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는이야기

포토뉴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달팽이 느릿느릿의 대명사 달팽이 ⓒ 김민수
9월의 첫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체감 시간은 빠르게 느껴지기 마련인지라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뒤돌아보면 어느새 5년, 10년이 지나버렸음에 허탈해한다.

지나온 시간보다도 지나갈 시간은 분명 더 빠를 것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그러나 마음이 바빠진다고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음을 알기에 느릿느릿 살아가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내 삶 속에 축적되어 있다. 그것의 결과가 오늘의 나인 것이다.
달팽이 꽃잎에 앉아있는 느릿느릿 달팽이 ⓒ 김민수
한병철 교수는 <시간의 향기>라는 책에서 '사색적인 삶'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색 없이 주어지는 시간을 살아간다면, '일하는 동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색의 삶을 되살릴 때 비로소 '향기 있는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향기',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렇다. 시간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향기로운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향기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색의 삶을 살아가려면, 느릿느릿 천천히 걸어야 하며, 호흡도 가쁘지 않아야 한다. 경쟁사회에서 요구하는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시간의 향기를 누리며 살아가고자 한다면, 경쟁구도의 사회에서 뛰쳐나와 실패자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달팽이 풀잎 끝에서 갈 길을 탐색하는 달팽이 ⓒ 김민수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누군가 걸어가는 곳은 곧 길이며, 그 길은 곧 진리와 통한다. 진리와 통하므로 생명과도 입맞춤하게 된다. 그러므로, 죽음을 향해가는 길은 엄밀하게 길이 아니다. 경쟁사회에서 모두가 달려가는 그 길은 엄밀하게 말하면 길이 아니다. 죽음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달팽이 한 마리가 풀잎 끝에서 주저주저하며 망설인다. 길이 끝난 것일까?

아니, 되돌아가는 길, 그것도 길이므로 길의 끝에는 길의 시작이 있다.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이 길 다운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면 지금 가는 길에서 돌아서거나 그 길에서 이탈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달팽이 구절초 꽃잎에 앉아있는 달팽이 ⓒ 김민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사회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순간 실패자로 전락한다. 일등만 살아남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남보다 '빨리빨리' 살아야만 한다.

패스트푸드는 이런 경쟁사회의 산물이며, 거기엔 예전에 밥상머리에서 나눴던 소중한 것들은 모두 생략되어 버린다. 빨리 먹고 시간의 여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먹으면서도 일하는 동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패스트푸드는 어떤 재료가 어떤 방식으로 들어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대량생산 공장시스템으로 생산해 내는 패스트푸드 속에는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알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이미 경쟁자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앞서 있고, 누구의 추격도 따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들을 따라잡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닐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냥, 내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삶의 속도로 숨차지 않게 살아가면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우면 우리는 충분히 경쟁하거나 비교하지 않으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달팽이 느릿느릿 달팽이 ⓒ 김민수
천천히 느릿느릿 살아가자. 그래도 결코 느리지 않을 것이며, 그 길에서 우리는 덤으로 향기로운 시간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그 선물로 인해 느릿느릿 살아가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지혜로운 선택인지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빨리빨리 경쟁사회에서 달팽이처럼 산다는 것은 바보처럼 보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것이며, 그렇게 이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할 것이다. 그러나 한번 천천히 생각해 보자. 경쟁사회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와서 정말 우리는 행복했는지, 그리고 그 경쟁의 끝은 있기나 한 것인지.

9월의 첫날, 아침 나절에 꽃잎에 앉아있는 달팽이를 만났다. 그를 보면서 경쟁의 대열에서 이탈한 불안감을 떨쳐버린다. 경쟁하지 않고, 충분히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으로도 숨차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왜 없겠는가?

태그:#달팽이, #느릿느릿, #경쟁사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