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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로 뒤덮인 야쿠시마의 삼나무 숲
 이끼로 뒤덮인 야쿠시마의 삼나무 숲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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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에 이어 지난 5월 13~16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삼나무로 추정되는 '조몬스기'가 있는 야쿠시마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의 70주년을 기념하면서 회원들과 야쿠시마까지 조몬스기를 보러 갔다 왔습니다.

일본 여행도 쉬운 일이 아닌데, 후쿠오카 최남단 가고시마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이나 가야하는 야쿠시마를 두 번째로 다녀왔습니다. 가고시마에서 배를 타고 간 것은 아니고 후쿠오카 공항에서 하루 1번 있는 일본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야쿠시마까지 곧장 갔습니다. 시간을 아낄 수 있었던 대신 비용은 많이 들었지요.

올해는 제가 일하는 YMCA 창립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회원들과 야쿠시마로 여행을 겸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물론 야쿠시마라는 작은 섬을 세계에 알린 조몬스기를 보러 갔습니다. 이 나무에 일본 군국주의의 혼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고 추정 수령 7200년을 자랑하는 조몬스기가 아니었다면, 굳이 그 먼 남쪽 작은섬을 찾아가지는 않았겠지요.

야쿠시마까지 가는 교통편은 지난해보다 더 불편해졌습니다. 지난해에는 후쿠오카 공항에서 낮 12시에 출발하는 비행편이 있어서 아침에 한국을 출발하여 야쿠시마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오후 2시 20분으로 시간이 바뀌었더군요. 그나마 비행기 연착으로 30분쯤 늦게 출발하였습니다.

야쿠시마 항공편 운행 시간... 지난해보다 더 불편해져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삼나무 모종과 이끼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삼나무 모종과 이끼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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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까지 가는 데 꼬박 하루가 다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다녀오는 사람들에게 여간 불편하고 아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후 5시만 되면 상점들도 문을 닫기 시작하는 작은 섬이라 오후 4시쯤 도착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야쿠스기 자연관으로 달려 갔습니다만, 오후 5시 폐관시간에 쫓겨 고작 30분만에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가야 했답니다. 지난해처럼 오전에 후쿠오카에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면 훨씬 여유로운 일정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지난해에는 야쿠시마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셋째 날 아침 일찍 가고시마로 나와서 1박 2일 보냈습니다만, 이번엔 3박 4일 일정을 모두 야쿠시마에서만 보냈습니다. 덕분에 지난해에 못가봤던 기겐스기와 야쿠스기랜드 그리고 센비로 폭포를 비롯한 야쿠시마의 여러 폭포들과 바다 거북 산란광경까지 보고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역시 길고 긴 역사의 시간을 품고 살아가는 야쿠시마 삼나무들이 살고 있는 그 숲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쿠시마는 1년 365일 중에 366일 비가 내린다고 할 만큼 비가 많이 내리는 섬입니다. 이 섬의 산속 강우량은 연간 8000~1만㎜입니다. 1만㎜가 바다로 흘러가지 않고 그대로 고인다면 무려 10미터 높이가 되는 것이지요.

1년에 10미터씩 비가 오는 섬, 야쿠시마

야쿠시마 숲에서 자라는 어린 삼나무
 야쿠시마 숲에서 자라는 어린 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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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해 4월 2박 3일 동안 야쿠시마에 머무는 동안 단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구름도 없는 맑은 날이 사흘이나 이어졌던 것이지요. 그 때문에 야쿠스기 숲에서 경험하는 신비감은 다큐멘터리나 사진을 볼 때보다 덜 하였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사흘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그 때문인지 지난해에 비해 숲은 신비감이 훨씬 더 하였고 특히 이끼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이 가득 넘쳐 났습니다.

비 때문에 조몬스기까지 가는 길도 훨씬 멀고 힘이 들었습니다. 지난해에 비해 왕복 2시간은 더 걸렸습니다. 지난해엔 각종 안내 자료에 나온 시간보다 훨씬 빨리 조몬스기까지 다녀왔는데, 올해는 안내 자료에 나오는 평균 시간보다 1시간쯤 더 걸렸습니다. 아침 7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지난해에는 4시 20분에 산을 내려가는 막차를 탔는데, 올해는 5월부터 버스 시간이 늘어 난 덕분에 6시에 운행을 마치는 막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지난해에 산행을 잘한 면도 있지만 비가 오지 않아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끼로 뒤덮인 윌슨그루터기
 이끼로 뒤덮인 윌슨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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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조몬스기까지 가는 숲길을 걸으며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 이 숲의 진짜 주인은 조몬스기나 수령 1000년 이상의 야쿠스기들이 아니라 바로 '이끼'더라는 겁니다. 하루 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려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만, 대신 숲을 가득 메운 이끼들은 빗물을 잔뜩 머금고 생기가 넘쳐나더군요.

숲 가득한 이끼들을 바라보며 11시간을 걷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바로 주인이 그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야쿠시마는 바닷 속에 있는 화강암 바위들이 융기하면서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이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3000년이 더 지난 야쿠스기들이 살고 있는 것도 다른 곳에 비해 토양이 척박하여 빨리 자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그야말로 흙 한줌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섬이었을런지도 모릅니다.

이끼로 뒤덮인 삼나무 가지
 이끼로 뒤덮인 삼나무 가지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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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단한 화강암 바위에 처음 자라난 생명체는 거대한 삼나무가 아니라 어쩌면 작고 약한 '이끼'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이끼들이 마치 흙을 대신하여 다른 생명체의 씨앗을 받아들이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을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수경재배가 이루어진 셈인데, 그때 씨앗을 품고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 바로 이끼였을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 야쿠시마 삼나무를 비롯한 생명의 기원은 이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수만 년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끼'들은 생명의 근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야쿠시마, #조몬스기, #야쿠스기, #삼나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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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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