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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커뮤니티에서 공개된 단톡방 고발문입니다.
 서울대 커뮤니티에서 공개된 단톡방 고발문입니다.
ⓒ 김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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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원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소속의 일부 남학생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 (아래 단톡방)에서 대다수의 동기 여학생들을 향한 지속적인 언어 성폭력이 있었다고 한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발언이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미화하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동기 여학우들을 향한 외모평가가 있었다고 한다. 입장문에서 인권위원회는 "대다수 여학우들이 오직 성별에 근거해 성행위의 대상으로만 취급받은 것에 대해 분노를 표한다"며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적 대상화, 물상화, 신체 희화화는 명백한 성폭력이며, 피해 여학생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행위이다"라고 했다.

사실 언론에 공개된 학내 단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은 이번만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는 서울지역 한 대학에서 새내기 시절 같은 강의를 듣던 남학우 8명으로 이루어진 단톡방에서 1년여 남짓 여학우를 대상으로 한 언어 성폭력이 있었음이 내부고발을 통해 알려진 적이 있다.

또한 다른 대학에서는 학과 소모임 단톡방에서 같은 학과 여학우를 대상으로 한 음담패설이 있었음이 익명의 기고글을 통해 폭로되었다. 이런 케이스가 보통 익명의 인물로부터 폭로되지 않으면 공개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 수면위로 떠오르지만 않았을 뿐 학내 언어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걸 추측해 볼 수 있다.

가해자 단죄로 그쳐선 안 된다

이렇게 특정 대학의 언어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누리꾼들은 분노를 표출한다. 당연히 이 문제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화가 날 일은 맞는데, 문제는 분노표출의 대상이 성폭력 가해자 특정인에게만 그친다는 점이다.

과연 언어 성폭력에 가담한 가해자들이 특정 대학을 다녀서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인가? 아니면 특정 전공이라서? 결코 아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유명하지 않은 대학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역시 좋은 대학이 아니면 저런 짓을 한다'라고 말하고, 반대로 가해자가 유명대 학생일 경우 '00대 학생도 별 수 없네'라고 말하곤 한다.

결국 이 문제는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언어적인 성적 폭력을 저질렀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가해자 남성은 특정한 개인이 아닌,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남성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말을 하면 많은 남성들이 불만을 토로한다.

"요즘은 뭐만 하면 성폭력 혹은 성추행이래"
"특정 집단의 성추행/성폭력 기준을 사회 전반의 기준으로 강요하면 안되는 거 아니냐"

그러나 성추행, 더 나아가서 성폭력은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경험하는 학대, 강제, 완력의 모든 형태를 포괄하는 일반적인 용어다. ('젠더, 섹슈얼리티, 폭력 – 성폭력 개념사를 통해 본 여성인권의 성정치학', 신상숙, 2008) 따라서 주관적이더라도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받는 경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단순히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성폭력인 것이 아니라. 

여성을 일방적으로 성적 대상화를 시키거나 유희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결코 그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단톡방에서 여성들을 품평하고, 성행위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모든 언어들은 단톡방 밖에서도 남성들의 언어로 통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톡방도 아니고, 그 학교도 아니고, 그 학생의 전공도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학내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가 될 때마다 많은 이들은 피해자들이 겪은 자극적인 서사에만 관심을 가진다. 실제로 이번에도 <경향신문>에 보도된 피해 여학생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가해자 중 한 명이 동기 여학생에게 카톡방에서 오고가던 내용을 보여주며 '너희가 보면 어떻게 할 건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피해 여학우가 경험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이고 공론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사례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언론들이 마치 이 문제의 본질인 것 마냥, 혹은 가해자 남학생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것 마냥 보도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특정 인물의 행동을 필요이상으로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당사자가 겪은 트라우마나 고통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2차 가해의 소지가 있다. 뿐만 아니라 특정 남학생의 개인적인 문제로 물타기할 수 있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것

최근 고려대에서 발생한 단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이 큰 논란을 빚고있다
 최근 고려대에서 발생한 단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이 큰 논란을 빚고있다
ⓒ 연합뉴스tv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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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모 대학 대나무숲(익명의 글을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여러 대학에서 드러난 '단톡방 언어 성폭력'에 대해  '남성들끼리는 원래 저런 말들이 아무 무게감 없이 가볍게 던진다, 남자들끼리는 다 하는 말이다'라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정말 '아무 말 대잔치' 그 자체다.

결국 가해자들을 일방적으로 욕하는 동안 제보자처럼 '그런 건 남자들끼리 다 하는 일이다'라는 태도를 잠시 숨겨놓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남성이고, 동성들끼리만 들어가 있는 단톡방이 아직도 있는데 거기서 과거에 소수자를 혐오하고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이 오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 라고 지적하면 너는 왜 착한 척 하냐, 라며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그런 지적은 최근에서야 이루어지고 있으며 과거에는 나 역시 그런 성적으로 옳지 않은 발언을 적극적으로 해 온 바 있다. 아무도 그것이 왜 옳지 못한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으니 여성을 성행위의 대상으로만 취급해도, 저열한 성적 농담을 해도 되는 줄 알았다. 내가 그것이 잘못된 일인지 배우지 못했다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님은 물론이다.

위에서 말한 바처럼 특정 개인의 문제인 것도 아니고, 남자들이 단톡방에만 들어오기만 하면 그런 저열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을 향해 언어적인 성폭력을 가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는 이상 욕먹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파다하게 퍼져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단톡방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해자를 악마로 모는 누리꾼들, 특히 남성들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물을 수밖에 없다.

당신의 단톡방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나요?


태그:##언어성폭력,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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