동요시키는 요인 중 상당 부분을 국민안전처가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겠죠. 강한 여진이 없을 것이라던 정부의 발표가 오히려 지금은 비웃음을 사고 있으니까요.

물론 국민안전처도 억울한 점은 있을 겁니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 그런데도 맡아야 하는 재난은 수두룩한 상황을 탓하며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을 겁니다. 2년 전 세월호 참사 때 해양경찰처럼 말이죠.

2014년 5월 해양경찰 해체를 발표하는 대국민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인력과 예산은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고, 인명구조 훈련도 매우 부족했다"면서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그냥 놔두고는 앞으로도 또 다른 대형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라며 해경 해체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죠. 그때 발언을 다시 보자니 지금의 국민안전처와 겹쳐지는 건 저만의 느낌일까요. 또다시 물음표가 생깁니다.

"이러다 국민안전처도 해체할 건가요?"


태그:#지진, #국민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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