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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인터넷 브라우저에 다른 창 하나를 띄워보길 권한다. 다음 지도도 좋고, 네이버 지도도 좋다. 국내 포털 사이트의 지도를 켜서 들어가 보자. 그리고 검색해 보자. "청와대."

무엇이 뜨는가? 한국 포털 사이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청와대는 검색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이라는 주소를 검색해 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청와대의 위치가 검색되지만, 이 위치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된다. 위성 지도로 확인해 봐도 좋다. 해당 위치는 산만 있을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가 게임 '포켓몬 고' 열풍에 휩싸였다. 증강 현실 기반의 게임인 포켓몬 고는 미국 발매 며칠 만에 사회 문제로 떠오를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무너져가던 일본 기업 닌텐도 사의 주식도 껑충 뛰어올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포켓몬 고를 아직까지 즐길 수 없다.

이유가 있다. 포켓몬 고는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구글 지도가 제대로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 구글은 SK에게 지도 정보를 빌려와 한국에서 서비스해 주는 것이 전부이며, 그마저도 대단히 화질이 낮고 부정확하다. 물론 뉴스1 보도에 따르면 관련 전문가는 "포켓몬 고가 정교한 위치 정보를 필요로 하는 게임이 아니고 GPS 기능으로 충분히 실행 가능한 게임이라 구글 지도 반출 문제를 연결짓는 건 무리"라고 밝혔지만, 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부분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일정 조건 만족해야 지도 국외 반출 허용

포켓몬고 플레이모습. 맨 오른쪽 사진은 테스트판에서 등장한 포켓몬의 모습.
 포켓몬고 플레이모습. 맨 오른쪽 사진은 테스트판에서 등장한 포켓몬의 모습.
ⓒ 나이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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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의 부진에도 물론 이유는 있다. 정부 정책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외에 지도 정보를 반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군사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다. 구글 지도는 현재 한국에 법인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외국 법인에 지도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논지다.

물론 정부라고 규제 개혁을 시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지난 2014년 6월, 정부는 '측량-수로조사 및 지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지도를 국외로 반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조건이란, "국토교통부 장관이 미래창조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국정원장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국외 반출을 결정(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제16조 2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넘길 수 있는 해외 법인은 많을 것 같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안보'라는 중요한 요소가 끼어들고 있기는 하다. 한국 정부는 군사정보를 가린 상태에서 지도정보를 반출하는 것만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단 대한민국은 현재 공식적으로 전쟁 중에 있으며,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군부대의 위치 등을 지워달라는 게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이것만 수용하면 지도정보 반출을 승인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정부는 최종적으로 국가 안전보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며, 군부대 위치 등의 기밀 정보를 함부로 누설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의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도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국내 업체들도 이러한 정부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가 국내 포털 지도 사이트에 '청와대'를 검색했을 때 이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이유다.

구글 행동이 꼼수? 구시대적 제도가 문제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자. 대체 청와대의 위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정부는 도로명주소를 지정하면서 청와대에 "청와대로 1"이라는 명시적인 주소를 제공했다. 그런데 우리는 청와대를 지도에서 찾을 수 없다. 청와대야 상징적인 기관이니까 안다고 하지만, 다른 군부대 위치는 모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구글 어스를 설치해서 사용해 보자. 국내 포털에서 볼 수 없었던 각종 위성 사진을, 고화질로, 어차피 다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청와대도 보인다. 다른 군부대도 다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전쟁 중인 상황이라도, 사실 대부분의 국가에선 지도정보를 구글 등에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장 미국만 찾아봐도 백악관이니 펜타곤이니 다 보인다. 남북 대치가 특별한 상황이라지만, 북한의 금수산태양궁전도 구글 지도로 전부 확인할 수 있다. 당연히 북한에서도 포켓몬 고를 플레이할 수 있다.

물론 일부에선 구글의 행동이 '꼼수'라는 지적도 한다. 구글이 국내에 지도 서버를 설치하면 해결할 수 있는데, 세금을 문제로 이를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도정보의 '해외 반출'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므로, 당연히 지도 서버를 국내에 설치한다면 얼마든지 지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구글은 국내에 지도 서버는 물론, 일반 서버도 두지 않고 있다. 국내법상 서버가 해외에 있으면 법인세를 징수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구글은 한국 내에서 연간 1조 원 넘는 매출을 올리면서도 한국에는 법인세를 거의 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업에 대해 제대로 된 규제를 시행하지 않는 구시대적 제도를 탓할 문제지, 구글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구글은 기업이고, 기업은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을 쫓아가기 마련이다. 그 방향을 소비자와 국민 전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돌리는 것은 정부 규제의 몫이다. 정부의 존재 목적이 바로 그것 아닌가.

