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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대신 자전거가 오가는 물길이 된 경인 아라뱃길. ⓒ 김종성
제주 섬을 한 바퀴 도는 '환상 자전거길', 강원도 삼척에서 남한 최북단 고성에 이르는 동해안길, 금강·낙동강·영산강 등 4대강변 자전거길까지 별별 자전거길이 많이 생기고 있다. 본래 화물선이나 유람선이 지나가는 뱃길(혹은 운하)을 만들었다가 자전거길이 된 곳도 있다. 김포 한강 하구와 인천 서해바다를 잇는 내륙뱃길인 경인 아라뱃길이다.

경인아라뱃길은 2012년 5월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내륙뱃길이다. 한강 하류에서 횡으로 내륙을 지나 인천 앞 바다까지 길이 18.7㎞로 잇는다. 한강과 서해를 빠른 뱃길로 연결하기 위해 만든 운하다. 선박의 운항을 위해 만든 운하지만 경제성이 없어 2012년부터 지금껏 배는 다니지 않는다. 유람선만이 적막한 운하를 오가고 있다. 주변에 풍경이라고 할 만한 게 없어선지 유람선마저도 텅 비어있다.

유령운하가 될 뻔했던 경인아라뱃길에 사람들이 찾아가게 된 건, 운하 양편에 만들어 놓은 자전거길 덕이다. 화물선이 빨리 지나가도록 만든 직선의 삭막한 운하지만, 강과 바다를 모두 볼 수 있는 유일한 매력 덕분에 경인아라뱃길은 자전거길 명소가 되었다. 이 운하는 '금수저 자전거길'이기도 하다. 운하를 만들 때 무려 2조 3000억이 들었다. 이용실적이 없어 매년 발생하는 손해와 관리비용은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수자원공사가 떠맡고 있다.

경인아라뱃길로 가는 다채로운 풍경의 굴포천

도시와 시골 풍경을 모두 품고 흐르는 굴포천. ⓒ 김종성
경인아라뱃길로 찾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인천공항철도(계양역, 검암역, 청라역)에 내리면 코앞이다. 한강 하류 방향의 자전거 도로를 달려 강서습지생태공원을 지나도 아라뱃길이 나온다. 이번 여행엔 아라뱃길과 이어져 있는 한강의 지천 굴포천을 달려 찾아갔다. 인천의 가장 긴 물줄기인 굴포천은 한강 하류부에 위치한 제1지류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에서 발원하여 경기도 부천시와 김포시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약 16km의 지방하천이다.

수도권 전철 7호선 굴포천역(인천시 부평구 삼산동)에서 경인아라뱃길까지 8km의 자전거
길이 나있다. 아파트 단지로 둘러쌓인 전형적인 도시 하천의 모습을 보여주던 굴포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적이 뜸한 소읍의 하천길로 변모하는가 싶더니, 하류에선 쌀 익는 풍경이 있는 시골 냇가로 모습을 바꾸는 다채로운 풍경의 물길이었다.

알고 보니 굴포천은 경인아라뱃길처럼 자연하천이 아니었다. 굴포천(팔掘, 물가浦)이란 한자 그대로 하천이 없던 곳을 인공적으로 파서 물길을 만든 것이다. 굴포천은 조선 중종 때 지방에서 곡물 등을 싣고 강화도로 이동하는 배가 물살 세기로 유명한 강화도 손돌목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많아 이 뱃길을 피해 더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도록 이 하천을 판 것이라고. 사람살이나 치수를 위해 만든 하천이 아니다보니 굴포천은 하천 유역 중 40%가 한강수위 이하의 저지대로, 여름 장마 때 비가 많이 내리면 침수피해가 크기로 유명한 하천이기도 하다.

풋풋하고 정다운 굴포천변 풍경. ⓒ 김종성
동네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굴포천. ⓒ 김종성
아파트, 부평역사박물관 등이 있는 도시지역을 벗어나니 자전거도로는 양편에 수풀이 우거진 좁은 오솔길로 얼굴을 바꿨다. 멀끔한 자전거도로보다 울퉁불퉁하고 불편한 길이지만 자전거 여행엔 이런 길이 더 반갑다. 길도 두 가지다. 천변길을 달리다 그 위로 난 둑길에 올라서면 굴포천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하천가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는 주민들, 조용히 물을 응시하며 낚시를 하는 사람들,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한 건지 바깥세상이 궁금한 건지 물 위로 펄쩍 뛰어 올라 고요함을 깨는 십 대 청소년 잉어들... 인공하천이라는 태생이 무색하게 정답고 자연스런 냇가였다. 낚시꾼 가운덴 멀리 서남 아시아에서 일하러 온 젊은 남자들도 있었다.

