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밤을 새웠다. 3개월 남짓 매일 공부하는 학교 기수방 개인 책상에서 혼자 과제에 매달렸다. 새벽 1시쯤이었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몸이 바짝 얼었다. 순간의 낯선 기척 하나에 온갖 범죄를 상상했다.

슬그머니 들어온 사람은 함께 공부하는 선배. 신문 한 부를 책상 위에 돌려놓고 다시 조용히 나갔다. 이후 방 안에서 문을 잠그고 공부하는데도 무서운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왕복 8차선 도로 옆 인도에서 낯선 남자에게 쫓기거나,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날 찍고 있는 투박한 손을 마주치거나, 번화가에서 일면식 없는 남자에게 다짜고짜 손목을 잡히는 일을 겪으며 살아서 그런 것일까. 길을 걸을 때나, 가장 안전하고 편안해야 할 집에서조차 혼자 있을 때 항상 무서움에 떤다.

해외 전문 사이트 넘비오(NUMBEO)의 조사 '2016년 세계 치안' 지도 화면 갈무리.
 해외 전문 사이트 넘비오(NUMBEO)의 조사 '2016년 세계 치안' 지도 화면 갈무리.
ⓒ NUMBEO

관련사진보기


해외 사이트 넘비오(NUMBEO)가 조사한 2016년 세계 치안 순위에서 안전지수가 가장 높은 '안전한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역설적인 일이다. 무서움에 떨 때마다 나는 늦은 시각에 돌아다닌 '조신하지 못한' 행동을, 범죄의 피해자임에도 두려움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자신을, 눈길 '끄는' 옷차림을 탓했다.

어렸을 적부터 "남자는 아빠 빼고 다 늑대"('이성'적인 동물 늑대에게 낯 뜨거운 말이지만)라는 말을 들어온 나는 지금껏 '늑대의 본능을 자극한 잘못'을 한 여자로서 자책하고, 보이지 않는 '늑대'를 두려워하며 살아왔다.

'남성은 욕구 실현을 위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인식

2016년 5월, 서울의 대표 번화가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 없는 한 여성을 흉기로 찔렀다. 그는 화장실에 숨어 앞서 지나간 여섯 명의 남성을 거르고,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죽였다.

범행 당일 붙잡힌 그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조현병을 앓던 정신질환 환자가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전형적 '묻지마 범죄'라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앓아왔다는 피의자의 병력 이전에 그는 한국 사회에서 '늑대'로 자라왔다. 남자는 넓은 공간을 쏘다니며 몸을 쓰는 운동을 좋아하고 여자는 가만히 앉아 인형놀이를 하는 게 정상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남자는 '약한' 여자를 지켜주면서도 호감이 가는 이가 있다면 거침없이 접근해도 되는 것, 심지어 폭력도 마땅하다는 것. 이 모든 '늑대성'에는 남성은 자신의 욕망이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깔렸다, 설령 그것이 범죄라 하더라도 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설파한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명제. 남성 역시 태어나기도 전에 늑대성이라는 그릇된 신화의식 속에 만들어진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 그리고 2016년 한국

지난 5월 19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한 시민이 추모 쪽지를 보고 있다.
 지난 5월 19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한 시민이 추모 쪽지를 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한 '늑대'의 손에 죄 없는 시민이 으스러지는 것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이성은 없다. 항상 여성에게 무시당했다고 느꼈다는 피의자의 말은 '늑대성'을 거세당하고 흘린 혈흔을 내보이며 피해의식을 강조하는 셈이다. 본능이자 진리로 떠받들던 늑대성이 꼬리를 감추는 동시에 한 남성 범죄자를 통해 모든 남성을 매도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라는 소리도 높아졌다. 늑대성에 피해 본 이들이 늑대성의 비이성을 혐오하자 혐오는 이성적이지 않다며 '위선의 이성'을 강요한 것이다.

이솝 우화 중 하나인 '양치기 소년'. 실체 없는 늑대를 꾸며낸 소년의 거짓말이 반복되자 마을 사람들이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도와주지 않아 결국 늑대가 마을의 양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리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쳐도 금세 거짓말이 돼버린다.

우리 삶에 깊게 박혀있는 늑대성을 보지 못하기에, 시민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늑대다!" 외침은 양치기 소녀의 '거짓말'이 될 뿐이다. 늑대가 모습을 나타내 위협하는 순간에 와서도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든 소녀의 잘못을 찾아내거나 외면한다.

강남역 살인 사건에서도 우리 사회는 가해자가 받았다는 무시에 귀 기울이면서도 피해자를 위로하고 혐오와 인권 침해에 소리 내는 피해자의 동료들을 '비이성'으로 치부하지 않았던가. 2016년 대한민국 양치기 소녀의 끝없는 외침은 비이성적이고 성차별적인 늑대성에 대한 혐오이며, 분노다.


태그:#여성차별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