인터넷의 갈라파고스 대한민국

속초시는 때 아닌 특수를 맞고 있습니다. 13일, 속초시청 공식 SNS에서는 "속초가 어제 뉴스에도 나왔던 '주머니괴물달려'(포켓몬고) 게임의 태초 성지라고 소개됐다"며 속초의 무료 와이파이 지역을 소개하는 지도가 올라왔습니다.
 속초시는 때 아닌 특수를 맞고 있습니다. 13일, 속초시청 공식 SNS에서는 "속초가 어제 뉴스에도 나왔던 '주머니괴물달려'(포켓몬고) 게임의 태초 성지라고 소개됐다"며 속초의 무료 와이파이 지역을 소개하는 지도가 올라왔습니다.
ⓒ 속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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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포켓몬 고라는 게임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외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구글 지도 혹은 애플 지도를 사용한다. 해외에서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구글 지도를 이용해서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없다면, 그래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데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대로 한국에도 손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것이 꼭 구글 지도만의 이야기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외에 비해 한국은 지나치게 불편한 인터넷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정부와 각종 기업체들이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공인인증서 문제는 어떤가. 공인인증서 하나 때문에 몇 시간을 씨름해 본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보안 취약 등으로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포기한 ActiveX를 여전히 사용하는 국가는 한국 뿐이다.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겠다며 만든 '아이핀'과 '마이핀'은 어떤가.

결국 핵심은 아무 것도 버리지 못했다. Windows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아닌 크롬을 사용하기만 해도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대폭 줄어든다. Windows가 아니라 MacOS나 Linux를 사용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갈라파고스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표준을 거부하고 새로운 표준을 만들려고 하다가, 한 국가 혹은 집단이 전 세계적인 진화에 뒤쳐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지금의 한국이 정확히 그렇다. 인터넷의 갈라파고스 한국이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말하며 출범했다. 모두들 '창조경제'의 실체가 무엇이냐며 비웃었다. 그 비웃음은 정확했다. 결국 창조경제는 아무런 실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규제 혁파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해체된 규제는 하나도 없다. 여전히 구글 지도는 한국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은행 사이트는 로그인할 때마다 몇 십 분 씩 공인인증서니 보안 프로그램이니 하며 불편을 겪어야 한다.

결국 나온 사업은 한국형 유튜브니, 한국형 안드로이드니 하는 사업이었다. 대부분의 사업은 기업들의 먹튀로 이어지거나, 아무도 쓰지 않는 황폐화된 사이트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들어간 돈이 모두 국민의 세금이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발전에 발전 거듭하는 인터넷,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포켓몬 고가 서비스되지 않지만, 각종 뉴스는 포켓몬 고가 유발하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만 보도를 하고 있다. 증강 현실, 혹은 가상 현실이라는 세계가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이런 상황은 심각해질 것이다. 제대로 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 만날 장관들끼리 모여서 규제가 어떻고 산업이 어떻다고 탁상공론만 해서 무얼 하겠나. 결국 한국 사람들은 이전과 똑같은, 혹은 더 나쁜 수준의 인터넷 환경을 경험하고 있다. 전 세계적 변화에 오직 한국만이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과 게임이 중독을 유발하고,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는 사회 인식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은 더 이상 누군가를 중독시키는 독성 물질이 아니다. 우리 곁에 실재하는, 실재할 수밖에 없는 일상이다.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현실이다. 가장 많은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는 그릇이며, 가장 넓은 활용성을 갖춘 산업이다.

한국이 오직 과거의 향수로만 움직이는 국가가 아니라면, 새로운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인터넷의 갈라파고스'를 넘어 '현실의 갈라파고스'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구글 지도 서비스의 구획 문제 때문에, 한국의 속초에서는 포켓몬 고를 플레이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과 인접해 있는 덕분이다. 그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SNS상에서는 속초로 향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가 혁신과 개혁 없이 구시대적 규제로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인터넷 산업은 어쨌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다음에 사람들이 향하는 곳은 속초가 아니라 이 나라 밖일지도 모른다.

* 관련기사 : 구글의 지도 국외 반출 요구에 포털·네비 업체 "역차별" 반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비더슈탄트, 세상을 읽다>와 팀블로그 <이승로그>에 게재됩니다. 딴지일보 독투불패 게시판에도 올라가며, <이승로그>에 올라간 글은 <직썰>에 중복 게재될 수도 있습니다.



태그:#포켓몬고, #창조경제, #규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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