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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굶어 힘든 게 아니다. 이번에도 물거품이 될까 싶어 무섭다"
▲ 비가 내리는 가운데 무기한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 "밥을 굶어 힘든 게 아니다. 이번에도 물거품이 될까 싶어 무섭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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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으로 가는 길, 무더위를 씻어내려는 듯 찬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더워서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는데, 한기를 느낄 정도로 스산했다. 단비에 폭염이 물러가듯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속히 희소식이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난 달 8월 17일부터 특조위 활동 보장과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유가족들 뿐만 아니라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동조단식을 하고 있는 모습에 울컥 뜨거움이 솟구쳤다.

"특별법 개정, 특검 의결, 세월호 선체 조사 보장! 국회는 국민의 명령을 즉시 이행하라!"는 침묵의 웅변, 목숨을 건 절절함에 명치끝이 자꾸만 아파왔다.

침몰해서 죽은 게 아니고 구조하지 않아서 죽은 것 아니냐?

"왜 또 다시 단식투쟁할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에, 단식으로 부쩍 수척해진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을 향한 단식이다. 국민들이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래서 큰 기대를 했는데, 솔직히 실망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낀다"고 운을 뗀 뒤 "지난 8월 12일 교섭단체 합의 내용이 결정적이었다. 정치에 희망을 걸고 싶었는데..." 하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유가족들은 지난 달 3일 야3당 원내대표가 모여, 8월 중에 세월호 특조위 조사 기간 연장을 추진하겠다는 합의 소식을 듣고 이제야 뭔가 제대로 되는가 보다 했단다.

그런데, 지난 12일 새누리당·더민주당·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활동 보장 없이, 조사 주체를 정하지 않은 세월호 선체 조사에 합의하는 것을 보고, 유가족들은 야당이 정부여당의 세월호 특조위 조사활동 강제 종료 입장을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어, 이를 심각하게 여겨 또 다시 무기한 단식이라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단다.

 36일차... 숫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세월호 유가족들... 36일차... 숫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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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준영 엄마'(임영애씨)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하고 있다. 교실을 뺏고 특조위를 강제로 종료시키는 등 하나씩 흔적 지우기 하는 것을 보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어 "침몰해서 죽은 게 아니고 구조하지 않아서 죽은 것 아니냐? 엄마로서 죄책감마저 든다. 우리 아이를 지켜주지도 못했는데, 그 억울한 한도 못 풀어주고 이렇게 세월만 보내고 있어 자꾸 자괴감에 빠진다. 준영이를 한 번이라도 안아보고 싶었는데, 요즘 같아서는 꿈에 나타나도 미안해서 차마 못 볼 것 같다"며 울먹였다.

밥을 굶어 힘든 게 아니다, 이번에도 물거품이 될까 싶어 무섭다

더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당선되자마자 이곳을 방문해 원내대책 차원의 TF(대책위)를 당 차원으로 격상시켜 세월호 문제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또한 단식을 중단해줄 것을 눈물로 간곡히 호소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유 집행위원장은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기다리는 중이다. 우리의 요구사항 중 하나만 들어준 셈이다. 국회의원 개인이 아닌 당 차원의 집단적 노력과 실천의지로 반드시 9월 안에 특조위 활동 보장과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이뤄야 한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또한 "국민의당까지 포함하여 야당이 모두 힘을 합쳐 뭔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단식을 중단할 수 있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석태 세월호특조위 위원장도 지난 29일, 추미애 대표에게 "특별한 변화가 없으면 특조위는 사실상 없어질 것"이라며 9월까지 세월호 문제를 풀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준영 엄마는 "밥을 굶어 힘든 게 아니다. 이번에도 물거품이 될까 싶어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든다. 또 다시 배신당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추미애 대표의 눈물을 믿고 싶다. 그러나 그 눈물에 진정성이 있는지는 결과를 봐야 안다. 박대통령도 눈물 흘리며 성역없이 조사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반문했다. 이어 "단식 중단 요구만 하지 말고 단식을 접을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20대 국회의원 153명이 발의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이 비를 맞고 있다.
▲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에 서명산 153명 의원 명단 20대 국회의원 153명이 발의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이 비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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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과 일부 보수언론은 적반하장식 사실 왜곡을 하지 말아야

