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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 읽을래요? 성장소설의 고전 <데미안> 읽을래요?"

이미 <채식주의자>를 읽은 친구가 "그 책 너무 야해요"라고 말했다. 꼭 그 말 한마디 때문은 아니었으리라 믿고 싶지만(?), 다들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저도 10대 때 야한소설 많이 읽었어요. 그러면서 상상의 세계가 넓어졌죠. 책 읽는 재미도 생기고요."

문학상을 받아서 읽든, 야해서 읽든 어떻게든 함께 책을 읽고 싶었다. 샨티학교 5학년(18세)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에 책을 읽기로 약속했다. 일단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독서퀴즈를 준비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10대들에게 이 소설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 <채식주의자>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10대들에게 이 소설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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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채식주의를 영어로?
2. 주인공 영혜의 첫 번째 꿈은?
3. 영혜 언니의 이름은?
4. 형부의 직업은?
5. 어릴 때 키우던 개 이름은?
6. 한강 작가의 고향은?
7. 세계 3대 문학상은?
8. 모든 동물성을 거부하는 채식의 단계는?
9. 영혜가 남편과 섹스를 거부한 이유는?
10. 영혜가 폭력에 저항한 방법은 채식이고, 언니는 무엇이었을까?

학교에서 아이들과 마주칠 때마다 책을 읽어오라고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했지만, 끝까지 읽어오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의 잔소리가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그들의 강인한 고집 때문일까 잠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안 읽어 와도 좋으니 마음만 열어다오.

채식주의자 어떻게 생각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채식주의자라면 어떨 거 같아요?"라고 물었다. 조금 곤란할 거 같다고 했고, 어떻게든 배려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한 친구는 서슴없이 "같이 채식해야죠." 다들 놀라서 정말 그럴 수 있냐고 했더니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면 말이에요."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나 사실은 동성애자야' 라고 한다면?"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만약'의 상황은 누구나에게 오기 마련이고,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닥치면 잘 헤쳐 나갈 아이들이지만 말이다.

채식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라고 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서 예상했던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뭐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 1초도 같은 마음이 없는 것처럼, 지금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도 있다.

"채식주의는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먹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니까."
"채식주의는 꿈이다. 왜냐하면 꿈도 못 꿀 만한 거라서 꿈이다."
"채식주의는 취향이다. 왜냐하면 뭘 먹든 자기 마음이기 때문이다."
"채식주의는 이상이다. 왜냐하면 희망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채식주의는 별로다. 왜냐하면 다른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불쌍하기 때문이다."
"채식은 개성이다. 왜냐하면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하기 때문이다."
"채식주의는 대단하다. 왜냐하면 야채를 싫어하는 내가 채식주의자를 봤을 땐 대단한 것 같다."

<채식주의자>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력'이었다. 영혜(주인공)가 아버지로부터, 남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받은 폭력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학대'를 비롯해 남편의 '외면'도 엄청난 폭력이며, 예술가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형부도, 정신병원에서 음식물을 거부한 영혜에게 억지로 음식물을 투여하는 장면조차 모두 불편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영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폭력성을 이야기했다. 너무 많은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고, 그것이 폭력인지도 몰랐던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영혜를 이해했더라면 어땠을까. 자신을 알아주기를 그토록 원하는 것이 사랑일진대 그 사랑을 받지도, 갈구하지도 못했던 주인공은 외로움 속에서 처절하게 죽어간다.

폭력은 무엇입니까

'폭력'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프지만 묻고 또 묻고 싶었다. 나에게 '폭력'은 무엇인지, 내가 타인에게 무심코 저지른 폭력이 무어냐고 물었다. '폭력'이라는 불편한 단어를 들먹이는 나는 얼마나 많은 폭력은 저지르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이다.

"폭력은 병이다. 왜냐하면 폭력은 폭력을 낳고 누구나 아파하기 때문이다."
"폭력은 나쁘다. 왜냐하면 때리면 아프기 때문이다."
"폭력은 상처다. 왜냐하면 폭력을 당한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폭력은 또 하나의 저항수단이다. 왜냐하면 폭력을 이기는 건 폭력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과장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누군가 밑으로 내려가기 싫은 사람들이 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표지 그림.
▲ 에곤 실레 <네 그루의 나무들>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표지 그림.
ⓒ 에곤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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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표지 그림은 에곤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들>이다. 한강 작가가 직접 선택했다고 한다. 네 그루의 나무 중에서 앙상한 한 그루의 나무를 본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처가 깊으면 이 나무처럼 말라버릴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에서는 강자가 되고, 어떤 상황에서는 약자가 된다. 폭력에서도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듯 말이다. 심지어 사랑을 할 때도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약자가 아닌가. 강자가 되었을 때 약자였던 순간을 모조리 잊어버리는 인간은 약자에게 폭력을 저지른다. 결국 받은 상처만 기억할 뿐 준 상처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글쓰기 수업은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거창한 말로 포장을 하려고 해도 내가 살아온 삶을 고스란히 드러난다. 10대의 천진함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보다 20년 더 살아온 내 삶의 업이 더 깊은 느낌이랄까.

세상의 무수한 폭력 앞에 섰을 때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떠오르면 좋겠다. 지금 당장 내 삶을 바꾸는 것이 책 읽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학 작품이 이정표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정표가 되지 못하더라도 버팀목이 되어 삶을 견디게 해준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태그:#채식주의자, #샨티학교, #한강,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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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쓸 때는 은둔자가 되고 싶으나,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여인. 곧 마흔, 불타는 유혹의 글쓰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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