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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중순의 토요일 오전, 시계는 오전 10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여행자에게 요일의 개념은 무색하다. 월요일부터 일요일이 모두 휴일이기 때문이다.하지만 한 달간 런던에 사는 우리는 여행자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패턴을 따르고 있었다. 오전 8~9시만 되면 눈이 떠지던 평일과는 달리 토요일만되면 신기하게도 늦잠을 자곤 했다. 포토벨로 마켓(Portobello Market)에 가던 날도 적당히 주말의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날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아이를 데리고 마켓에 가는 것은 힘들다. 더욱이 그 아이의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사람이 북적 이는 마켓은 엄마에겐 힘든 장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엄마들에게 그 도시의 속살을 볼 수 있는 마켓은 포기할 수 없는 여행 장소이다.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중에서 각종 진귀한 골동품을 구경할 수 있는 포토벨로 주말 마켓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이곳은 영화 <노팅힐>로 유명세를 치른 런던에서 가장 큰 앤티크(antique) 시장이다. 평일에도 시장이 열리지만 주말에만 열리는 앤티크 시장 때문에 주말 관광객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서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이 가장 유명하듯이, 런던의 마켓 중에서도 포토벨로 마켓이 가장 유명하다.

대중에게 알려진다는 것... 실제의 가치가 그 명성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장소나 그림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마치 지성인이라면 이 정도 지식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암묵적인 의무감일지도 모른다.

기대하던 포토벨로 마켓에 가던 날

포토벨로 마켓으로 가는 길. 아기자기한 멋이 살아 있는 동네라 마켓으로 가는 길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포토벨로 마켓으로 가는 길. 아기자기한 멋이 살아 있는 동네라 마켓으로 가는 길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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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을 먹고 아이와 함께 포토벨로 마켓으로 향했다. 마켓은 노팅힐 게이트 역(Notthing HillGate)에서 하차하면 되는데 나가는 출구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토요일 오전에 이곳에 오는 70~80% 사람들은 모두 포토벨로 마켓으로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전철에서 내려 군중 속에 파묻혀 그들과 함께 천천히 길을 걸어갔다. 거대한 무리가 한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개미 무리가 큰 먹잇감을 집으로 옮기기 위해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켓으로 가는 길은 꽤 즐거웠다. 일단 그날 날씨가 참 좋았고 공기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마켓으로 향하는 골목에는 파스텔톤의 나지막한 조지안, 빅토리안 양식의 주택들도 눈에 띄었다. 집의 창문이나 벽에 꽃으로 장식해 놓은 집들은 어김없이 관광객들의 포토존이 되고 있었다.

관광객으로 포토벨로 마켓으로 가는 길은 즐겁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검색창에 포토벨로 마켓을 검색했을 때 언제나 등장하는 나의 집, 익명의 여행자의 카메라나 앨범 속에 자신의 집이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내 프라이버시가 보장받지 못하는 동네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전철역에서 내려 주변의 경치와 예쁜 집들, 상점을 따라 약 10분을 걸어 내려가면 포토벨로 로드(Portobello Road)가 나타난다. 본격적인 포토벨로 마켓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아마 12시 전후였을 것이다. 어찌 보면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대였는지도 모른다. 부디 그랬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내가 걷는 게 걷는 게 아냐

포토벨로 마켓이 시작되는 입구. 토요일 점심 무렵엔 사람이 정말 많았다.
 포토벨로 마켓이 시작되는 입구. 토요일 점심 무렵엔 사람이 정말 많았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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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풍경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12월 31일 명동 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떠밀려 다니게 되는 길... 몸이 붕 떠서 걷는 느낌으로 걸었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유모차를 밀고 온 나는 주변 사람들의 길을 두 배 이상 차지하는 민폐자가 되어버렸다.

아이가 마켓에 얼마나 관심을 보일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곳의 분위기는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유모차에 앉은 아들은 마켓이 아닌, 낮은 눈높이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수백 개의 엉덩이를 열심히 구경하고 다녔을 거다.

포토벨로 로드는 입구에서 끝까지의 거리가 약 1.1마일, 성인 걸음걸이로 20~25분 소요된다. 천천히 물건을 구경하면서 걷는다면 소요시간은 달라지겠지만 마켓의 절대적인 규모는 꽤 큰 편이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오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켓 끝까지 가볼 생각이었지만 그 계획은 결국 무산되었다. 일단 길을 따라 진열된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고 사람이 너무 많았다. 혼자 왔다면 3시간도 거뜬히 보냈을 곳이지만 아이랑 오니 그게 불가능했다. 엄마의 욕심을 채우자고 수많은 인파를 감당하기에 아이는 너무 어렸다.

앤티크 찻잔을 파는 가게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다 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장난감 가게로 눈을 돌렸다. 어른들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앤티크 장난감가게에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았다. 복잡한 시장을 잘 참고 다녀준 아들을 위해 클래식 자동차를 하나 선물했다. 가게마다 가격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1개당 4파운드 선, 3개에 10파운드 정도 한다. 잘만 흥정하면 더 싸게 물건을 살 수도 있다.

포토벨로 마켓이 과거의 색깔을 잃어버려 요즘은 관광객 위주의 마켓으로 변모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겐 분명히 볼거리가 풍부한 장소이다. 앤티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은 가볼 만하다.

단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나 여행자들은 소매치기를 조심하길 바란다. 사람이 너무 많고 계속 낯선 사람들과 부딪히기 때문에 소매치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켓이기도 하다고.

포토벨로 마켓의 앤티크 시장. 다양한 골동품들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되는 곳.
 포토벨로 마켓의 앤티크 시장. 다양한 골동품들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되는 곳.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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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포토벨로 마켓 정보
* 웹사이트: www. portobelloroad.co.kr
* 앤티크 마켓은 토요일에 열리는 것이 가장 크며, 관광객을 피해 양질의 앤티크 제품을 쇼핑하려면 토요일 오전 9시 이전에 방문해야 한다.

그 밖에 런던에서 가 볼만한 마켓으로는
캠든 마켓(www. camdenmarket.com)
버러우 마켓(www.boroughmarket.org.uk)
코벤트 가든 안의 애플 마켓, 콜로나드 마켓, 쥬빌리 마켓 등이 있다.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재편집하였습니다.



태그:#포토벨로마켓, #노팅힐, #앤티크시장, #아이와함께런던, #런던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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