유 집행위원장 등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밖에도 지난 29일 해수부가 발표한 '세월호가 눕혀진 상태에서 객실 구역만 분리하여 바로 세운 후 작업하는 방식(객실 직립방식)은 "미수습자도 수습 못하고, 참사의 제1 증거물인 선체가 훼손돼 진상규명도 못하는 하책으로, 무례하고 매우 위험한 방식"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또한 '광화문 천막 철거하라'는 조선일보와 새누리 정유섭 의원의 말에 대해, "언급할 가치를 못 느낀다"면서 "어떻게 아무런 근거없이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손실이 120조라는 허위사실을 말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특조위를 '세금 도둑'이라고 몰아세운 것은 정부여당 아니냐? 진실규명은 외면하고 시행령과 예산 등 갖가지 방법으로 집요하게 방해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본인들 책임의 몫이 어마어마한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런 방해 속에서도 특조위는 구조 실패의 책임이 해경 수뇌부에 있다는 점, 국가정보원과 청해진해운의 관계 등을 밝히는 성과를 냈고, 또 검찰 조사에서 누락된 대량의 철근, 그리고 그 철근 일부가 제주해군기지로 가던 중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내지 않았느냐? 따라서 정 의원의 주장은 '적반하장'에 '사실 왜곡'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진상규명 조사활동을 방해했습니다
▲ 농성장 안 펼침막 정부는 지속적으로 진상규명 조사활동을 방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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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진실규명이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 잘 안다. 그렇다고 정권 바뀔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느냐? 5.18도 천신만고 끝에 진실이 밝혀졌듯이 우리도 희망에 기대어 숨 쉬고 있다. 여소야대 국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 야당이 5공 청문회처럼 제발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정치가 움직이지 않으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라며 거듭 야당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호소했다.

이제 궤도에 오른 조사활동을 정부의 발목잡기로 그만둘 수 없습니다
▲ 농성장 안 펼침막 이제 궤도에 오른 조사활동을 정부의 발목잡기로 그만둘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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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나비모양의 뜨개질을 하는 순범 엄마(최지영씨)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아이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에 걸고 있는 순범 학생의 때 묻은 학생증을 보여주면서, "우리들이 여전히 진실 인양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이 나비를 나눠주며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다"
▲ 한 올 한 올 뜨개질을 하여 완성한, 아니 거듭난 나비 "아이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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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이 여전히 진실 인양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이 나비를 나눠주며 알려주고 싶다”
▲ 나비모양의 뜨개질을 하는 순범 엄마 “우리들이 여전히 진실 인양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이 나비를 나눠주며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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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단식 중인 이승헌 학생(국민대 3)은 "국민들이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주었는데 달라진 게 없어 답답한 마음에 유가족들에게 힘을 실어드리기 위해 동참했다"며 "야당은 속히 진정성 있는 활동을 해 달라.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하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며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야당은 속히 진정성 있는 활동을 해 달라.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하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
▲ 동조단식 중인 이승헌 학생(국민대 3) “야당은 속히 진정성 있는 활동을 해 달라.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하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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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 의원은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생명·안전보다 이윤을 추구한 기업, 그 기업을 관리감독 해야 하는 정부의 유착으로 일어난 사건"이라며, "이런 일에는 당연히 박 대통령이 보다 직접적이고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아울러 야당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앞장서 노력하겠다"고 했고, 노웅래 의원도 "단식 농성하는 유가족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153명의 의원 이름으로 발의한 만큼 특별법 개정안이 신속하게 처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농성장에서 나오는데, 교보빌딩에 써 있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들꽃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구절양장 꼬불꼬불 험한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이 된 아이들을 위해 오늘도 들꽃 같은 진한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 이들도 웅크린 다리를 펴고 크게 한번 웃어볼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구부러진 길이 좋다. 들꽃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 교보빌딩에 내걸린 글귀 ‘구부러진 길이 좋다. 들꽃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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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와 유사한 글을 '교육희망'에도 보냅니다.



태그:#세월호 유가족 단식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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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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