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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 시민기자와 서치식 공무원, 그들과 함께 하면 희망과 행복이 절로 넘친다.
 이영광 시민기자와 서치식 공무원, 그들과 함께 하면 희망과 행복이 절로 넘친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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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왜 기사 안 써요? "대학교에서 지내니까 편하고 좋죠?"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갓 구운 삽겹살 한 점을 단숨에 입에 넣고선 다그쳐 묻는다. 한때는 단 하루도 기사를 쓰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열혈 시민기자'란 소릴 들었던 내게 핀잔을 던지는 그는 현재 <오마이뉴스> 열혈 시민기자 이영광.

아침 일찍 전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낯선 서울에 가서 유명 인사들을 서너 명 씩이나 만나 인터뷰를 하고 돌아온 때문인지 몹시 수척해 보인다. 무엇보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고기가 맛있다"며 "고기를 추가해 달라"고 재촉한다.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를 통해 벌써 345회째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는 정말 거침없는(?) 시민기자다. 2009년 5월 <김현정의 뉴스쇼> 1주년을 맞아 김현정 CBS PD를 첫 인터뷰한 그의 기사 제목은 '앵커의 입 막는 비상식, 있을 수 없다'이다. 이때부터 시작한 그의 인터뷰는 어느덧 300회를 훌쩍 넘어 345회째 달리고 있다.

거침없이 인터뷰 기사 쓰는 시민기자, 늦깎이 공무원의 공통분모?  

그렇다고 그는 아무나 인터뷰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이슈의 중심에 선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낸다. 최근엔 가수 28명이 통일을 꿈꾸며 부르는 노래들이 담긴 앨범 '하나의 코리아' 대표 고형원 대표를 비롯해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에 관해 최경환 국민의당 의원,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 김정근 감독, 해직교사 문제로 이슈가 된 윤성호 전교조 전북지부장, 노종면 YTN 해직기자 등을 인터뷰했다.

"2005년 지독한 교통사고로 80 여일만에 의식을 회복하고 2006년 휠체어에 의지한 채 하프 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최종 목표로 설정 후 만 3년만에 병원치료를 스스로 마치고 '자가재활'을 하며 마라톤을 가열차게 준비 중인 전주시 공무원."

이날 전주시 송천동의 한 카페에서 이영광 시민기자와 함께 만난 사람은 서치식 시민기자. <오마이뉴스>에 자신을 소개해 놓은 글처럼 두 사람은 일맥상통한 대목이 많다. 불편하고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야 마는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들이다.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를 지닌 이영광 시민기자를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이다. 당시엔 그가 말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다. 전국의 많은 유명 인사들과 만나며 인터뷰를 시도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기사로 알리는 작업은 매우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신비로울 정도로 곧잘 이뤄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가 하면 2005년 5월 자영업을 하다 큰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는 서치식씨는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주변의 애틋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강한 재활의지와 꾸준한 노력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마라톤대회에까지 참가할 정도의 놀라운 진척을 보였다.

그러더니 나이 50세가 넘은 그가 공무원의 꿈까지 이뤘으니 역경극복의 주인공이 따로 없다. 서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 이름으로 기사를 쓰며 위로와 격려를 할 정도다. 2009년 1월 7일 <오마이뉴스>의 '외롭고 무서웠던 나의 재활기'란 기획기사 첫 편 "조용히 잠들어 버리자 왜 깨어났을까?"란 제목의 글로 자신의 재활경험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흔치 않은 두 삶의 궤적에서 공통분모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역경을 극복하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는 강인함으로 똘똘 무장돼 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서치식씨, 8급 공무원 변신

 늦깎이 공무원 서치식씨. 최근 8급으로 승진했다.(2년 전 인터뷰할 때 모습)
 늦깎이 공무원 서치식씨. 최근 8급으로 승진했다.(2년 전 인터뷰할 때 모습)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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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전주시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행복을 느낀다. 그들과의 만남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특히 서씨는 20여 년 전 이 지역 일간지에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오랜 후배이자 친구처럼 지내온 사이다. 신문사에 있을 때도 직원들이 어려운 문제에 닥치면 발 벗고 나설 정도로 항상 의리와 열정이 넘치는 그였다. 그러다 왜 큰 사고를 당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늘 또렷한 기억을 자랑하기라도 하듯이 이렇게 대답한다.

