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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베를린 곳곳 공공 장소에서는 크고 작은 벼룩시장(Flohmarkt)이 열린다. 실생활에 필요한 중고 물건을 파는 곳도 있고, 젊은 디자이너의 제품을 파는 곳도 있고, 어디서나 팔 것 같은 유행하는 상품을 파는 곳도 있고, 벼룩시장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기념품만 파는 곳도 있다. 그럼에도 들르지 않는다면 괜히 아쉽게 느껴지는 곳이 벼룩시장이다.

베를린에는 일반 벼룩시장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벼룩시장이 있다. 주민들이 자기 주택 문을 열고, 입지 않던 옷장 속 옷과 커버린 아이들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놀이용품, 지하 창고 속 생활용품 등을 파는 중정 벼룩시장(Hinterhofflohmarkt)이 바로 그 행사이다.

중정 벼룩시장 행사 모습
 중정 벼룩시장 행사 모습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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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Hinterhof)은 작은 정원 혹은 유사한 형태로 사방이 건물에 둘러싸인 공간이다. 이는 유럽의 전통적인 공동주택 양식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차양과 환기 등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그 규모와 생김새는 다양하다.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중정은 거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공간이고, 공동 주택 거주민 만이 공유하는 공간이다. 즉, 이 행사를 위해 중정으로 들어오는 문을 열어도, 누군가의 집 안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중정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는 공적 영역인 거리에서 가장 사적인 집으로 들어가기 전 공간이다. 복도나 계단처럼 단순히 이동을 위해 지나치는 공간이 아니라, 적게는 십여명 많게는 수십여명이 거주하는 공동 주택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이다.

그래서 중정은 거주민의 특성에 따라 활발한 교류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쓰레기를 버리며 지나치는 복도나 다름 없는 평범한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2014년부터 시작한 중정 벼룩시장 행사는, 이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행사를 기다릴 정도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행사를 주최한 단체 폴리와 밥(Polly & Bob)은 2013년 폴커 짐즈(Volker Siems)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 사회적 기업으로,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고, 이웃간 행사를 도와주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 사회에 걸맞게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지만, 대부분 활동은 오프라인에서 새로운 이웃 공동체와 지역 활동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중정 벼룩시장 행사 모습
 중정 벼룩시장 행사 모습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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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 벼룩시장이 단순히 안쓰는 물건을 파는 상업적인 행사만은 아니다. 이 단체의 설립 배경처럼 공동주택 거주민 만을 위해 닫혀 있던 문을 주변 이웃을 향해 열게 만드는 행사다. 그리고 그를 통해 주변의 이웃을 만나고 서로 알게 되는 것이 또 다른 목적이다.

첫 해 행사에서 약 20여채의 주택이 문을 열었던 행사는 이제 100여채의 주택으로 늘어났다. 그만큼 행사 자체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서로 만날 수 있는 이웃이 늘어난 것이다. 이 단체가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프리드리히샤인(Friedrichshain) 지역이 가장 활발히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 밖에 거주민 공동 공간인 중정을 이용함으로서, 공공장소에서 행사를 운영할 때 생기는 법적 제약 등을 거주민 동의 만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기존 벼룩시장의 경쟁이 심화되어, 자리를 선점하는 게 어려워졌지만 중정 벼룩시장은 자신이 사는 공동주택 공간 내에서 하기에 자리 경쟁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게다가 판매처가 집이고, 구매처도 이웃집이기 때문에, 크고 무거운 물건을 판매하거나 구매하기도 용이하다.

계단실 카페 행사 모습
 계단실 카페 행사 모습
ⓒ Auf halber Trep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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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폴리와 밥'이 추진하는 행사는 중정 벼룩시장 뿐만이 아니다. 2013년 이 기업을 베를린 내에서 유명하게 만든 노래하는 발코니의 밤(Nacht der singenden Balkone) 행사에선 40개의 주택 발코니에서 이웃들이 부르고 연주하는 다양한 종류의 노래를 듣기 위해 1400여명이 몰렸다.

하지만 2014년 두번째 노래하는 발코니의 밤 행사를 준비할 때, 행사 신고를 위해 수많은 서류 과정을 거쳤음에도, 시 관리 기관의 반대로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웃들은 프리드리히샤인의 침묵하는 발코니(Die schweigenden Balkone von Friedrichshain)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노래하는 발코니 행사가 취소된 이후엔 행사 규모를 줄여서 노래하는 거실(Singing Wohnzimmers)이라는 소규모 행사를 진행했고, 공동주택에 함께 사는 이웃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며 행사를 이어나갔다. 그 외에도 계단실에 옹기종기 앉아서 커피, 차 그리고 다과를 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계단실 카페(TreppenhausCafés) 행사도 이 기업이 추진한 특색있는 행사다.

이처럼 중정, 계단실과 같이 오래 머무르는 것이 어색하고, 지나치는 것에 익숙했던 공간들을 다양한 행사를 통해 활용하며, 이웃들이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있다.

이는 최근 전세계에서 유행하는 포켓몬 고(Pokemon Go)가 사람들을 평소에는 잘 가지 않던 거리와 공공장소로 이끌며,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 동시에 모르는 이웃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 것과 유사하다. 모르고 지내던 이웃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베를린에서의 성공적인 중정 벼룩시장 행사 이후에, 베를린 뿐만 아니라 독일 주요 도시에서도 중정 벼룩시장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번 10월 9일에는 독일 전역에서 동시에 중정 벼룩시장 행사가 진행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남PRIDE상품에 기고된 글이다.



태그:#독일, #베를린, #중정, #벼룩시장,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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