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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23일) 친구들과 함께 파주시가 주최하고, 건축 및 고고학 연구 및 답사를 많이 하는 A&A문화연구소, 역사문화유산보존활동을 주로 하는 NGO단체인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공동으로 주관한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의주대로 답사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파주와 한양을 잇는 옛길을 따라 걸으면서 의주대로 주변에 있는 역사문화유산을 살피고 공부하는 행사였다.

아침 일찍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했고, 일행이 직행한 곳은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남한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려 행궁 유적인 '혜음원지(惠蔭院址)'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이라 흐린 날씨라 생각보다 시원하고 좋았다. 구름은 많았고 비는 오지 않았다. 행사 종료 무렵에 비가 조금 내렸다.

파주시
▲ 파주 혜음원지 파주시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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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음원은 고려시대 현재의 서울이었던 남경과 수도 송도(개성) 사이를 왕래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1122년(고려 예종 17)에 건립된 국립숙박시설이다. 국왕의 행차를 위한 시설로 행궁도 축조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발굴된 구역은 동서남북이 각각 156m이며 11단의 경내에는 원지, 행궁지, 절터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36개의 건물터, 연못터, 배수로, 후원지 등의 유구가 발굴되었고 금동여래상, 기와, 자기,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려 전기 건축사 및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파주 용미리와 고양시 고양동 사이에 '혜음령(惠蔭嶺)'이라 불리는 고개가 있는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주변에서 '혜음원'이라고 새겨진 암막새가 발견되었다. '동문선'에 수록된 김부식의 '혜음사신창기(惠陰寺新創記)'에 "절에 불당과 유숙하는 건물부터 주방, 창고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련되었다. 지금 임금께서 즉위하시어 절 이름을 혜음사라고 내리셨다"라고 되어있다. 

혜음사를 창건한 사람은 하급관리인 이소천과 승려들이라고 전한다. 이소천은 혜음령을 순시한 다음, 혜음령에 원을 세워 여행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민간의 부담을 덜기위해 승려들을 동원할 것을 제안했다.

돌단과 돌계단만 남아 있다
▲ 파주 혜음원지 돌단과 돌계단만 남아 있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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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혜관스님 등 100여 명의 승려가 힘을 합하여 혜음사를 짓게 되었다. 당시 혜음사는 사찰이면서 여행자에게 숙박을 제공하던 역원이기도 했다. 고려 사찰은 보통 기도와 수행, 농사, 수공예공장, 여관, 고리대금업까지 하던 곳이 많았다. 혜음원은 조선 초기까지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2년 경기도 기념물 제181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사적 제464호로 변경되었다.

나는 현재는 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혜음원지를 천천히 걸어보았다. 규모가 큰 것에 놀랐지만, 이제는 돌계단과 주춧돌, 잡풀과 들꽃이 만발한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송도에 살고 있던 우리 조상들이 임진나루를 건너, 이곳 혜음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고양 벽제원에서 잠시 쉬다가 남경으로 갔을 것을 상상하니, 나도 이곳에서 터를 잡고 하루 정도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주시
▲ 혜음원지 야생화 파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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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
▲ 혜음원지 야생화 파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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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고 텅 빈 행궁터에서 고려의 기상과 조상의 숨결을 잠시 느끼면서 나는 이곳에서 수백 년 동안 피어온 들풀과 야생화에 감동을 하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임은 갔지만 나는 아직도 임을 잊지 못하네! 슬픈 고려 역사의 현장을 뒤로 하고 인근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長芝山)에 있는 '용암사(龍巖寺)'로 갔다.

용암사는 작은 사찰이지만, 석불입상(쌍석불)의 조성 배경과 절의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하고 있어 석불이 만들어진 11세기를 창건 연대로 잡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선종(宣宗:1083~1094) 임금이 후사가 없어 고민하던 중, 하루는 후궁인 원신궁주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났다.

대웅전 앞 석등 2개는 박정희가 세운 것이다
▲ 용암사 대웅전 앞 석등 2개는 박정희가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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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파주 장지산에 산다. 식량이 떨어져 곤란하니 이곳에 있는 두 바위에 불상을 새기라. 그러면 소원을 들어주리라" 하였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그곳에 실제로 큰 바위가 있어 서둘러 불상을 만들게 하였다.

