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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오전 국회에서 20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오전 국회에서 20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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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수많은 소셜미디어들과 인터넷 언론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역시나,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곱씹어야 제맛이다. 시간이 흐른 뒤 되돌아보면, 여러 의미로 신통방통하기 짝이 없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그 발언의 정확한 맥락이나 현실이 어떤지 알고서는 도저히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 부지기수다.

이건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한 '박근혜 번역기'와는 또 다른 영역이다. 수첩에 개념어만 적어 놓은 들, 실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패턴이랄까. 반대로, 그 수많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언론은 한 줄도 안 보는 것 같은 박 대통령이 할 만한 발언도 아니긴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SNS 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이 과거 발언은 지난 2013년 3월 4일,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대국민담화에서 나왔다. 미래창조과학부 등 부처 신설안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취임 초반 박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 든 상황이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장악은 그것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 문제는 이 자리에서 국민 앞에 약속드릴 수 있다"고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오히려 이번 사건은 방송 장악이 이미 이명박 정부부터 진행돼 왔었고, 그런 국정 운영의 기조 하에 '일상적인 소통(이라 쓰고 개입이라 읽는)'을 위한 '통상업무'였을 수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최근 대두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KBS 보도 개입 논란 말이다.

박근혜 정권의 방송장악,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시곤 KBS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와 교통사고 희생자를 비교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이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2014년 5월 8일 여의도 KBS본사를 항의방문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시곤 KBS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와 교통사고 희생자를 비교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이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2014년 5월 8일 여의도 KBS본사를 항의방문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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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2014년 봄으로 되돌려 보자. 어버이날이던 5월 8일, 당시 길환영 KBS 사장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참사로부터 3주가 훨씬 지난 시점이자 오보를 비롯해 세월호 참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던 순간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 희생자와 비교하는 듯한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발언이 도화선이 됐지만, 1박 2일에 걸친 유가족들의 KBS 항의방문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기 위한 청와대 행은 언론 전체에 대한 불신과 무능한 정부를 향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대통령은 답이 없었다. 대신 길환영 사장이 직접 유족 앞에서 사과문을 읽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시민들까지 가세한 청와대 앞 항의 방문 요구는 수습될 수 있었다.

이에 앞서 녹음된 '이정현 녹취록'을 되짚어 보면, 김시곤 보도국장 입장에서는 답답했을 만도 해 보인다. 읍소와 반협박, 욕설까지 섞어가며 KBS의 세월호 참사와 해경 관련 보도를 '마사지'하려했던 청와대의 적극적인 개입은 꽤나 난처했을 것이다. 청와대의 개입은 국민들에게 알릴 수 없는 상황에서 KBS가 '독박'을 쓴 꼴이랄까. 

물론 이정현 홍보수석과의 통화 직후 논조를 180도 바꾸어버린 것으로 드러난 KBS의 보도 행태는'기레기'라는 굴욕에 가까운 신조어를 낳은 장본인 중 하나로서 책임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뒤에 청와대가 버티고 서 있었다는 사실은 세월호 참사 전후 KBS가, MBC를 포함한 공영방송이 이명박 정권 이후부터 얼마나 권력에 납작 엎드리는 충견으로서의 역할에 매몰됐었나 하는 점을 재확인시켜 준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비망록과 녹취록까지 공개하면서까지 개인적인 억울함을 호소하고 본인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나설 만하지 않은가.    

주어의 실체가 중요하다고?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이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노조 주최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항의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 세월호참사, 청와대의 KBS 보도통제 증거 공개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이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노조 주최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항의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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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볼 것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 관련 녹취록까지 공개된 마당에, "하필이면 (대통령이) KBS를 봤네. 도와주시오"라던 이정현 전 수석의 발언 속 주어를 따질 필요가 있는가. '읍소'였다는 여당의 주장 역시 재고할 일말의 가치도 없다. 공개된 비망록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정현 의원은 2013년 5월 정무수석으로 있을 당시에도 박근혜 대통령 관련 뉴스 배치에 대해 지시를 내린 바 있다. 

KBS를 좌지우지한 그 입으로 지역구에 출마해 "박근혜 정권을 도와 달라"고 외쳤으며 새누리당 당 대표 출마 선언까지 한 이정현 의원. 후안무치와 곡학아세의 표본이자, 청와대의 지저분하고 질 낮은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이가 여당의 당 대표를 하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꼴이 천박하기 그지없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지난 1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를 한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대로 "방송법에 있는 유일한 처벌 조항"을 적용하면 그만이다. 이미 이 사안과 관련, 지난달 28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방송법 위반 혐의로 이정현 의원과 길환영 전 KBS 사장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이정현 의원과 길환영 전 사장이 수사만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또 검찰의 의지만 있다면 진상규명은 물론 징역형까지 가능하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5일 오전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황교안 국무총리 역시 이 사안에 대해 "검찰에 고발해 조사를 진행 중인 사안으로 안다"며 "결과를 기다려 달라"고 답했다. 비록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일관하긴 했지만, 사건 자체의 심각성은 감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의 공영방송 개입의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이상,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 필요하다면 처벌까지 나아가야 할 문제다. 어차피, 박근혜 대통령은 입을 닫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청와대가 명시하듯, 대한민국은 '개인의 일탈'이 조직의 이익과 지휘체계를 뛰어 넘어 버린 사회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야 하는 이유는 누군가들이 그리도 외쳐대는 '국익' 때문이다.

언론자유도, 부패지수도 맹렬히 역주행시키는 '창조 정권'

손석희의 <뉴스룸>, 7월 4일자 뉴스브리핑
 손석희의 <뉴스룸>, 7월 4일자 뉴스브리핑
ⓒ jtbc 뉴스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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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의 당사자는 억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주장대로 통상업무, 사적 통화일 수도 있을 텐데 군사정부 시절에나 존재했던 보도지침마저 운위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 얼마 전에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입니다.

우리는 매년 추락을 거듭해서 130개국 가운데 70위, 역대 최악을 기록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 사람은 없다고. 모두가 입을 모으는데 그 지수는 왜 자꾸 추락하는가. 이쯤 되면 홍보수석이 전화를 할 곳은 공영방송이 아니라 국경없는기자회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집계해 달라" "빼 달라" 이렇게 말입니다."

4일 방송된 JTBC <뉴스룸> '앵커 브리핑'의 말미는 이랬다. '언론인' 손석희 앵커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언론자유지수를 언급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30위권이던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이명박 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권 4년 차를 맞은 지금 딱 두 배수 하락했다. 매해 언론자유지수의 수직 하락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던 '이명박근혜' 정권은 결과적으로 방송장악의 민낯을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 됐다.

언론의 자유와 깊숙이 연관된 부패지수는 어떨까.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5년 부패인식지수를 보자. 한국은 100점 만점에 56점을 받았다. 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 최하위권이다. OECD 평균은 69.6점이었다. 권력과 정부를 감시해야 할 언론과 방송이 도리어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기에 빚어진 당연한 결과다. 언론자유도, 부패 지수도 맹렬하게 하락 중인 전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그 불안정한 이미지야말로 '국익'을 저해하는 요소 아니겠는가.

때마침,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4일 'CREATIVE KOREA'를 새 공식 국가브랜드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창조경제'에 이어 '창조코리아'를 내세운 것이다. 언론이고, 부패고, 역사고, 나라 전체를 역주행시키고 있는 정권이 '창조'라니. 개가 웃고 소가 웃을 일이다. 그나저나, 박근혜 대통령은 "방송 장악을 할 의도가 없다"던 과거 자신의 발언을 기억이나 할까. 


태그:#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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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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