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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내가 알던 차에 대한 지식은 보성녹차 밭, 현미녹차 아니면 설록차 정도가 전부였다. 사무실 한 켠에 믹스커피 스틱들과 나란히 줄지어 있는 네모난 작은 종이봉투에 담긴 1회용 차, 술 먹은 다음날 믹스커피 먹기 싫을 때 대타로 마시던 티백차 정도가 차 지식의 전부인 셈이다.

차에 대해 이 정도 문외한인 내게 우연히 차명인 한 사람이 인연으로 다가왔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차명인 박시도가 그 사람이다. 이런 인연으로 드나들기 시작한 전주 한옥마을 다문(茶門)은 차에 대해 무지에 가까웠던 내게 차 입문학교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차에 대해 많이 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차 맛을 조금 알게 된 덕분에 이렇게 차에 대해 한 마디 거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차에 대해 20여 년 넘게 연구해 온 차 고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여전히 내게는 거의 외계어 수준이다. 원래 천성이 호기심천국인지라 들으면 들을수록 알면 알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한 신비의 세계다. 이 흥미로운 얘기들을 욕심부리고 나만 간직할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강경마을 야생녹차밭

작년 가을 차명인은 내게 몇 번을 자기 차 밭에 가자고 권했다. 그때 사실 속으로는 '가봐야 차 밭이 차 밭이지 바쁜데 순창까지 왜 가나' 하는 생각을 했다. 벼르고 벼르다 가을 어느 날 시간을 내어 따라 나섰다. 순창 강경마을 들어가는 길은 잘 익은 고향 냄새가 났다. 솔직히 그때까지 차 밭 구경보다는 가을 풍경이 더 내 마음을 끌었다.

차를 타고 꼬불꼬불 우거진 산길을 한참 가더니 내리라고 한다. 도무지 차 밭이라고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산골짜기에 와서 다 왔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차를 타고 오면서 거의 다 왔다고 하길래 이쯤 되면 잘 다듬어진 비탈에 짙푸른 차 밭 고랑들이 날 반겨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차 밭은 그만두고 사람도 다니기 힘든 산골짜기로 끌고 와 다 왔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여기서부터가 야생 차 밭이야."
"네? 어디가 차 밭이라고요?"
"저기 밤나무 아래 녹색들 보이지? 저게 다 차나무야."

보성녹차밭 광경을 상상하지 말길..
▲ 순창 강경마을 야생차 밭 보성녹차밭 광경을 상상하지 말길..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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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차 밭이라기 보다 야생차숲이다
▲ 순창 강경마을 야생차밭 야생차 밭이라기 보다 야생차숲이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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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라운 풍광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잘 빠진 보성녹차 밭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형태가 있는 녹차 밭을 상상했는데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 차 밭이라니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었다. 야생 산밤나무 숲으로 나를 이끌고 가면서 박시도표 차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 되었다.

여기 강경마을 야생 차 밭의 시원은 아마도 백제시대 일 것이란다. 수백 년을 살아온 야생 차나무들 앞에 서니 괜히 숙연해졌다. 보성녹차 밭과 차이점에 대한 질문에 차명인의 눈빛이 반짝이며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성녹차 밭의 경우 일제시대 때 차의 내한성을 기르고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개량한 야부다기종을 들여와 심은 것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많은 자생 차나무들이 없어지게 되었는데 차 애호가로서 마음 아프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여기 강경마을 차 밭은 용케 살아 남아 산을 지키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냐며 웃는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니 백제시대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수천 년을 살아온 차와 대량생산을 위해 잘 조성된 보성녹차 밭을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여기 야생 차는 이렇게 숲과 어우러져 자연의 기운을 제대로 받고 자랐기 때문에 차 나무의 기운도 자연의 힘을 품은 진짜배기 차라는 설명이 따라 붙는다.

차나무에 꽃과 열매가 같이 달려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 차 꽂과 차 열매 차나무에 꽃과 열매가 같이 달려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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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인을 따라 차 밭이라기보다 야생차 숲을 구경하고 나니 여기서 따낸 차 순으로 우려낸 차를 한 모금 맛 보고 싶어졌다. 내 맘을 읽었는지 임시거처로 쓰고 있는 텐트로 나를 안내했다. 잠시 기다리니 오래된 다기에 향이 그윽한 차가 담겨 나왔다. 여기 숲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 황차라고 한다.

한 모금 입에 넣으니 숲의 향기가 입안에 퍼지는 듯하다. 그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에 차 향이 고이는 것 같다. 아무리 차 맛에 문외한이라도 분명 숲의 기운을 받고 자란 차 맛은 차이가 있었다. 그 맛은 아무리 설명을 잘해도 안 마셔 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맛이다. 그 차 맛을 더한 것은 차명인의 야생차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찰진 차 이야기가 한몫 했음은 물론이다.

언젠가 글을 통해 밝혔듯이 음식장사 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아는 맛(음식, 커피, 차 등)은 혀의 감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 우리가 느끼는 맛을 좌우 하는 것은 혀의 감각보다 그 음식에 대한 감정, 즉 음식에 얽힌 스토리, 함께 하는 사람 등에 더 좌우 된다는 사실이다.

차에 대해 문외한이었지만 이처럼 야생차 밭 가운데서 차명인의 차 이야기를 들으며 마신 차 맛으로 이후 야생차 신봉자가 되었다. 신비한 야생차 밭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차의 향기를 맡으며 마시는 차 맛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맛은 감각이 아니라 감성이다
▲ 강경 황차 마실중비 중: 맛은 감각이 아니라 감성이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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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인이 직접 끓여준 차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 양생차 시음 차명인이 직접 끓여준 차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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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에 가면 천년 묵은 야생차 밭을 볼 수 있다

다가오는 주말 자연의 기운을 받고 싶다면 트레킹 삼아 순창군 적성면 강경마을 야생차 밭을 가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본다. 순창군 강경마을을 검색하거나 순창군청에 알아보면 트레킹 코스를 알아볼 수 있다.

꼭 차 맛을 보지 않더라도 눈으로 야생차 밭을 보는 것만으로도 보성녹차 밭에서 느낄 수 없는 야생차 밭만의 신비한 매력에 빠질 것이다. 참고로 지금 차명인 박시도 형은 강경마을에 있지 않고 또 다른 야생차 밭이 있는 고창 선운사 차 밭에 가 있다. 선운사 차 밭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소개해 보려 한다.

자세한 내용은 전주한옥마을 다문(茶門)에 문의해보거나 메일(byhoj@hanmail.net)로 문의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의 일부 내용은 개인블로그(네이버 블로그:청년홈즈)에 게재 되어 있습니다.



태그:#야생차밭, #순창강경마을, #박시도, #차명인,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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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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