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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절 삽화

나의 구미초등학교 시절, 죽마고우 악동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늘 신나게 놀기만 했다. 때때로 집안일 돕는다고 소도 먹이고, 꼴도 뜯고, 쇠죽도 끓였다. 우리들은 소를 먹일 때는 금오산 기슭이나 낙동강 강둑으로 가 소를 팽개친 채 계곡에서 가재를 잡거나 덤벙에 멱을 감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

그런 가운데 소가 남의 콩밭이나 벼논에 들어가 난장판을 만드는 바람에 주인에게 불려가 야단도 여러 번 맞았지만 그때 뿐으로 신나게 마냥 놀기만 했다.

우리들의 놀이 시간은 낮도 부족하여 저녁이면 밥숟갈을 놓자마자 또 몰려다녔다. 악동들은 주로 우리 집 사랑에 모였는데, 어찌나 야단스럽게 놀았는지 방구들이 내려앉고 창살이 부서지기도 했다.

6학년 2학기 어느 가을날 하교 길에 내가 친구들에게 콩서리 가자고 제의하자 모두 좋다고 하였다. 여섯 악동들이 따라나섰다. 우리 악동들은 책보를 내 집 사랑에 팽개친 채 선기동 덤바위골 우리 콩밭으로 갔다. 그 밭은 경부선 철길 가까운 산비탈에 있었다.

우리 악동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내 집 콩밭에 이르자 천만 뜻밖에도 밭에는 콩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순간 아찔했다. 친구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나는 그제야 내 집 마당에 뽑아둔 콩포기들이 떠올랐다. 그때 우리 집은 밭이 여러 곳이라 마당에 추수한 콩들이 덤바위골 콩인지 미처 모르고 친구들을 데리고 간 것이다.

구미 금오산 낙조
 구미 금오산 낙조
ⓒ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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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서리

그때 우리 집 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샛노랗게 잘 익은, 콩서리하기에 아주 좋은 콩밭이 있었다. 우리 악동들은 즉석 회의를 갖고 콩서리작전을 세웠다. 망을 보는 녀석 둘, 마른 나무를 하는 녀석 둘, 콩을 뽑는 녀석 둘로 역할분담을 했다.

나는 콩을 뽑는 역할을 자원했다. 나와 한때 옆집에 살았던 김성식이라는 친구는 까투리처럼 살금살금 콩밭을 기어들어 콩 포기 한 줌을 뽑는데 누군가 산 위에서 고함을 질렀다.

"콩 뽑는 도둑놈 잡아라."

그 소리와 함께 소를 먹이던 청년 몇이 비호처럼 우리에게로 달려 왔다. 산으로 나무를 하러갔던 친구들도 망을 보던 녀석들도 모두 콩밭머리로 쫓겨 왔다. 산에서 내려오는 우락부락한 청년들은 계속 '도둑놈 잡아라!'를 고함치면서 콩밭으로 돌진해 왔다.

우리 악동들은 고양이 앞에 쥐처럼 부들부들 겁먹고 있는데 경부선 철길에서 캘빈 총을 멘 경찰관이 우리 모두를 불렀다.

"야! 모두 이리 와!"

우리 악동들과 청년들은 모두 철길로 내려갔다.

"무슨 일이고?"

그러자 한 청년이 나섰다.

"이 쥐방울만한 놈들이 남의 콩밭 콩을 뽑잖아요."
"알았다. 내가 이 녀석들을 혼 내줄 테니 너희들은 그만 돌아가 봐!"
"네에. 글 마들 대기 혼 좀 내주이소."

그 청년들은 아주 고소한 표정으로 산으로 올라갔다.

"니들 어디 살아?"
"장터에 삽니다."
"잘 됐다 나 지금 본서로 돌아가는데 따라 와!"

우리 악동들은 별 수 없이 염소새끼처럼 캘빈 총을 멘 경찰관 뒤를 따랐다.

"니들 콩 좋아하는 모양인데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면 콩밥 많이 먹게 될 거다."

그 말에 우리 악동들은 경찰관 앞뒤로 에워싸며 애걸복걸로 빌었다. 하지만 경찰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걷기만 했다.

이윽고 장터 들머리에 이르렀다. 앞서가던 경찰관이 뒤돌아섰다.

"니들 오늘 재수 좋았다. 아까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니들 그 청년들에게 많이 맞았을 거다. 앞으로 절대로 남의 물건에 손대면 안 된다."
"네!!!"

우리 악동들은 횡재한 기분으로 제비 떼처럼 대답했다.

"잘 가라. 나는 곧장 이 길로 본서로 갈 거다."

우리들은 거기서 좁은 철길을 벗어나 둑길로 간 뒤 신작로로 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날은 이승만 대통령이 특별열차로 부산으로 가기에 경찰관들이 철로에 보초를 선 후 본서로 돌아가던 때였다.

그때 악동들 가운데는 후일 시의원, 도의원이 된 친구도, 한국프로복싱플라이급 챔피언이 된 친구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그때의 한 죽마고우가 그새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받았다.

그 친구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대학까지 나온 수재로 한국전쟁 때 좌익에 가담한 뒤 행방불명으로 남은 가족들은 평생 크게 숨 한 번 쉬지 못하고 수난 속에 살았다. 뒤늦게나마 그 친구의 명복을 빈다.

"좌도 우도 없는, 남도 북도 없는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기를…."

아직도 이승에 남아있는 친구가 뒤늦게 묵념을 드린다.
   
금오산 도선굴에서 바라본 고향산천
 금오산 도선굴에서 바라본 고향산천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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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죽마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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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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