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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옆에서 천막을 치고 특조위 활동 정상화 촉구 단식 6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세월호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옆에서 천막을 치고 특조위 활동 정상화 촉구 단식 6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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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강남역을 걷다가 세월호와 관련한 서명을 받는 것을 보았다. 광화문 농성장을 벗어나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려고 하는구나, 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미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이 강제 종료된 상태. 그들의 급박함이 느껴졌다.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을 방해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안팎의 시도를 정치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없이 밀려난 이들은 사람이 많은 강남역까지 발걸음을 옮겨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는 그저 슬퍼하기만 하면 될 문제인가? 정치적인 접근은 왜 욕을 먹는가?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 앞에 우리가 풀어야 할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국정원과 세월호의 구체적인 관계는 무엇인가, 참사 당시 선원들이 승객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 것은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지시 때문이라는 2차 청문회 당시의 증언이 사실인가, 해경은 "승객이 배 안에 있다"는 교신 내용을 삭제하거나 교신자를 뒤바꾸는 등 녹취록을 조작했는가. 많은 질문들이 끈질긴 추적 보도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점을 풀어야 한다고 외치면 보수 언론과 일부 누리꾼은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며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6개월 뒤인 2014년 10월 7일 '173일의 검찰 수사 결과 사고원인과 구조 실책 모두 밝혀졌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기사 말미에는 '그동안 SNS를 통해 제기되던 의혹들에 대해 검찰이 전부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말을 집어넣기도 했다. 이제 모든 것이 밝혀졌고 루머도 사실무근이니 선동하지 말라는 뉘앙스다. 하지만 이후 세월호특조위와 <한겨레21>, <미디어오늘> 등은 청문회와 지속적인 보도를 통해 드러내야 할 진실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미 다 밝혀진 일'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보수언론들은 세월호와 관련한 정치적인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지난 6월 28일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경찰들이 물리력을 동원했는데, 이에 대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 쪽 관련 인사들의 자료를 요구한 것을 두고 "의원 배지 만능 회초리로 생각한다"며 비난하는 사설을 내보내기도 했다(<조선일보>, 2016년 7월 1일, '박주민 의원, 의원 배지를 '만능 회초리'로 생각하나').

세월호 투쟁 관련하여 활발하게 활동한 유족 중 한 명인 김영오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정치적이고 순수하지 않은 결정'으로 폄하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가 안산 단원구로 이사한 것에 대해선 '정치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이어졌다(사실 김영오씨가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또 문재인이 '(동조)단식을 중단하고 국회로 돌아가 달라'라는 김영오씨의 요청을 듣고 단식중단 후 국회로 복귀하자 "친노의 수장 문재인 위에 김영오가 있다는 말이 당 안팎에서 돌기 시작했다"라는 누군지도 모를 '관계자'의 입을 빌린 기사를 내보냈다(프리미엄 조선, 2014년 10월 22일, '유민 아빠' 김영오씨, 안산으로 이사했다는데…"정치하기 위해?"). 이외에도 세월호 선체의 온전한 인양과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에서는 시위대가 어떤 폭력을 휘둘렀는지에 대한 기사만 수없이 쏟아졌다.

사드를 성주만의 문제로 고립시키기

상경한 성주 군민들이 지난 7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사드 배치 철회 성주군민 결의대회'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사드 배치 결정을 규탄하고 있다.
▲ "나쁜 대통령, 나쁜 새누리, 나쁜 종편" 상경한 성주 군민들이 지난 7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사드 배치 철회 성주군민 결의대회'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사드 배치 결정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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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주에 배치가 확정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성주군민들은 아직도 정부의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언론은 성주의 사드 반대 시위에 '외부세력'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내보이며 '시위가 정치적으로 변질됐다'는 의중을 전했다. 

