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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핵심은 올바른 질문을 할 줄 아는 것이다. - 존 사이먼

인간은 질문하는 순간부터 진정한 존재가 시작된다. 내가 왜 태어났는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의 종점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셀 수 없이 많은 질문을 하는 동안 인생의 허무 앞에서 미리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종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때로는 단 하나의 질문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한 순간의 선택이, 한 사람과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이 책은 평생을 철학자로 살아온 97세의 김형석 교수가 육필로 써 내려간 사색하며 살아온 고백록이다. 노스승이 인생의 후배들을 향해 애정어린 충고를 담아낸 담담한 글이다.

김형석 지음, 13,500원
▲ 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13,500원
ⓒ 덴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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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아 마음 편하게 서점을 찾아 좋아하는 책들을 골라 안고 집에 들어올 때 느끼는 행복한 설렘이 좋았다. 마치 사랑스런 고양이나 강아지를 새 식구로 맞이하는 것만큼. 온라인으로 구매할 때와 달리 정가로 구매하는 부담이 있지만 서가를 돌아다니며 직접 얼굴을 보고 고르는 즐거움은 할인가가 주는 행복을 능가한다.

아직도 왕성한 강연 활동을 하면서 2년 동안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작가의 아름다운 노정이 눈에 그려져서 감동을 안겨준다. 특히 이래라 저래라 하는 충고는 찾아볼 수 없다.

친근한 동네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를 염려하는 지극한 마음을 담아 조용히 걱정해주시는 진심이 행간마다 가득하다. 인생의 마지막 언덕을 가쁜 숨 몰아쉬면서도 뒤따라오는 자녀들과 후배들에게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는 온화함엔 따스함이 묻어난다.

젊은 날 그 분이 쓴 철학 에세이를 읽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필독서에 가까울 만큼 많이 팔린 책들을 가진 분이라서 철학자보다는 수필가로 더 알려져 있으니. 자신이 가르친 철학대로 인생을 살고 그 풍경을 가감 없이 그려낸 솔직함과 진실함으로 민낯을 드러내어도 좋은 그 분의 인생행로가 부럽다.

가르친 대로 살아야 하는 선생의 숙명을 감사하게 걸어갈 수 있는 어른을 먼발치에서 글로나마 만날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 온통 진흙탕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푯대를 놓친 터라 작가의 잔잔한 음성이 오히려 울림이 크다고 생각된다.

걱정하되 야단치지 않으며 많이 알되 잔소리가 아닌 대책을 살짝 보여주는 지혜를 담은 책이다. 내가 인생을 살아보니 이런 점이 아쉬웠노라고, 친구와 지인들의 아픈 이야기를 조심스러이 소개하면서도 그 속에는 눈물과 배려가 담겼다.

겸손과 온유함이 저변에 깔려 있어서 가슴 뭉글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속울음 울었을 철학자의 고뇌가 담담히 다가선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니 사랑이 있는 고생이 남는다"고 고백하며 죽을 때까지 그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잃어도 그보다 몇 배나 소중한 것을 찾아 지니게 될 것 같다는 고백은 이 책의 백미다.

결코 평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떻게 그렇게 결 고운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뻣뻣한 삶이 아니었는지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이야기가 넘친다. 이산의 아픔과 고통, 6.25 전쟁을 지나며 치른 고생, 가난 속에서 살아낸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으로도 충분하다.

행복에 대한 명쾌한 해석과 재산이나 결혼 문제, 황혼 이혼 등 민감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날카로운 지적보다 부드러운 필치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대안을 제시하여 민감한 사회 문제를 조용히 건드리는 품격은 깊은 산 속에서 만나는 백합꽃을 연상케 한다.

이렇듯 고매한 품격으로 100세를 바라보는 인생의 선배가 이처럼 아름답고 사려 깊은 문장으로 아프고 힘든 세상을 향해 고언에 가까운 고백록을 들고 찾아와 열대야에 지친 나를 청정한 계곡에 발을 담근 것처럼 가슴 시리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바라볼 어른으로 서 계셔서 감사하다. 아직도 할 일이 많아서, 세상이 아파서 더 해주고 싶은 일이 많다며 부지런히 일하는 그 모습은 어버이의 모습이다. 대접 받으려는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인생의 후배들에게 손잡이가 되고 싶어 하는 그 간절함이 행간마다 숨어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지금 우리에겐 위로해 줄 시대의 어른이 필요하다. 배가 고파서 슬픈 이보다 마음 아파서 저린 사람들이 더 많다. 딱 이 지점에 구급약 같은 책으로, 그것도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진짜 이야기로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이 길로 가면 더 행복하다고 손을 잡아준다. 이런 작가를 가진 우리는 행복하다. 바라볼 어른이 있는 가정과 사회는 건강하기 때문이다.

일자천금이 넘쳐나는 책이지만 그 중에 두고두고 음미하고 싶어서 일기장에 기록해 둔 것만 소개해 올리며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좋은 책을 권하는 기쁨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옆집과 나누고 싶은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방금 요리한 따끈한 것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은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작가의 육성을 얼른 소개해 올린다.

"우리 자신에게 묻자. 내가 대한민국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그러나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누가 베풀어주었는가, 라고."
"나에게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달성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일은 이웃과 사회에 대한 봉사다."
"인격의 수준만큼 재산을 갖는 것이 행복이다. 경제는 중산층,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이 사회에 기여한다."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성숙은 한계가 없다. 노력만 한다면 75세까지는 성장이 가능하다. 나와 내 친구들은 오래전부터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사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이 많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교닷컴, 전남교육소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덴스토리(Denstory)(2016)


태그:#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고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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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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