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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배치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광복절을 맞아 경북 성주 군민들은 815명 삭발식으로 사드 배치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제 3후보지로 경북 김천의 염속산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 주민들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애초 사드 배치의 명분과 당위성에 대한 대국민 이해와 설득 작업이 없었던 만큼, 이대로라면 어느 지역으로 가든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바깥 상황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를 막기 위해 경제 무역 보복까지도 감수할 태세다. 나라 안팎으로 갈등이 커지고 위기감은 높아지는데 박근혜 정부는 '타협 불가' 입장만을 고수하며 사드 배치를 강행할 태세다.

남북관계는 6.15 공동선언이 무색할 만큼 얼어붙었고 사드 배치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갈등이 겹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내년에 있을 대선에서의 화두는 크게 평화와 복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평화는 사드배치, 해군기지, 핵폐기물 문제 등의 쟁점과 상관관계를 가진다. 복지는 소득격차, 주거대란, 보육문제, 청년수당, 노령연금 등의 쟁점과 상관관계를 갖는다.  

분단체제와 복지국가

<평화복지국가> 표지
 <평화복지국가> 표지
ⓒ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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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적 위기와 맞물려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한국이 유럽과 같은 보편적 복지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어떤 경로를 밟아야 하는가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은 아직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맹목적으로 유럽을 쫓아가려는 시도는 답답하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형성과 발전은 그 나라의 정치와 역사, 문화적 수준과 강한 연관성을 갖는다.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한반도를 지배하는 분단체제는 언제라도 전쟁이 가능한 사실상의 전쟁 체제이며 반공이데올로기 지배 체제이고 항시적인 좌우 대립과 갈등이 내면화된 체제이다. 이것이 우리가 유럽과 같은 방식으로 복지국가를 달성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남북관계의 단절과 사드 배치를 통한 군사적 긴장 고조는 한반도의 분단전쟁체제를 강화하므로 복지국가 실현을 제약한다. 분단체제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규정성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말이다. 6.15 공동선언 이후 분단체제의 규정력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펼쳐졌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쳐오면서 한반도 평화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말았다.

분단체제의 규정력이 강화되면 노동조합 활동, 진보정당운동 등이 쉽게 '종북좌파'로 매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복지국가의 내적동력이 되어야 할 노동계급과 진보정당이 약화되면 응당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길도 험난할 수밖에 없다.

참여사회연구소가 펴낸 책 <평화복지국가>는 '분단체제'와 '복지국가'라는 동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주제가 상호통일적인 담론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분단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노동과 시민의 정치세력화에 기반을 둔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이 가능한가? 이 책이 제기하는 논점이다.

나는 분단체제 해체 없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진보도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나는 분단 체제 해체 없이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적 진보는 매우 험난한 길이 될 것이며, 성취 또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모순된 인식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과제는 분명하다. 한국 사회를 둘러싼 분단 체제의 규정성을 어떻게 최소화하면서 한국 사회가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열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분단이 끊임없이 복지 국가의 길을 가로막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복지국가의 길을 내디딤으로써 우리는 분단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규정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단 때문에 노동 계급이 취약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실현하는게 어렵다고 푸념하기 전에 분단 체제에서도, 취약한 노동계급이라는 조건 아래에서도 어떻게 보편적 복지국가의 길을 열 것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시민과 지식인이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다. (서문, 10쪽)


'분단전쟁체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지속해 온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김동춘 교수는 "반자본의 담론은 물론 노조 활동과 친북과 '종북 좌파'로 매도되는 남한 현실에서 '복지 동맹'의 형성은 쉽지 않다.

그래서 복지 동맹에 기초한 복지국가 형성은 전쟁 체제 극복과 반드시 결합돼야 한다"(42쪽)며 "더 근본적인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복지국가는 국가 행정의 투명성과 민주주의 보장, 사회 계급간 타협, 사회적 타협의 체제이며 사회 통합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무척 중요한데, 분단 준전쟁 체제에서는 그것이 어렵다"(43쪽)고 지적한다.

김 교수가 보기에 "분단 전쟁 체제에서 복지는 곧 성장을 통한 일자리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됐다. 그는 "국가의 안보 유지, 미국에서 수입한 성취주의와 경쟁 원리가 압도하게 돼 국민에게 '복지'는 권리로 인식되지 않았으며 복지 제도의 정치, 정책 연관성, 곧 민주화 이후의 복지 확충이 정치 세력 간의 각축, 시민 단체의 의제 제기와 정치 투쟁 과정에서 형성돼 온 것이라는 사실에 완전히 무지한 상태에 있다"(35쪽)고 분석했다.

한반도의 '평화복지국가'는 가능할까

어떤 복지국가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는 복지국가를 둘러싼 계급 관계,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절대적으로 좌우된다.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윤홍식 교수는 "분단 현실은 한국 복지국가 논쟁에서 왜 노동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분단 현실은 우리에게 과연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자본주의 근대 국가의 총화인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할 주체 형성과 정치적 연대가 가능한 것인지를 묻고 있다"며 "이런 질문은 남한 사회가 경이적인 경제 성장과 형식적 민주주의를 성취했으면서도 왜 서구 사회하고 다르게 시민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실현하지 못했는가를 묻는 것"(82쪽)이라고 했다.

한국 복지국가를 설명하는데 냉전 체제는 '좌파 정당의 존재, 계급 투쟁의 개념보다 상대적으로 그 설명력이 떨어지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분단은 한국 사회에서 좌파 정당의 존재와 계급 투쟁의 성격을 규정하던 실체다. 실제로 분단은 한국 사회에서 좌파 정당의 토대를 해체시키고, 계급 투쟁을 무력화시키는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됐다. (82쪽)


윤 교수는 "한국 복지국가는 복지국가를 뒷받침할 주체의 형성과 주체를 중심으로 한 계급 연대를 필요로 하며, 그 방식은 한국의 사회적 조건과 경제적 조건에 따라 상이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93쪽)이라고 설명한다. 윤 교수가 보기에 분단 체제는 이 지점에서 한국 복지국가의 전망에 규정력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분단 체제는 복지국가를 위한 주체 형성과 계급 간 연대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은 한국사회에 강한 규정력을 갖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모든 변화와 진보가 분단의 해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중략)...그러나 분단 때문에 만들어진 취약한 권력 자원과 국가의 정당성을 향한 불신은 한국이 북유럽 같은 보편적 복지국가가 되기 위한 중요한 정치 사회적 자원들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명확하다. 한국 사회가 북유럽 같은 복지국가로 전환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105쪽)


경제위기와 사회양극화 확대로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각종 정책들이 도입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잔여적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여론 형성에 의한 복지 정책의 부분적 확대는 정권 차원에서도 일정하게 가능하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국가 전략은 이를 실현한 주체 세력의 형성과 연대 없이는 불가능하다. 분단체제가 지배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평화담론과 복지담론이 만나고, 평화동맹과 복지동맹이 결합해야 할 이유다.

덧붙이는 글 | <평화복지국가> (참여사회연구소 지음 / 이매진 펴냄 / 2013. 12. / 15,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평화복지국가 - 분단과 전쟁을 넘어 새로운 복지국가를 상상하다

윤홍식 엮음, 참여사회연구소 기획, 이매진(2013)


태그:#보편적 복지, #분단체제, #평화복지국가,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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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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