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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기를 끊은 한광호씨의 유족과 동료들.
ⓒ 이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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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노조 대의원 故 한광호씨가 떠난 지 벌써 180여 일. 그는 여전히 원청인 현대자동차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차가운 냉동고 안에 있다.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故 한광호씨의 생일이었던 지난 8월 28일, 한광호씨의 이복형 국석호씨는 잔혹한 노조파괴 시나리오와 죽음에 대한 일관된 무시를 참다못해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국씨는 현재도 건강상태가 좋지못한 상태이다. 현대자본의 일관된 무시에 결국 그는 곡기를 끊어버렸다.
▲ 단식 23일만에 쓰러진 한광호의 이복형 국석호씨 국씨는 현재도 건강상태가 좋지못한 상태이다. 현대자본의 일관된 무시에 결국 그는 곡기를 끊어버렸다.
ⓒ 유성기업과 함께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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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내 목숨까지 가져가라"고 외치다가 결국 단식 23일 만에 쓰러졌다. 고인의 동료와 그 유족들은 무너지는 가슴을 붙잡고 여전히 서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사옥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들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2016년 추석에도 그곳엔 사람이 있었다. 한광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너무 아파서 아프다고 소리칠 힘조차 떨어져 가는 사람들. 고인을 보낸 후 그저 피눈물만 토해내고 있는 사람들. 기자는 지난 7월부터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만났다. 15일부터 추석 연휴 중에도 틈틈이 농성장을 방문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노동자의 죽음 

그는 동료들의 가슴 속에 별이 되었다.
▲ 동료들의 가슴 속에 남은 한광호 그는 동료들의 가슴 속에 별이 되었다.
ⓒ 이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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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에 부담을 줘서 정말 미안해요."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못할 정도로 착했다던 한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의 동료 중 일부는 아직도 상복을 입고 지낸다. 고인의 한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란다. 영동과 서초구를 오가며 꾸준히 투쟁을 이어가는 그들은 자신보다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동료의 환한 영정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영정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한광호씨는 95년 유성기업 영동공장에 입사했다. 그는 당시 같이 일하던 동료의 과로사를 계기로 사측에 야간노동 철폐와 주간연속 2교대 시행을 요구했다. 노동자는 결코 일하는 기계나 올빼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노동자의 인권과 정당한 노동환경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측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09년, 노조와 유성기업은 2011년부터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시행한다고 합의했지만 계획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결국 2011년 5월, 노동자들은 부분파업을 벌였다. 그러자 사측은 돌연 직장을 폐쇄하고 용역을 투입했다.

 살아생전, 밝은 한광호씨의 모습
ⓒ 이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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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향한 억압은 일상이었다. 그는 그런 노조를 이끄는 대의원이었다.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과 사측의 집요한 괴롭힘이 그림자처럼 늘 그를 따라다녔다. 1999년과 2012~2014년. 그럼에도 그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노조 대의원 자리를 지켰다.

그는 사측 관리자들의 폭행에 시달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결국 가슴 속 깊이 맺힌 원통함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016년 3월. 비록 힘은 없었지만 항상 동료들 앞에 진실하고자 했던 한 노동자는 그렇게 이슬이 되었다. SNS와 몇몇 동료들에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워낙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는, 심성이 고왔던 그다. 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그가 경험한 우울증과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주변 지인들도 쉽게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동료들에게 너무 갑작스럽기만 했다. 그동안의 서러움과 안타까움이 터져 나왔다. 누구보다 힘들었을 그의 조용하고 처연한 죽음 앞에 많은 노동자가 함께 가슴을 치고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복수노조 허용과 창조컨설팅, 불행의 씨앗  

 한광호와 동료들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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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호씨 죽음의 배경에는 2011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복수노조 제도가 있다. 복수노조 도입을 골자로한 노동법 개정안은 2009년 12월 30일 처리됐다. 당시 여당과 환경노동위원장은 복수노조 허용을 찬성했다. 복수노조는 등장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목을 죄는 역할을 했다.

유성기업은 2011년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복수노조법이 시행되자마자 기업노조를 설립했다. 기업노조 '유성기업노동조합'에는 사무직들이 가입했다. 결국 유성기업노동조합이 다수노조가 되어 사측과 임금단체교섭을 진행했다. 복수노조 허용은 친기업적 노조의 탄생을 법적으로 허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노동자들과 어용노조의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됐다.

한광호씨가 보다 인간다운 노동환경을 목표로 동료들과 묵묵히 싸울 때, 현대자동차가 개입한 집요하고 잔인한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실현됐다. 노동자들은 지금도 현대자본과 유성기업의 가학적인 노무관리가 그를 죽였노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창조컨설팅은 복수노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파업유도와 직장폐쇄, 용역 투입, 어용노조를 설립 등의 단계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경찰 등이 개입해 과도하게 공권력을 행사했다.

노조파괴,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자 노동자의 존엄을 파괴하는 범죄행위 그 자체였다. 또 동시에 노동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힘든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은 당장 자신이 힘든 것보다는 죽은 고인의 한을 먼저 풀어주길 원하고 있다. 또 고인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 신장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다짐한다.

때마다 상복을 입어야 노조 활동을 간신히 이어갈 수 있다는 사람들. 누가 봐도 고인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이 진하게 남아있는 모습이다. 

노동자에게 냉담한 사회도 공범

 노동자들을 정말로 죽이고 있는 것은 우리들의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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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노동절 기념 연설 중 "좋은 직업을 원하고,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노조에 꼭 가입하라"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반면 한국에선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노동조합이 쇠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았다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을 것"이라는 망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망발이 먹히는 한국 사회 분위기, 민주노총 의원장이 도심에서 집회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 5년의 중형이 가해지는 현실들만 살펴보아도 지금 이 사회가 노동을 바라보고 있는 시각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범법자 취급하는 그 악랄한 모습은, 정글에서 자기보다 약한 동물들만 골라 먹잇감으로 삼는 승냥이 떼들과 다를 바가 없다.

왜 노동자들을 탄압한 무자비한 공권력과 철면피 같은 기업의 횡포에 대중은 분노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에는 그렇게도 시비를 걸면서도 힘있는 자본가의 탐욕과 횡포에 대해서는 왜 그리 관대한가.

끔찍한 현실이다. 아직도 노동자가 조합을 결성하거나 근로 조건·환경을 향상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권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무관심과 무지는 자본가들의 탐욕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그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유성기업은 노조파괴로 지난 5년간 우리들의 꿈을 모조리 빼앗아 버렸습니다. 우리는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허나 슬프게도 한광호 동지의 죽음 이후 우리는 다시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민주노조가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이고 내 앞의 동지가 바로 나와 함께 행복을 나눌 사람이라는, 바로 그 꿈 말입니다."

올해 4월경, 유성연대 한마당 행사에서 울려 퍼졌던 한 노동자의 외침이다. 그렇게 그의 죽음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가 되었다. 그의 죽음은 그렇게 단순히 절망에 빠진 한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죽음은 단순한 자살이라기 보다, 노동자 전체의 아픔을 상징하는 사회적 타살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 그는 노동자들의 아픔의 상징이다. 하지만 원청인 현대자동차는 인간적 연민이나 반성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폭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치료 한 번 해보지 못한 노동자의 상처는 또다시 깊어지고 있다. 우리가 그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시민사회취재단이 작성했습니다. 참언론 아카데미 수료생들로 구성된 시민사회취재단은 시민사회 이슈를 취재하는 활동을 합니다.



태그:#유성기업 노동자 故 한광호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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