눈이 마주쳐 가볍게 손을 들자 같이 반갑게 손짓을 하던 남자와 몇 마디 말을 나눴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흔히 마주치게 되는데, 눈길이 마주쳐 살짝 미소를 짓거나 손 인사를 하면 무척 반가워한다. 이 나라에선 아는 사람이 아닌 경우, 잘못 쳐다봤다간 "뭘 봐?" 소리를 듣기 십상이어서다.

필리핀에서 왔다는 청년은 외롭고 정붙이기 힘든 타국에서 좋은 취미가 생긴 것 같았다. 낚시는 좋지만 잡은 물고기는 먹지 말라고 하며 헤어졌는데 씩 웃는 표정이 글쎄... 이 외국인 청년이 걱정된 건 중류, 하류로 갈수록 하천의 수질이 나빠 보여서였다. 각종 공장이며 창고, 비닐하우스 등에서 나오는 색깔이 확연히 다른 폐수가 굴포천에 그대로 섞이고 있었고,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어 수질오염은 더욱 악화 중이었다. 하천이 흐르지 않는 이유는 조금 후에 알게 됐다.

지나가는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주먹질을 하는 무법자 사마귀. ⓒ 김종성
굴포천의 흐름을 막아 수질을 나쁘게 한 주범 귤현보. ⓒ 김종성
올해 봄 굴포천에서 발생한 '의문의 물고기 떼죽음' 뉴스가 생각났다. 이렇게 직접 와보니 의문이 들기는커녕 한눈에 알 것 같다. 물이 오염돼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천변엔 놀랍게도 큰 캠핑장이 있고, 하천 물을 받아먹고 자란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논밭이 있었다. 하천 길에서 만난, 지나가는 자전거에 주먹질을 하며 덤비는 사마귀처럼 무모하고도 기묘한 풍경이구나 싶었다.  

굴포천 수질 오염의 가장 큰 원인은 경인아라뱃길로 이어지는 하류 끝에 가서야 알게 됐다. 수자원공사에서 만든 귤현보라는 작은 댐이 굴포천 하류를 막아서고 있었다. 아라뱃길 수질 보호를 목적으로 만든 보라고 한다. 굴포천 하류에서 바로 앞이 한강이다. 강으로 물이 흘러가게 놔두면 되지 아라뱃길이 오염된다고 저렇게 보로 막아 놓으면 굴포천은 대체 어쩌란 말인지... 가까운 한강도 그렇고 멀리는 낙동강까지 온갖 보(洑)들이 이 땅의 강과 하천을 가두고 썩게 하고 있다.      

굴포천 수질이 너무 심각했는지 부천시와 인천시가 함께 추진하는 '굴포천 Eco-Service 네트워크 구축사업'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하천개발이 2016년 7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시행된다고 큰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내년에 달라진다는 굴포천의 모습을 보러 또 와봐야겠다.

2조 3천억짜리 자전거길이 된, 경인 아라뱃길  

경인아라뱃길의 첫인상은 높다란 다리들. ⓒ 김종성
경인 아라뱃길의 첫인상은 높고 거대한 다리들이다. 다른 강들처럼 물길 양편을 건널 수 있는 여러 다리가 이어져 있는데 하나같이 고가도로처럼 아주 높다랗다. 운하를 지나는 큰 컨테이너 선박들을 고려해 만들어서다. 덕택에 다리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고 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눈 시원한 전망대가 있다. 아라뱃길 한쪽은 바닷물이 넘어오는 김포시 한강 하류, 반대편 방향은 인천 서해바다다. 해 저무는 서해바다풍경이 보고 싶어 바다 쪽으로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경인 아라뱃길 하면 운하보단 자전거 길로 소문이 나서 그런지, 곳곳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었다. 한 시간 4천 원, 하루 1만 원에 자전거를 빌릴 수 있으며 반납은 아무데서나 가능하다. 아라뱃길이 가까운 인천공항철도역(계양역, 검암역, 청라역)과 아라뱃길 양끝단의 김포여객선터미널, 아라여객선터미널 등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빠른 화물운송을 위한 뱃길을 위해 고속도로처럼 직선으로 만든 물길엔 새나 오리들을 볼 수 없었고, 이렇다 할 풍경도 없었다. 다만 물길 옆으로 강변 차도 같은,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는 그냥 달리기 좋은 자전거 도로가 나있다. 지나온 굴포천처럼 낚시꾼도, 수풀 우거진 오솔길도, 길을 막고 당랑권을 쓰는 사마귀도 없다. 운하 끝에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서해바다가 이어지지 않았다면 굳이 일부러 찾아와서 자전거 페달질을 할 이유가 없는 곳이다.