그때 꿈에 보았던 두 도승이 다시 나타나 왼쪽 바위는 미륵불로, 오른쪽 바위는 미륵보살상으로 조성할 것을 지시하며 "모든 중생이 와서 공양하며 기도하면, 아이를 바라는 사람은 득남을 하고 병이 있는 사람은 낫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불상이 완성되고 절을 짓고 나자 원신궁주에게 태기가 있어 한산후물(漢山侯勿)을 낳았다고 한다.

마애이불입상
▲ 용암사 마애이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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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뒤의 마애불은 쌍미륵이라고도 한다. 바위 사이에 세로로 생긴 자연적인 틈을 이용해 두 개의 불상으로 나누어 새겨져 있는데, 전체 높이가 불두까지 합쳐 19.85m에 이른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마애불을 여러 번 보았지만, 바위를 이용하여 불신을 만들고, 나머지 목, 머리, 갓을 전부 따로 만들어 올린 것이 너무나 특이했다.

거대한 불상들은 신체의 비율도 맞지 않고 기형으로 생겼으며, 둥근 갓을 쓴 불상은 자연스런 미소를 나타내 보이고 있으며 목은 원통형으로 삼도(三道)는 없고 통견(通肩)의 납의(衲衣)는 가운 모양으로 몸을 싸고 있다. 

양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 연화모양을 하고 있다. 사각형 갓을 쓴 불상은 합장한 인상이 다를 뿐 각부의 조각수법은 왼쪽 불상과 거의 같고, 원립(둥근 갓)을 쓴 불상은 남자이며 방립(모난 갓)을 쓴 불상은 여자라고 한다. 예전에는 고려 때 조성된 석불로 알려졌으나, 불상에 새겨진 글을 토대로 조선 성종 때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마애불의 뒷면, 앞의 풍광이 좋다
▲ 용암사 마애불의 뒷면, 앞의 풍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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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 옆에 이승만이 세운 탑과 동자상이 보인다
▲ 용암사 삼성각 옆에 이승만이 세운 탑과 동자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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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서 사진을 찍기에는 불편하기는 했지만, 아래에서 존경스러운 눈으로 올려보면서 사진을 몇 장 찍었고, 뒤편으로 가서 뒷면의 모습을 찍었다. 흐리고 바람이 좋은 날이라 뒤편에서 잠시 시원을 바람을 맞았다. 전망이 참 좋은 곳이다. 지금은 앞쪽에 집들이 많이 있어 그렇지만, 예전에는 논과 밭이 장관이었을 것 같다. 

이렇게 시원한 높은 곳에 정자가 없는 것을 보면 이승만도 정자보다는 동자상 같은 것을 좋아했나 보다. 한때 석불 왼쪽 어깨 위쪽에 이승만이 세웠다는 동자상과 뒤편에 칠층석탑이 있었는데 1987년 철거했다가 최근에 삼성각 옆으로 옮겨 놓았다. 아울러 대웅전 앞에서는 박정희가 세운 석등이 두 개 있다.

김치찌개로 점심
▲ 용암사 앞에서 점심 김치찌개로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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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사 앞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을 맛나게 먹었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더위에 식사도 하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다. 이어 광탄면 분수리에 있는 고려중기 문신인 '윤관장군묘(尹瓘將軍墓)'로 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거의 왕릉급의 거대한 무덤이다. 전후좌우 모두 보기에 좋고, 땅이나 지기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느끼기에도 명당으로 보인다.

사적 제323호라고 한다. 이 묘소는 1111년(예종 6)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500여 년이 지난 임진왜란 전후까지 후손들에게 그 소재가 확인되지 않다가 1764년(영조 40) 윤관의 비석파편이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영조가 봉분을 새로 조성하고 제를 올리게 하여 윤관의 묘소임을 공인하게 되었다.

파주시
▲ 윤관장군 묘 파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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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6년 묘 앞에 현존하는 묘비를 세워 묘소를 찾게 된 경위를 기록하였다. 묘역시설로는 여충사(麗忠祠), 묘비, 분수재(汾水齋), 교자총비(橋子塚碑) 등이 있다. 이 묘소를 사적으로 지정한 것은 묘소의 고고학적인 측면보다는 윤관이 견지하고 실행하였던 북방강토 수호 및 개척의 사실을 널리 알리고, 계승함에 있다.


태그:#파주시, #A&A문화연구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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