지난달 20일 <미디어오늘>의 보도를 통해 KBS가 대구총국의 반발에도 '성주 시위에 외부세력 개입'과 관련한 리포트 제작을 지역국에 지시하고 이를 관철한 사실이 밝혀졌다. 확인되지도 않은 '외부세력'이라는 존재의 개입을 보도하는 것이 타당한 보도가 아니라는 기자들의 반발에도 윗선에서 '보도지침'을 통해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보수언론도 이에 가세했다. 군수 "사드 반대하지만 외부 시위꾼 개입 용납 안 해"(중앙일보), 성주 사드저지투쟁委 위원장 "15일 폭력사태에 외부인 개입"(조선일보), 사드 투쟁위 '총리 감금 때 외지인 가세'(동아일보)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사드도 세월호 참사처럼 의문이 드는 지점이 많다. 사드의 전자파는 정말 안전한가, 실전에 사용된 적 없는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을 제대로 막아낼 수 있는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예상하고도 이에 대한 외교적인 대책을 세워 둔 바 있는가 등. 하지만 사드 배치의 당사자인 성주 군민들이 시위에 외부세력이 개입했느냐 마느냐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중요한 질문들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다. 이러한 보도는 사드에 대한 논쟁을 성주만의 일인 것처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이슈를 '외부세력'과 '정치적 변질'의 프레임으로 파고들어 아무것도 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이대생들의 승리 이후, 정치성 회복을 고민해야 할 때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졸업생과 재학생 100여 명이 지난 2일 오후 5시경부터 이화여대 정문부근에서 졸업증서를 학교측에 반납한다는 의미로 졸업증서 사본을 벽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졸업생과 재학생 100여 명이 지난 2일 오후 5시경부터 이화여대 정문부근에서 졸업증서를 학교측에 반납한다는 의미로 졸업증서 사본을 벽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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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화여대에서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사업과 관련한 학생들의 반발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당시에도 '외부세력 개입 거부'라는 지침에 논란이 일었다. 학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운동권'이라고 불리던 학생들의 농성장 출입을 제한하는가 하면, 외부세력과의 단절을 선언했다(관련 기사 : '운동권' 배제한 이대생들, 그들의 특이한 승리).

이대 투쟁 또한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부 언론을 통해 목소리가 왜곡됐다는 점(예를 들어 '기득권 지키기')에서 세월호, 성주의 사례와 겹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를 방어하고 대응하는 방식에서 나머지 두 케이스와는 조금 결이 다른 부분(외부세력 배격)이 존재한다. 이유가 뭘까.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들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특조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성주 역시 제대로 된 논의없이 진행된 사드 배치를 비난하며 정부와의 대화를 요구했다. 두 가지 사례의 주체들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너무나도 당연히 '정치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당신들은 변질되었다' 혹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다'라는 낙인찍기가 되려 난무했다.

그래서 이화여대 학내 투쟁에서의 외부세력 배격은 '정치적인 문제의 정치성을 거세시키려는 언론과 정부'가 존재하는 상황을 기반으로 한 행동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당연히 이번 이대 미래라이프 대학 논란은 이대만의 문제가 아니고 많은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부 주도의 대학구조개혁의 연장선이다. 이것을 이대 구성원들이 모를 리 없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타 대학 총학생회 이름으로 지지 선언과 연대를 밝힌 바, 이들을 배척하지 않고 함께 투쟁을 꾸려나가면 당연히 그 파급력은 엄청났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고 정치적인 연대가 당연히 필요한 사안이지만 '낙인에 대해 학습된 공포'가 있었을 것이다. '외부세력'과의 연대와 정치적 투쟁을 도모했을 때 제기될 비난에 대해 감수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재빠르게 내린 후에 차라리 이화여대 학생들만이 주체가 되는 것이 낫다는 계산을 한 것 아닐까.

'이대생들의 승리'에 대해 운동권과 외부세력을 배제하는 전략이 과연 유효했는지, 그리고 이후에 운동세력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보인다. 당연히 정치성을 거세하려는 시도가 난무한 상황에서는 운동권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운동권이 정치성이 거세된 투쟁에 어떻게 맞춰 생존할 것이냐가 아니라, 정치성을 회복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본다.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은 이후에도 있을 것이고, '외부세력 배제'와 '순수성 강조'가 능사가 아닐 테니 말이다.


태그:#세월호, #사드, #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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