아라뱃길이 자전거 명소가 됐음을 알려주는, 여러개의 자전거 대여소. ⓒ 김종성
2조 3000억 원이나 들여 만든 서해와 한강을 잇는 화물운하지만, 도로보다 훨씬 느리고 운송비도 비싸다 보니 아라뱃길은 늘 텅 비어 있다. 자전거 타러 온 사람들마저 없었다면 유령 운하가 될 뻔했다. 4대강 개발 사업처럼 아라뱃길도 하지 말았어야 할 사업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만성적 홍수 예방, 컨테이너 선박이 오가며 물류비 절감, 뱃길 이용으로 교통난 해소, 운하 주변으로 문화관광레저 사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감사원의 경제성 없음 판명에도 불구하고 운하 사업을 밀어붙였다. 국내·외 경제사회 분야를 종합적으로 연구한다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 KDI가 정권의 입맛에 맞게 연구 자료를 만들었다.  

케이블 TV에서 자주 틀어줘 보게 되는 흥미로운 영화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2011년)>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자신들을 죽이려는 군인들에게 반격하는 매그니토를 막아서며 자비에가 외친다.

"저들은 단지 명령에 따르는 죄 없는 사람들일 뿐이야!" 

이 말에 매그니토는 싸늘하게 대답한다.

"이제 두 번 다시는 명령을 따르는 자들에게 당하지 않겠다."

아라뱃길을 오가는 유일한 배, 텅 빈 유람선 

경인 아라뱃길을 오가는 유일한 배, 유람선. ⓒ 김종성
가끔씩 아라뱃길을 왕복하는 큰 유람선이 지나갔다. 저 배는 무슨 풍경을 보려고 탔을까 궁금해 바라보니 운하처럼 유람선도 텅 비었다. 그래도 소수나마 유람선에 탄 사람들에게 미안했던지, 아라뱃길의 유일한 볼거리 아라폭포가 나타났다. 8줄기로 쏟아지는 거대한 인공폭포로 높이 또한 까마득해 폭포 옆으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폭포 전망대가 나온다.

폭포 옆엔 유리로 바닥을 깔아놓아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금세 티가 나는 UFO 전망대도 있다. 아쉽게도 아라폭포가 쏟아내는 장쾌한 물줄기를 보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많은 계단을 걸어 올라왔는데, 유람선이 바로 앞을 지나갈 때만 폭포 작동이 된다는 말을 들으니 피식 실소가 나왔다.

폭염이 사라진 늦여름,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따사롭기만 했다. 8월 한여름에 그렇게 소원했던 소나기가 잦아진 요즘, 아라뱃길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대부분의 자전거 라이더들은 오히려 기분이 좋다는 듯 온몸을 적시며 달렸다. 몸에 닿은 축축한 물기가 자전거가 달리며 생성한 바람에 시원하게 말라가는 상쾌한 기분, 자전거 타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아라뱃길의 명소 8줄기 인공폭포,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 김종성
23층 아라타워에서 보이는 아라뱃길의 끝 풍경. ⓒ 김종성
아라뱃길엔 시천나루, 귤현나루, 판개목 등의 옛 나루터 이름이 남아있다. 올망졸망한 고깃배, 어선들이 부지런히 오갔을 나루터, 하지만 흔적조차 없이 안내판만 덩그러니 서 있어 배 없는 뱃길만큼이나 헛헛했다.  

아라여객선터미널 이정표와 함께 바람으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거대한 풍력 발전기 2대가 보이면 아라뱃길의 끝에 다 온 거다. 풍력 발전기는 어릴 적 내 자전거 핸들에 매달고 달리던 바람개비 모양이라 그런지 언제 봐도 친근하다. 자연이 보내 준 바람이 인간의 삶에 필수가 된 전기를 만들어 줘서인가보다. 풍력 발전기 1대 당 연간 1천 가구(4인 기준)에 전력공급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라뱃길의 끝 질펀한 서해바다가 보이는 아라여객터미널 안내센터를 둘러보다가 무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운하를 만들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220년(고려 고종8년) 최초의 운하건설 시도가 있었다. 최충헌의 아들 최이가 인천 앞바다에서 지금의 굴포천을 지나 한강에 이르는 인공운하를 건설하려고 했으나 원통현(현재 부천시)의 암석층을 뚫지 못해 실패하고 말았다. 이일로 인해 '원통'하다 하여 원통현, 원통이고개 등의 재미있는 지명이 생겨났단다.

아라뱃길 끝에 펼쳐지는 인천 서해 앞바다를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아라여객선터미널 옆에 있는 아라타워다. 카페도 있는 23층 꼭대기 전망대는 주변 풍광을 바라보며 쉬어갈 수 있는 좋은 휴식처이기도 하다. 무료입장에 매일 밤 10시까지 운영한다.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해 저물녘 찾아가면 더욱 좋겠다. 돌아올 때는 아라타워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인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이나 검암역, 계양역을 이용하면 된다.  

* 주요 자전거 여행길 : 수도권 전철 7호선 굴포천역 - 굴포천 - 귤현보 - 경인 아라뱃길 - 아라폭포 - 아라타워 - 공항철도 계양역 (약 35km)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11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경인아라뱃길 , #굴포천, #경인아라뱃길 자전거여행, #귤현보, #아라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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