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개인회생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모럴해저드라는 멍에를 뒤집어씌우는 금융권의 주장에 맞장구쳐야 할까?
 개인회생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모럴해저드라는 멍에를 뒤집어씌우는 금융권의 주장에 맞장구쳐야 할까?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개인회생제도와 관련하여 잊을만하면 기사화되는 말이 있다. 바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다. 채무자의 개인회생 인가는 필연적으로 채권자에게 손실을 끼치게 된다는 점에서 금융기관에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회생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모럴해저드라는 멍에를 뒤집어씌우는 금융권의 주장에 맞장구쳐야 할까?

올해 8월 3일과 5일 모 신문사에서 (무려 2부작으로) 1면에 실렸던 기사 중 개인회생제도가 채무자들에게 쉬운 빚 탕감의 기회를 제공하여 모럴해저드를 부추기고, 이로 인해 저축은행이나 대부업 등 금융권의 손실이 커진다는 내용이 있었다. 마치 대부업 광고문 같은 이 기사는 금융권의 손실이 결국 성실한 상환자들의 이자 부담을 증가시킨다는 결론을 내고 있었다.(금융권의 손실이 줄어든다면 성실한 상환자들의 이자부담은 과연 줄어들까?)

모럴해저드란 말은 원래 중고차 시장과 보험 시장에서 나온 개념으로 거래당사자 간 정보가 불투명하고 비대칭적인 경우 상대방의 향후 행동을 예측할 수 없거나 본인이 최선을 다한다 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별로 없을 때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제2금융권이 모럴해저드가 예측되는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실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화 한통으로 바로 대출이 되는 친절한 대출상품을 만들고 비싼 광고비를 지불하면서까지 저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주고자 노력하는 이유를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고금리 상품을 만들어 높은 이자 수입을 얻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존재하므로 우리 법률이 허용하는 한에서는 쉬운 대출 상품을 만들고 비싼 광고비를 지불하여 고금리의 이자사업을 하는 것을 금할 수는 없으나, 대출신청자의 상환 능력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대출을 실행 하였다면 채무자들을 '악성채무자'나 '얌체족'으로 만들 일은 없지 않았을까.

모럴헤저드를 외치는 금융권, 어려워진 개인회생
전년 대비 2016년도 개인회생 신청 건수
▲ 개인회생 신청건수 전년 대비 2016년도 개인회생 신청 건수
ⓒ 대법원

관련사진보기


최근 5년간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2014년 11만707건에서 2015년 10만96건으로 감소한 이후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 이유는 개인회생 요건이 이전보다 강화된 이유도 있겠지만, 법원이 브로커 단속 및 제도 악용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고 처벌 수위를 높인 것과 시기상 일맥상통 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개인회생 신청 건수가 줄어드는 주된 요인은 개인회생 요건의 강화 이외에 제도 악용자의 단속 및 처벌의 강화에 있으며, 이는 건전한 제도 운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연체기간 및 금액별 금융채무불이행자 현황
▲ 금융채무불이행자 현황 연체기간 및 금액별 금융채무불이행자 현황
ⓒ 한국신용정보원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악성채무자를 줄이기 위해 개인회생 요건을 더욱 강화하자는 금융권의 주장은 동의하기 힘들다. 이는 사회구성원으로 재진입 하고자 노력하는 장기연체자들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4월말 기준 금융채무를 연체해 한국신용정보원에 등록된 금융채무불이행자는 102만 명으로 연체 규모는 130조 원에 달한다.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액 장기 연체채권에 대한 채무조정과 소각, 그리고 소멸시효가 완성한 채권의 제3자 양도를 금지하는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대부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필자가 몸담은 주빌리 은행(통상의 은행은 아니다)의 주요 상담층은 저소득자이며, 필연적으로 장기 연체된 채무가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2금융권에서 흔히 말하는 악성채무자의 전형이다. 통상 장기연체자의 경우 채무가 수차례 매각되면서 본인의 채무가 어떤 금융기관에 매각됐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재무적 무력감에 빠져 채무상환을 포기하거나 심한 경우 경제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변곡점은 바로 제2금융권의 대출 이후인데 채무를 연체한 후 극심한 추심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진 경우도 많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합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개인회생, 개인파산이다. 채권사의 무한반복적인 매각행위와 소멸시효 갱신으로 인해 평생을 빚진 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장기연체자들. 국가의 법제도가 이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누군가에게 지옥이 될 수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욕망이다'라고 얘기한다. 개인의 욕망은 자신이 아닌 외부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제2금융권의 대출광고를 보며 선량한 채무자를 악성채무자로 만드는 것은 무분별한 대출 실행으로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욕망을 부추기는 금융권, 바로 그들 자신은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태그:#1234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