"2005년 5월 19일이 내겐 운명의 갈림길에 선 날이었다. 대학졸업 후 지역 신문사에서 10여 년 동안 근무하다 도저히 생활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대리운전업체를 직접 꾸려 운영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신문사 사주가 운영하는 모기업의 방파제 역할을 강요당하는 것에 항의하며 신문사를 뛰쳐나가 독자적인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사고를 당해 병원에 눕고 만 것이다.    

대리기사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업무 중 입은 교통사고로 외상성 뇌손상으로 인한 미만성 축삭손상(Diffused Axonal Injury)과 2·6·7번 경추골절을 입었다. 당시 119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80여 일 만에 의식을 회복할 정도였다. 온 종일 누워서 지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던 그는 힘들고 어려운 재활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오마이뉴스>에 '외롭고 무서웠던 나의 재활기'를 쓰기도 했다.

불의의 사로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돌아온 그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공무원의 꿈을 이룬 것은 사고를 당한 지 9년여 만이다. 재활의지를 불태우며 공무원에 도전한 그는 2014년 8월 전라북도 지방직 중 전주시 일반행정직 9급에 합격했다.

2014년 9월 20일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썼던 '나이 오십에 공무원 되는 법, 이 남자에게 배우세요'란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이 고마움을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달 그는 8급으로 승진되어 이제는 주변의 부러움을 하고 있는 어엿한 공무원이다. 전주시 완산구청 소속 공무원인 그는 불편한 몸에도 '찾아가는 세무행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늦깎이 모범공무원이다.   

몸은 불편해도 궁금한 사람들만 골라 인터뷰기사 올리는 이영광기자   

 궁금한 사람 모두를 인터뷰하고야 마는 이영광 시민기자.(2년 전 인터뷰할 때 모습)
 궁금한 사람 모두를 인터뷰하고야 마는 이영광 시민기자.(2년 전 인터뷰할 때 모습)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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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선을 이영광 기자 쪽으로 돌려본다. 2014년 7월 21일 필자는 한 방송에서 우연히 그의 근황을 접하고 인터뷰를 시도해 보았다. <오마이뉴스>에 올린 그의 인터뷰 기사는 "전주↔서울 출퇴근...이게 다 '인터뷰' 때문이다"란 제목으로 크게 다뤄지기도 했다.

인터뷰 왕을 인터뷰해서 글을 올렸으니 조금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런 저런 인연으로 우리는 자주 만났다. 주로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교 근처에서 모임을 갖곤 한다. 우리가 만나면 <오마이뉴스>에 관한 예기는 자연스레 공통 화제 거리이다.   

그중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에 대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묻곤 한다. 인터뷰 대상자를 어떻게 섭외했으며 어디서 만났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진지하게 말한다. "적어도 일주일 전에 섭외를 하며, 질문할 내용을 미리 전해 주어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만나는 곳은 주로 인터뷰이의 직장 또는 사무실 근처로 정하며 "서울까지 가는 김에 서너 사람을 하루에 모두 인터뷰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의 인터뷰 기사는 언론계의 중요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그 이슈의 중심에 선 전·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정치인들, 방송사 노조위원장, 해직기자, 대안언론사 대표, 인권 변호사, 언론·시민사회단체 대표, 현직 기자와 PD, 배우 등을 직접 만나 진행한 것이라 매유 유익하다.

몸이 불편한 그가 그처럼 부지런하게 발로 뛰며 인터뷰 기사를 쓰는 것이 부럽기도 하지만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성한 나도 못하는 것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저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시민기자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를 지닌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답을 구하고자 노력하는 모습, 죽음의 문턱에 까지 갔다가 재활의 노력으로 제2의 삶을 살아가는 늦깎이 공무원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그들에게 희망을 배우며 행복을 느낀다. 아울러 힘찬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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