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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유진(민언련 정책위원),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서명준(언론학 박사),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이진순(민언련 정책위원), 정민영(변호사), 정연구(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정연우(세명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말

청와대와 대립각 세우는 <조선일보>

영화 <영화는 영화다>(2008) 중 한 장면.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대립각을 보니 이 장면이 떠오른다. 진/흙/탕/싸/움.
 영화 <영화는 영화다>(2008) 중 한 장면.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대립각을 보니 이 장면이 떠오른다. 진/흙/탕/싸/움.
ⓒ 김기덕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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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달여 동안 논란의 중심에는 <조선일보>(아래 <조선>)가 있었다. <조선>은 지난 7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처가 땅 거래 의혹을 시작으로 정권 핵심부에 대한 공세를 이어왔다.

오래가지 않아 <조선>에 대한 '반격'이 개시됐다. <조선> 송희영 주필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더니, 이석수 대통령 특별감찰관과 통화한 <조선> 기자가 검찰로부터 휴대전화를 압수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조선>은 지난 8월 30일 치 사설을 통해 강하게 반발하면서 "나라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라고 치받았다. 난투극이 계속되면서 청와대와 <조선>의 대립각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는 눈에 띄는 점이 적지 않다.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정국을 좌지우지해 온 <조선>이 직접 이슈의 당사자로 등장하는 상황 자체도 이례적이거니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권에 찍힌 검찰총장을 쫓아내는 데 앞장섰던 <조선>이 바로 그 정권과 전면전을 벌이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조선>의 '진짜 의도'를 두고 지금도 해석이 분분하다.

<조선>이 말하는 '언론 자유'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8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 로비 목적으로 초호화 전세기 접대를 받은 유력언론인이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다"라며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8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 로비 목적으로 초호화 전세기 접대를 받은 유력언론인이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다"라며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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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이 모든 상황을 비판기사에 대한 정권의 보복, 언론의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규정짓고 있다.

"권력이 싫어하는 보도를 한다고 취재기자를 압수수색 한 것은 언론을 적대시했던 좌파 정권에서도 없던 일이다. 이 사건은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서 중대한 악례(惡例)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대통령 비서의 땅 의혹을 보도했다고 언론이 수사당하고 있다(2016년 8월 30일 자 사설)"


<조선> 기자에 대한 압수수색 등에 정치적 보복 성격이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조선>의 '언론 탄압' 주장에 깊이 공감하기 어려운 건, 단지 <조선>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언론사여서가 아니다. 그동안 <조선>이 '언론 자유'를 자사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면서도, 정작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에 대해 눈을 감거나 그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편의 막말 방송에 대한 대책으로 방송사 재승인 심사 점수에 반영하는 감점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조선>은 사설에서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조치와 입법도 삼가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비판했다. 2013년 국회가 <TV조선> 보도본부장에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하라고 통보하자 <조선>은 사설에서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거론하며 "언론을 통제하라고 국회에 국정감사권 준 것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조선>은 자신들을 건드리는 건, 곧 언론 탄압이라고 맞받는 데 능수능란했다.

'입맛에 맞게 취사 선택', 그것이 본질이었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자유'는 그때그때 달랐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자유'는 그때그때 달랐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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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언론인들이 정권을 비판했다가 일자리를 잃고, 압수수색을 당할 때, 정부가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조선>은 침묵하거나 본질을 호도하는 편을 택했다.

2008년 MBC <PD수첩>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 때 <조선>은 무리한 수사의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PD수첩>은 언론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조롱하기 바빴다. 2012년 MBC와 KBS가 공정방송의 기치를 걸고 거리에 나섰을 때는 "노영방송의 귀족노조가 벌이는 파업에 불과하다"며 핵심을 비껴갔다.

2014년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 상영을 막으려 하면서 촉발된 논란에 대해 <조선>은 "영화제에 대한 간섭이라기보다는 영화를 통해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려는 데 대한 시민들 상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왜곡했다. 스스로 관련되지 않은 문제에 대하여, <조선>이 언론의 자유를 주장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조선>과 청와대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조선>에 대하여 제기된 의혹뿐만 아니라, 청와대가 <조선>에 대하여 보복성 사찰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 역시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다만 사건의 결론과 무관하게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선>이 언론의 자유에 관한 한 최소한의 일관성을 갖추게 되었으면 좋겠다. 자사의 이해관계를 떠나 <조선>이 언론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황,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눈을 감지 않기 바라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핵심적인 가치이다. 1등 신문을 자부하는 <조선>이 '언론사의 자유'가 아닌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민영님은 법무법인 덕수 소속 변호사입니다.



태그:#조선일보, #언론 자유, #청와대, #우병우,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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