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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동구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조차리(45)·김해주(13) 모녀가 211일째 주자로 나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바라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12일 오후 동구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조차리(45)·김해주(13) 모녀가 211일째 주자로 나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바라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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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서는 진짜 사람이 소녀상이 된다. 일본영사관 앞에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소녀상을 만들겠다는 시민들의 염원은 지난겨울부터 200일 넘게 이어오고 있다.

광복절을 앞둔 12일은 기자가 소녀상이 되기로 했다. 소녀상 시위를 하러 가겠다고 하자 회사 선배는 "네가 가면 총각상이냐"며 "이왕이면 더웠으면 좋겠다"는 악담을 건넸고, 이 말은 곧 실현됐다. 이틀째 폭염경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기자를 맞이한 김유란 부산겨레하나 활동가가 "하필 제일 더운 날에 오셨네요"라며 웃었다. 

오전 11시 일본 영사관의 육중한 철문 앞에 나지막한 나무 의자 두 개를 내려놓자 단출한  준비는 끝이 났다. 시위는 매일 점심 무렵 1~2시간 정도 진행한다. 의자에 앉아 피켓을 들었다. 영사관을 경비하는 경찰들이 익숙한 듯 주고받는 무전 소리가 들렸다.

"소녀상 관련 1인 시위 시작했습니다."

211일째 부산 일본영사관 소녀상 시위가 시작을 알렸다. 곧바로 밀려든 건 후회였다. 그늘 한 점 없는 대로변에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뙤약볕이 너무 따가웠다. 옷 속으로 누가 물이라도 뿌리는 것처럼 땀이 흘러내렸다. 머리카락 한 올부터 발바닥까지 온몸이 땀으로 울고 있는 기분이었다.

전날 밤부터 냉동실에 꽝꽝 얼려놓았던 얼음 물병도 옆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애정을 쏟았건만 한마디 상의 없이 녹아내린 물이 야속했다. 그나마 불어오는 바람이 반가웠지만 중요한 건 '그나마'였다는 거다.

더위를 잊게하는 '힘내라'는 한마디

12일 오후 동구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조차리(45)·김해주(13) 모녀가 211일째 주자로 나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바라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12일 오후 동구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조차리(45)·김해주(13) 모녀가 211일째 주자로 나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바라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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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외발 전동바이크를 타고 지나가던 한 남성이 기자 앞에서 잠시 멈칫하고는 피켓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묵례를 했다. 엉겁결에 따라 고개 숙였다. 신호대기 하는 차량 속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1000번 버스에 앉아있던 젊은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여성은 힘내라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 보였다. 더위에 굽혀졌던 허리에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할머니가 "아이고, 우리 아들들 고생하네"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기자와 영사관을 지키고 있는 의경들 모두 할머니에게는 '우리 아들들'이었나 보다. 올림픽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온다 해도 못 뛰어넘을 것 같은 일본영사관의 담벼락 아래로 젊은 의경들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생각보다 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다음 릴레이 주자에게 바통을 넘겼다. 조차리(45)씨는 초등학교 6학년인 딸 해주와 같이 의자에 앉았다. 조씨는 "아이가 먼저 위안부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해줘서 여기에 한번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씨가 "작년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 자체가 할머니에게 상처…"라고 말을 이어가자 가만히 듣고 있던 해주가 "아니, 할머니들을 무시한 거지"라고 끼어들었다. 해주는 기자에게 "학교에서는 이런 거 안 배워요"라고 했다. 왜냐고 묻자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선생님이 안 가르쳐주니까요."

부산 동구청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은 안 된다"

12일 오후 동구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조차리(45)·김해주(13) 모녀가 211일째 주자로 나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바라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12일 오후 동구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조차리(45)·김해주(13) 모녀가 211일째 주자로 나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바라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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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든 피켓에는 '10억엔과 맞바꾸려는 소녀상 철거 반대한다'는 문구와 함께 "동구청은 부산영사관 앞 소녀상 건립 보장하라'는 요구가 적혀있었다. 이 말처럼 담당 구청인 부산 동구청은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우겠다는 지역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동구청에 이유를 물었다. 동구청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영사관 앞이) 인도이기 때문에 도로법상 허가를 내줄 수 있는 근거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전국에 수많은 인도 위 조형물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궁금했다. 하다 못해 서울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도 인도에 있다. 구청 측은 "그건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동구청이 소녀상 건립 불가의 근거로 내민 건 도로법 시행령과 동구청 자체 조례였다. 하지만 법은 "도로관리청(동구청)이 도로구조의 안전과 교통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한 공작물·물건"은 설치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 결국 법보다는 의지의 문제였던 셈이다.

이런 식으로 의지가 강했을 때 생겨난 게 서울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이다. 질문이 이어지자 구청 관계자는 "(소녀상을) 지자체가 나서서 하기에는 예민한 부분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부산겨레하나 김유란 활동가는 "소녀상을 일본영사관 앞에 건립하려는 건 일본에 진정한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라며 "다른 지역의 사례와 법적 자문을 얻어 부산도 서울 일본대사관처럼 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울 방법을 찾아보겠다"라고 말했다.


태그:#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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