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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언론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 중 하나를 택하라면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고 했다. 언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이 된 후 마음을 바꾸었다. 심지어 자신을 비판하는 행태를 괘씸하게 여겨 '법대로 처리하자'라며 '언론 없는 정부'를 공연히 지지하기도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권력자에게 언론은 골칫거리다. 권력을 견제하고 추문을 폭로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니, 대통령이 된 그에게 언론은 얼마나 얄미운 상대였을까.

이명박 정부 이래 위즈덤 하우스가 발표하는 세계 언론 자유도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매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 배경엔 '언론 없는 정부'를 바라는 자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새누리당의 이정현 의원인 것 같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이정현 의원의 언론 개입 발언이 담긴 녹취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이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노조 주최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항의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 세월호참사, 청와대의 KBS 보도통제 증거 공개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이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노조 주최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항의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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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KBS 보도국장이던 김시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이 의원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그동안 언론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드러난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그에게 언론은 정부의 무능을 폭로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부의 무능을 감추고, 정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를 극적으로 도와줘야 할 대상이었다.

다음은 녹취록 중 일부 내용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놔두고 그러는데 그걸 해경을 두들겨 패고 그 사람들이 마치 별문제가 없듯이 해경이 잘 못이나 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몰아가고 이런 식으로 지금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그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야지. 그게 맞습니까."

"씹어 먹든지 갈아 먹든지 며칠 후에 어느 정도 극복한 뒤에 그때 가서는 모든 것이 밝혀질 수 있습니다. 그때 가서 해경이 아까 그런 부분을 포함해서 저 잘못도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뭉쳐가지고 정부가 이를 극복해 나가야지 공영방송까지 전부 이렇게 짓밟아가지고 직접적인 잘못은 현재 드러난 것은 누가 봐도 아까 국장님께서 말씀하셨지마는 누가 봐도 그때 상황은 그놈들이 말이야 이놈들이 뛰쳐나올 정도로 그 정도로 상황이었다고 그렇다고 하면 배를 그렇게 오랫동안 몰았던 놈이면 그놈들한테 잘못이지 마이크로 뛰어내리지 못하게 한 그놈들이 잘못이지."

"국장님 아니 내가 진짜 그렇게 내가 얘기를 했는데도 계속 그렇게 하십니까? 네? 아니 거기 선장이 뛰쳐나오고 자기 목숨 구하려고 뛰쳐나올 정도 되면 배를 몇십 년 동안 몰았던 선장 놈이 거기 앉아 있는데 보지도 않고 이거 마이크를 대고 그거 뛰어내리라고 안 했다고 뉴스까지 해가지고 그렇게 조지고 그래야 될 정도로 지금 이 상황 속에서 그래야 되냐고요. 지금 국장님 말씀대로 20% 30% 그게 있다고 한다면은 그 정도는 좀 지나고 나서 그렇게 해야지."

"국장님 나 요거 한번만 도와주시오. 아주 아예 그냥 다른 걸로 대체를 좀 해 주든지 아니면 한다면은 말만 바꾸면 되니까 한 번만 더 녹음 좀 한 번만 더 해 주시오."

"내가 그래 한 번만 도와줘. 진짜 요거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 아이~한 번만 도와주시오 자~ 국장님 나 한 번만 도와줘 진짜로."

언론 개입 시도, 세월호 참사 당시만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 통제로 논란을 일으킨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 '세월호참사 KBS 보도 통제' 빨간 불 켜진 이정현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 통제로 논란을 일으킨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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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의원의 언론 개입 시도는 비단 세월호 참사 때만 있던 일이 아니었다. 2014년 5월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직을 사퇴하며 청와대의 KBS 보도 개입이 숱하게 일어났다고 증언한 바 있다.

2013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방미 중 성추행 사건을 일으켰을 때도 당시 정무수석이었던 이 의원은 언론 개입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국장이 보도국장 재임 시 작성해온 비망록에 따르면, 이정현 정무수석은 김 전 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통령 방미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말했다. 길환영 당시 KBS 사장도 윤창중 사건과 관련해 김 전 국장에게 윤창중 사건 보도를 첫 번째로 다루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한 김 전 국장의 비망록에는 '윤창중 속보를 3번에서 2번으로 줄이고 3번째와 4번째 꼭지에 보도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KBS의 보도는 타 방송사와 비교해봐도 축소보도라 할 만했다. 같은 날 MBC와 SBS는 각각 윤 전 대변인 보도를 각각 6번, 5번 했으며 순서도 맨 앞에 배치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지난 1일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 의원의 KBS 보도 개입에 대해 희한한 답변을 내놨다. 그는 이날 "홍보수석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협조를 (요청)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라고 말했는데, 청와대의 대언론 인식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이 의원 역시 이날 '사실관계가 틀린 보도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이 같은 개입을 시도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녹취록에서처럼 이 의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이 큰 잘못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법원은 그간 판결을 통해 해경 123정의 정장이 참사 당일 사고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세월호와의 교신을 제대로 유지하지 않았고, 승조원 임무 배치 조치도 하지 않는 등 임무에 소홀했다고 판단했다. 방송장비를 이용해 승객 퇴선을 유지하지 못한 점도 과실로 지적했다. 대통령마저 2014년 해경의 책임을 물으며 해경 해체를 선언, 국민안전처를 신설한 상황에서 해경에게 큰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법치'가 구현되는 사회이길 바란다

이를 돌아보면 이 의원의 KBS 보도 개입은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 아닌,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행동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이다. 우리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에게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언론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금지하고 있다.

방송법 4조 2항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해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법 105조에서는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의원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임하며 방송법을 위반했으니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는 자신의 범법 행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까. 필자는 부정적이다. 그간 삼권 분립을 유린하거나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던 자들도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말로는 '법치'를 강조해온 그들이지만, 그들에게 '법치'란 아래를 향하는 것이지 위를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녹취록이 공개된 뒤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하지만, 쉽지 않을 듯하다.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야당의 청문회 요구는 과도한 정치 공세"라며 "야당이 수적 우위로 밀어붙여 청문회를 실시한다면 협치는 물 건너 갈 것"이라 겁박했고, 국민의당 이용호 대변인도 "무작정 청문회를 추진하기보다 청와대의 대응을 지켜보며 청문회를 열지 결정하겠다"라며 이도 저도 아닌 대답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언론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 중 하나를 택하라면 우리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언론도 정부도 우리에겐 소중한 기관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더욱 두 기관 사이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하나의 기관이 다른 기관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할 때, 권력의 균형은 깨어지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헌법과 방송법이 언론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괜한 이유가 아니다.

그간 이정현 의원과 그 배후에 있을지 모를 누군가는 이 균형을 깨뜨려왔다. '언론 없는 정부'를 추구하며 범법행위를 저지른 그들에게 죄를 묻기를 주저한다면 혹은 죄를 물을 수 없다면 이는 이미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언론 없는 정부'를 추구하며 범법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에게 철퇴를 가할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 '법치'가 누구에게나 공평히 적용되는 그런 사회이길 바란다.


태그:#이정현 녹취록, #이정현 김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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